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감화시킨 백제인의 심미안, 그리고 영성, 그 근원인 ‘여성성’은 익산의 경쟁력”
익산 시민의 눈으로 본 한복과 그 재해석에 대한 첫발, 잠들어 있던 백제에 던지는 질문

한복을 입고 사랑을 고백하면 어떨까.
일편단심의 진정성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복은 원사(原絲)부터 격이 다르다. 누에가 일평생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한 노동의 산물이다.
한복에는 짓는이의 조금도 안일하지 않고 방종하지 않는 매 순간의 숨죽인 정성이 담긴다.
중용(中庸)에서 이른바, 정성은 안팎을 밝혀 감동을 주며 변화를 일으킨다.
한복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신분을 구분하고, 부류를 구분하고, 때에 따라 입는 것을 구분했다.
이방인들 조차 한복의 품격에 반한 이유였고, 그들이 비문화성을 넘어서며 사람다워지기 위해 한복의 구조와 형태를 받아들였던 이유다.
한복이 여전히 우리의 옷일 수 있었던 것은 한복을 짓는 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한복을 입는 마음가짐과 법도를 온전히 계승해 왔기 때문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하늘과 소통해 온 직계 순혈의 혼은 맑고 밝을 것이 분명하다.
배달(倍達)의 본래 뜻이 ‘밝다’이기에, 한국(韓國)의 한(韓) 역시 ‘환하다, 크다, 희다’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이를 전제하여 한복을 전통복식으로 계승해 온 것을 ‘밝은 혼을 보존하는 행위’로 보는 관점이 있다.
“세계의 민족의상에는 그들의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복에는 우리 민족의 영혼 또는 영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배달국에서 고조선으로 부여로 그리고 고구려에서 백제로 이어진 사람들이 입었던 복식을 온전하게 대물림 해 온 익산 사람들이야말로 한복과 인연이 각별한 사람들입니다. 영혼이 맑고, 밝은 사람들, 자연의 법도를 거스르며 살고 싶지 않은 민족이 좋아했던 옷이 한복입니다. 익산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되었던 백제인들은 하늘의 밝음을 닮고 싶었던, 높은 영성을 추구한 사람들이니 품격도 높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지수현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과 교수의 말이다. 대한민국의 익산이 한복을 온전하게 대물림한 본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니 낯설만도 하다. 하지만 익산문화관광재단(대표 문진호)이 오는 10월에 개최할 '한복문화주간_고백 익산_백제를 입다(10월15일~17일)'의 주제가 ‘백제 한복’이고, 그 재현을 원광디지털대학 지수현 교수가 맡았으니 그의 말을 경청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편집자 주> 
 

고백(古百) 한복

익산문화관광재단이 선한 영향력을 갈망하는 선남선녀인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익산문화관광재단이 매파가 되어 도시의 ‘선한 문화' 융성기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다소 과몰입 된 듯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4대 종교 성지가 있기도 한 익산에서 유교 경전에 나오는 지어지선 또는 불경에 등장하는 선남자선여인 그리고 성경속의 선한 목자에서의 그 선한 영향력은 결실을 낳는다. 그 결실은 증폭을 거듭하며 도시를 발전시킨다는 순리의 지평에서 보면 익산문화관광재단의 첫발은 예사롭지 않다.
첫발이다. 익산지역에서 한복의 의미를 재조명한다는 게 낯선 이유다. 더구나 이번 '한복문화주간'에서 조명하는 한복은 근대 국가의 탄생들 속에서 조명된 현대 대한민국의 전통의상인 조선시대 양식에 한정된 옷이 아니다. 한복의 원류로 올라가며 조우하는 백제의 옷이자 마한의 옷이자 고조선의 옷이자 한민족의 옷이다.
지수현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과 교수에 따르면 한복은 ‘한민족이라 이름 불리는 이들이 입어온 옷’으로, 한민족의 원류를 찾다 보면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고대 국가인 고조선에 이르고 삼한의 마한과 부여국에서 나온 고구려의 혈통들이 백제로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한복의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고조선의 준왕이 남하해 마한을 세우고 마한이 백제와 통합되는 계보다. 
수렵과 유목을 하는 기마민족이었던 우리 한민족은 대륙에서 반도로 들어오게 되었고 오래전부터 상의와 하의가 분리된 복식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흔히 요즘 논란이 되는 중국 ‘한족(漢族)’의 전통의상인 ‘한푸[漢服]’의 원형이 되는 기본 복식엔 기마민족들이 입었던 ‘바지’가 없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조상에게 바지를 전해 준 이들은 우리 민족의 조상이거나 원류인 유목기마민족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일본의 기모노에 바지가 등장한 것도 7세기 후반 망한 백제의 왕과 귀족들이 일본으로 이동하면서 8세기 정도가 되어서야 본격화된다고 하니, 백제인의 복식문화를 재현하는 행위는 도시의 정체성을 복원해야 할 익산의 입장에서도 의미가 크다.
익산문화관광재단은 미륵사지와 국립박물관, 중앙동 문화예술의거리 등에서 백제왕도 역사·문화적 특색을 살린 '고백(古百) 한복 - 백제를 입다'를 주제로 백제 시대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관광지를 다니는 체험 등 백제 시대 복식을 알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1400백 년 전 미륵사지 석탑 사리 봉영식 재현 퍼레이드에서는 당시 입었던 의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7세기경 백제의 왕과 왕비는 물론 16관등의 관료나, 미륵사에 있었던 당시 승려 복식도 재현한다. 익산문화관광재단의 목표는 백제 의상을 통해 한복이 고대부터 맥을 이어 온 민족 고유의 전통 의상이라는 사실을 알리는데 있다. 이 행사는 익산역에서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함라한옥마을, 웅포까지 연계한 관광 투어 프로그램과 ‘고백 도시’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미륵사지 내 탑돌이 체험과 함께 풀어내는 이벤트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원광대학교 패션산업학과도 참여하는 리폼 한복 전시 행사가 익산 서부역사에서 있을 예정이다. 이 행사가 ‘입는 옷으로서의 한복’을 넘어 ‘예술의 오브제로서의 한복’을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익산에서 깨어나는 백제

