(사)한국예총 익산지회장

김 영 규

인간 내면의 음지를 끌어안고 써내려간 작품, 고독한 작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 백의 소설작품은 애덤 트레스크와 새무얼해밀턴 가문 사이에 3대에 걸쳐 일어나는 내용으로 증오와 복수, 파멸을 보여준다.

애덤 트레스크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후 살리나스 계곡으로 들어와 에덴동산 같은 행복한 삶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아내의 배신과 타락, 두 아들의 반목과 질시 등등 인간의 미움과 증오, 시기, 질투가 얼마나 처참한 파멸을 부르게 되는가를 유려한 서사적 구조로 보여준다.

6.25 전후에 태어난 필자의 어릴적 주위 환경은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주위의 형제간 부모간은 날마다 싸우고 서로 미워하며 아귀다툼이 반복되고, 특히나 나이드신 남자들의 술주정은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들에게 폭설과 폭행으로 이어져, 힘없는 아들딸들이 눈물로 싸움을 말리는 광경은 비일비재하였다.

더구나 36년 동안 일제지배하에서 남성은 징병과 징용으로, 여성은 위안부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그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6.25를 맞이하여 그 고통은 더해가기만 하였으니,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증오와 분노, 질시와 반목의 엉겅퀴가 자라고 있는가.

분열로 몸살을 앓으며 분노가 판을 치는 에덴의 동쪽처럼 되었으니.

우리 사회가 진정한 에덴, 미움과 증오의 가시가 사라지고 사랑과 화목의 꽃이 피는 향기로운 동산이 될 수는 없을까?

요즈음 여야 사이 뿐만 아니라 같은 당내의 계파 사이에 오가는 말들을 듣다 보면,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 예술인들은 도무지 구분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치판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정치가 우리 시민들을 행복하게 웃을 수 있게 해준지도 너무도 오래전이 아닌가 싶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무엇이든 상대방 탓으로 만들고자하고 마치 ‘거울 이미지 효과’처럼 모진 말을 반사하듯 주고 받는 동안 정작 중요한 사안, 시급한 사안을 실체적으로 다루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온데간데없이 안 해도 되는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정치란 단어의 뜻이 ‘싸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라고 알고 있지만, 우선 싸움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싸우기 위해서 정치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인간사회에서 갈등과 다툼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치의 역할과 기능이 있는 것이지, 거꾸로 정치가 갈등을 더 심화시키고 싸움을 인위적으로 조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사회적인 일이 아닐까 한다.

정치는 예술과 통한다고 한다.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 싶은데, 사실 이 형용모순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라 할 수 있기에 인간이 행하는 정치가 안고 있는 근본적 어려움은 갈등적인 요구들 사이, 혹은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인 딜레마 속에서 일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때문에 정치라고 하는 인간활동은 수많은 이율배반을 감당해 내지 않고는 실천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상식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범이나 도덕적 기준을 연장해서 정치를 다루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따라서 이런 운명적 조건을 더 넓고 길게 이해하면서 남다른 정치적 인식을 담은 정치적 말의 힘을 선용하는 일은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정치언어의 역할은 변화와 개선을 위한 가능성의 공간을 확대하는데 있지, 상대방이 거부감을 정형화된 이미지를 부과해서 소모적인 갈등을 지속하는데 있지 않다.

강제나 억압이 아닌 설득의 힘, 말의 힘을 통하여 실현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당연히 정치언어가 좋지 않다면 그런 공동체에 가까이 가기는 어렵다.

변화와 개선을 이끌 적절한 말을 쓰는 일이 정치가의 의무이자 규범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지역 공동체를 사람 살만한 풍요로운 곳으로 만드는데 있어서 으뜸은 생산도, 성장도, 기술도 아닌 좋은 말의 효과에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지 못하면 우리지역 정치의 긍정적 기능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