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인문운동가

<인(仁)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돈'을 벌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일하는 것은 결코 그 자체가 자유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그러나 이런 시스템이 생산력을 증대시켜 왔기 때문에 세계적 범위에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시도들은 실패하였다.일하는 것이 기쁘고, 일터가 자아실현의 장(場)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경제 제도와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식으로 볼 때 아직은 틈새에 불과하지만, 이 틈새에서 새로운 방식과 문화가 만들어지고 이 틈새가 점점 확장되다보면 어느 날 새로운 세상이 성큼 다가온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 방식의 하나가 협동조합이다.
어떤 점에서는 경제의 최전선에서 낡은 진영 대립을 넘어 좌우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넘어서는 사상과 실천의 현장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장쾌한 그림이지만, 협동조합의 생산력이 뒷받침될 때의 이야기이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 안에 포섭된다. 외부는 체제순응적이다.
그런데 내부의 작동원리는 이윤동기와 경쟁이 아니라 상생의 협동과 연대이다.  내부는 혁명적이다.
이 조화가 폭력과 무리 없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여기서 핵심은 협동조합의 생산력이 자본주의 방식과 문화에 충실한 기업과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과연 ‘자아실현을 위한 자발적 집중과 동료와의 우애’가 ‘즐겁게’ 생산력으로 전화(轉化)할 수 있을까?

논어 이인(里仁)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증삼이여, 나의 도는 한 가지 이치로 일관되게 꿰뚫는 것이다.” 하시자 증자께서 “예” 하고 대답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무슨 말씀인가?” 하고 물으니, 증자께서 대답하셨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입니다.”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이 충서(忠恕)의 ‘충(忠)’을 수식어로 보아 ‘진실한 서(恕)’로 해석하여 ‘서(恕)’ 하나로 일관했다는 견해도 있지만, 충(忠)은 자아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서(恕)는 사람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로서 이 둘이 보합하여 자타(自他)의 생명력을 함께 살리는 것으로 나에게는 보인다.

 서(恕)와 충(忠)의 현대적 살림과 그것도 마음의 세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으로 발현되는 것이야말로 인류 진보의 희망을 갖게 하는 가장 큰 요소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논어 위령공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서(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曰, 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공자는 서(恕)를 풀이하면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한다.
이 말이 무엇을 위미할까?
이 말이 ‘내가 매운 것을 원하지 않으면, 매운 것을 남에게 권하지 말라’ 또 그 반대로 ‘내가 단 것을 원하면 남에게도 단 것을 권하라’라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것이다.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나에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것이다.
여러 차원에서 존재하는 강요나 강제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 자유를 확대해온 인류의 역사다.
사람마다 감각이 다르고 판단이 다르며 취향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생각한다.

자유권(自由權)이 확대되어 제도적으로 강제나 강요는 많이 사라졌지만, 법에 의해서 규율되는 생활보다 실제로는 법 이외의 일상생활이 훨씬 더 많고 사람들의 행복에 중요하다.
가족, 동료, 이웃과의 관계에서 알게 모르게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되고 사이가 나빠지게 한다.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저해함으로서 결국 자신의 행복을 저해한다.
쉽게 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장 잘 안 된다.

서(恕)에 대해서는 그 나름의 설명을 했지만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고, 충(忠)에 대해서는 그런 설명이 없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비롯한 어떤 ‘이름(개념)’에 대해서도 단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공자의 일관된 태도다.
그러다보니 충(忠)이 국가나 군주에 대한 충성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현대인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은 충(忠)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시대적 사회적 한계에 불과한 것이다.
충(忠)은 스스로 하고 싶어서 어떤 일에 마음을 집중해서 전념(專念)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이 자발성과 전념에 더하여 ‘기쁨’을 충(忠)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말하고 싶다. 기쁘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다. 그리고 기쁨은  도덕이나 의무 등으로 강요될 수 없다.
자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진정한 기쁨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만나는 곳에 충(忠)이 있다.
지금까지는 충(忠)이 불의를 막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헌신을 의미하는 말로 많이 쓰여 왔지만, 이제 자아(自我)를 최고로 실현하는 기쁨으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인류가 진보한다는 가장 큰 징표로 다가온다.

 일터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에 서(恕)의 문화가 자리잡는다면, 각자는 자아(自我)를 최고로 실현(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게 된다. 또 자아실현의 기쁨을 충분히 느끼게 되는 만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도 더 쉬어진다. 이 둘 즉 서(恕)와 충(忠)이 서로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체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이나 마을 만들기나 주민자치와 같은 공동체 운동의 현장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연습장이 아닐까 한다.
 충(忠)과 서(恕)라는 말이 이미 해체된 낡은 사회와 연관되어온 역사에 비추어 그 단어에 집착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자아실현과 상생의 길, 생명과 평화의 길을 가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