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가 70억원 가량의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했다. 기 발주한 하수슬러지처리시설 공사를 지난해 8월 중단시킨 이후 공사관련 하도급업체들이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리는 등 공사중단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피해를 시공사측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시공사인 코오롱의 이같은 움직임을 인지한 익산시가 공사 각 주체들 및 환경관리공단 등과의 협의를 통해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는 방안 모색에 들어갔지만, 배상액 규모에서 익산시와 시공사가 큰 폭의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어 손해배상 소송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익산시의 입장은, 업체측에서 요구하는 배상액을 모두 지급할 수 없고, 감정에 의한 투입비용을 배상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공사를 중단시킨 시점에서 공정률이 18%였으니까 비용이 투입된 만큼만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기성금은 20여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시공사는, 건조소각방식 공정설비의 특성상 공사 초기에 기계설비를 확보해야만 하기 때문에 기성액과 기계설비 확보액을 포함해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쨌거나 익산시는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따라서 공사를 중지시킨 공무원들이나 이를 지시한 시장의 책임이 막중하다. 책임을 벗기 위해서는 중지시킨 사유가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익산시는, 시공사가 공사중지명령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민원 발생'을 공사중지명령 사유로 들고 있다.

단순히 민원이 발생해 공사를 중지시켰다는 것은 법리를 떠나 상식적으로도 설득력이 빈약하다. 198억원이 투입되는 공사를 발주해 놓고,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민원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으로 행정기관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는, 누구든지 익산시가 시행하는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선례가 되었다. 민원만 제기하면 공사를 못하게 할 수 있다. 특정 공사구간의 이해관계자가 더 많은 보상액을 노리고 민원을 제기하면 익산시는 속수무책이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익산시는 앞으로 어떤 공사도 시행 할 수 없는 약점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가뜩이나 국책사업 조차도 민원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경거망동인가.

더구나 행정의 3대원칙인 형평의 원칙, 공평의 원칙,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행태다. 시공사가 익산시의 조치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일부 민원을 이유로 공사를 중지시키는 이런 사태는 처음 겪어본다"고 토로하는 것은 어떤 지자체도 법리에서 벗어난 그런 결정을 내린바 없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읽힌다.

행정 전문가들도 익산시가 '공사중지 명령 철회'의 소에서 이길 확률은 지극히 희박한 것으로 내다본다. 공무원들이 이것을 사전에 몰랐을리 없다. 이런 무책임한 조처는 불가피한 상황논리로 무장하고 있을 공산이 높다. "안된다고 했는데 위에서 하라고 해서 어쩔수 없었다"는 따위의 변명 말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위법의 책임은 담당 공무원이 가장 크게 진다. 담당자는 부당한 지시에 대한 소명의 책임도 함께 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수슬러지 처리시설 건설에는 국비와 지방비를 매칭한 비용이 투입되고 있지만, 익산시의 귀책사유로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경우 전액 익산시비로 지급해야 한다. 단 한푼도 빠짐없이 배상금액에 대한 구상권이 관련 공무원들에게 행사되어야 하는 이유다.

반대로, 관련 공무원들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다는 점을 입증하고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박경철 시장의 직권남용을 백일하에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진퇴양난은 관련 공무원들이 자초한 일이니, 익산시 공직사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비극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