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홍

협동사회연구소 대표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는 차갑고 건조한 느낌이었다. 민생고에 시달리는 국민들께 드리는 새해 덕담도 없었고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도 없었다. 질문자 한 명도 없는 일방적인 생중계 발표였다. 신년기자회견은 없었고,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만 이어졌다. 12월 31일에 북한이 미사일 쏘고 1월 1일에 무인기 소동이 일어났지만 대북 정책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경제’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경제위기 대책으로 수출을 강조했다. ‘복합의 위기를 수출로 돌파해야 합니다. 인프라 건설, 원전, 방산 분야를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육성할 것입니다. 핵심 전략기술과 미래 기술시장 선점을 위한 지원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챙기겠습니다’ 수출을 강조하는 것이나 기술변화에 대한 대처를 강조하는 것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느낌이다. 다만 원전을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한 점은 탈원전을 추진해온 이전 정부 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기조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신년사에서는 ‘3대 개혁’을 강조했다. ‘기득권유지와 지대추구에 매몰된 나라에 미래가 없습니다.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기득권과 지대추구에 대한 문제의식은 절대 공감이지만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달라 보였다. 기득권과 지대추구를 하는 가장 큰 세력은 누구일까? 많은 국민들은 독점 대기업이나 정치인들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재벌개혁이나 정치개혁이 거론될 자리에 3대 개혁이 제시되었다. 물론 노동, 교육, 연금개혁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개혁 과제이다. 하지만 정치개혁, 기후위기 대책, 조세개혁, 그리고 경제의 핵심조건인 남북평화의 문제 등 매우 중요한 과제들이 정권 출범 후 첫 신년사에서 빠져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노동 개혁을 가장 강조했고 내용도 가장 많았다. ‘노동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합니다.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직무 중심, 성과급 중심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과 귀족 강성 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역시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노사 법치주의’야말로 불필요한 쟁의와 갈등을 예방하고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입니다’ 노동 개혁의 목표와 내용, 방법에 대한 문제 인식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노동 개혁의 목표는 노동자의 보호와 행복 증진이 되어야 한다. 노동 개혁의 핵심은 헌법상의 노동 3권을 제대로 보장해서 노동자들이 사용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노조 조직률은 10% 초반대에 불과하고, 단체협약도 확대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는 너무 크다. 경제주체들 간의 힘의 불균형은 오히려 건강한 산업평화를 저해하는 핵심 요인임을 직시해야 한다. 제대로 된 노동 개혁의 결과는 균형 잡힌 경제 체질이 형성되고 거시적인 사회적 경쟁력과 건강한 산업평화가 확보되는 것이다. 많은 선진국들의 사례가 보여준다. 비정규직에 대한 심각한 차별의 문제도 노동 개혁의 핵심 과제이다. 노동 개혁의 역사는 또한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이다. 여전히 OECD국가들중 최장시간 노동국인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그만큼 행복도나 삶의 질이 떨어진다. 노동 개혁을 통해 경제 성장을 견인해 나간다는 표현은 노동 개혁을 경제 성장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하는 철 지난 성장론이다. 노사 법치주의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이라는 주장도 국제적인 노동 감수성에 한참 떨어지는 독재정권 시대의 유물 같은 느낌이다. 소위 ‘노동 개혁’의 문제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세력을 결집하고 지지율을 올리려는 대국민 선전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개혁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교육개혁도 끄집어냈다. ‘교육개혁 없이는 지역 균형발전을 이뤄내기 어렵습니다. 또, 지역 균형발전은 저출산 문제 해결의 지름길입니다. 자라나는 미래세대가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다양화하고,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교육개혁이 국가균형발전과 저출산 문제 해결에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교육 과정을 다양화하고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보면 능력주의, 경쟁 지상주의 교육의 틀을 넘어서는 문제의식은 아닌 것 같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세계 28개국 성인 23,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 대한민국은 사회 집단 간 갈등을 측정하는 ‘문화전쟁’ 지표 12개 항목 중 무려 7개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일상적인 내전 수준의 갈등이다. 능력주의, 경쟁 지상주의 교육과 사회풍토가 낳은 우리의 현실이다. 국민의 고통은 세계 최저출산율, 최고 자살율, 최고 산재사망율, 최저 행복지수로 표현되고 있다. 경쟁주의와 능력주의 교육에서 협동과 연대의 교육으로 대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팬데믹, 기후위기 등에 대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공멸의 길이다.
연금개혁을 3대 개혁에 넣은 것은 일견 용감해 보인다. ‘연금개혁에 성공한 나라의 공통점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목표로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하고 논의해서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부디 사회적 합의를 위한 현명하고 인내력 있는 공론화 과정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윤석열표 3대 개혁의 방향과 내용의 문제만이 다가 아니다. 개혁은 국회의 입법 과정이 필수적일 것이다. 중요하고 어려운 개혁일수록 소통과 토론, 그리고 협치의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윤대통령의 태도는 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깊이 있는 소통과 협치의 노력 없이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권의 싸움에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대통령부터 더 많이 듣고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 것이다. 겸손하게 소통해야 할 것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윤대통령 신년사 발표의 형식과 내용이 보여준 바대로 일방통행식 불통, 협치 부재, 시대착오적 역행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