“저는 1400년 전의 사리 장엄구 봉영기가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에서 나온 그 시기부터 익산이 다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639년 당시 백제 최고 관리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 직접 발원해서 미륵사를 세우고 서탑에 사리를 모셨다는 기록이었습니다. 무왕의 건강과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정도의 기록이 아니고 익산이 불국토 혹은 극락정토나 용화세계가 되고 자신도 해탈할 수 있도록 발원한 마음이 새겨진 사리봉영기를 읽었죠. 익산이 보통 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벼락같이 들었습니다. 용화세계에 가고 싶은 사택왕후가 실제 존재했고, 당시 미륵사지는 바로 그 낙원 세계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확신이 그녀에게 있지 않았을까요? 평화 낙원의 세계를 갈망했던 이는 여성이였습니다. 삼국 통일 전쟁에 승리하게 해달라는 무왕의 소원이 새겨진 것이 아니고, 해탈하여 용화세계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비는 사택왕비의 소원이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지수현 교수는 자신이 '익산에서 의미 있는 인생을 마무리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를 그렇게 떠올렸다.

“저는 익산 뿐 아니라 전라도에는 연고가 전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조부모와 부모님들도 당신들의 고향을 떠나서 연고 없는 경기도 지역에 안착하시면서 열과 성을 다해 지역에 대한 애정을 쏟아 오셨습니다. 저에게도 이제 익산은 남은 인생 동안 정성을 들여 살아가 볼 곳입니다. 세익스피어가 ‘나의 국적은 인류’라고 했는데 ‘내 국적은 문화’이고, 문화민족, 문화시민, 문화국가에 대한 나의 꿈이, 익산에서 ‘사리 봉영기’와 ‘미륵사지’ 의 가치가 재조명되게 되면서 제 생전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역사 문화 도시로 거듭날 곳에서 저의 새로운 시작과 끝을 설계해 보고픈 설레임이 있습니다. ”

지수현 교수는 “익산은 백제 유산의 보물창고입니다. 무엇보다 익산 사람들의 몸에는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높은 영성을 추구했던 선한 백제인의 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익산 사람들은 아주 유연합니다. ”라고 특질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호남사람들을 일컬어 풍전세류(風前細柳)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 명제는 아마도 부드럽고 유려한 감성을 추구하는 백제계 사람들에게서 나왔을 것이다”라며 ‘익산의 도약은 먼저 왕도의 정체성을 가진 품격 있는 도시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것이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품격은 다른 지역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힘이다. 익산이라는 지역의 문화가 표방하는 여성친화, 아동친화 지향이 곧 지역의 잠재역량이며 차별성이다. 한복의 정신은 그 지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역설한다.

그런 맥락으로 한복을 본다. 품격은 엄숙미에서 발현되지만 그 핵심은 누군가를 이겨먹지 않으려고 하고 평화롭게 공존하고 약자를 배려하고 돌보려는 선한 감수성이다. 무엇보다 한복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의문화를 평가하여 이른바와 같이,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와 한복

고조선의 후기 유적인 길림성 후석산 유적에서는 방직기로 짠 마포가 출토되었다. 방직기 사용은 고조선의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이 유적에서 또한 옷을 장식하던 청동 단추를 비롯한 여러 치장용품도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고조선 사람들이 옷을 만들어 단추도 달고 다양하게 치장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지수현 교수는 “남조시대 양나라 때 입조한 사신중 백제계의 의상이 가장 품격 있었고, 10세기 초 당나라의 번객입조도에 나타난 백제 사신의 의상이나 관모를 쓰고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은 모습 등 예를 갖춘 모습을 보면, 다른 사신들과 비교할 때 품격이 확연히 다르고 교양이 쌓인 민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백제 한복의 위상을 설명한다.

그는 “익산에는 백제의 문화유산이 차고 넘치지만 지역 공동체의 저변에는 스며들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면서도 “하지만 가랑비는 국지적으로 내리는 중”이라며 넌지시 잡고있는 희망의 끈을 보인다.

한복은 누구에게나 맞춤이며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 지수현 교수는 “입체적인 양복은 모양이 완성돼 있어 옷에 몸을 맞추는 데 비해 평면구성인 한복은 옷이 몸에 맞추는 사람 중심의 옷”이라고 한다.

평면인 한복은 사람이 입었을 때 비로소 입체가 된다. 입는 사람이 자신의 개성에 따라 연출할 수 있는 열린 구조다. 몸을 그대로 풍성하게 감싸줘 신체의 결점을 가려주면서도 우아한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특히, 치마와 저고리는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져 화려하고도 단아한 자태를 풍긴다. 팔을 끼워 넣어 입는 저고리는 상체를 작게 보이게 하고, 허리에 감아 입는 치마는 하체를 풍성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균형을 잡아준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