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택한 죽음은 살아서 지킬 수 없었던 명예 때문이었다.
그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특권을 해체하고, 그 위에 새롭게 세운 권위는 도덕성이었다. 임박한 사법부의 판단에 앞서 도덕적인 흠결이라니, 살아있어도 죽음만 같지 못한 자기부정의 상황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 죽어야만 하는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판단의 기로에는 혼자 서 있었지만, 그 결정의 중심에는 주변공동체가 있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자신을 신뢰하는 이들이었다. 그를 가장 높은 산에 밀어 올리고, 낙향에 동반하여 조건없이 그를 흠모해 온 수많은 이들에게 배신감을 안겨 줄 수 없었다.
대통령이었던 그는 분배의 정의를 위해 쏠림을 거부했고, 투명성과 금욕을 정(丁) 삼아 태산을 이룬 기득권의 바위에 쩌엉쩡 정질을 하지 않았던가. 얻는 것도 없이 번잡하고 시끄럽던 정권이었다.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하면서, 힘이 빠진 권력이었다. 단지 정연할 뿐인 그의 논리는 거대한 기득권의 굉음에 섞여 들리지도 않았고, 으름짱으로 대응하는 그의 쓴소리들은 막말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가 얻은 것이라곤 사람 뿐이었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부조리한 것들에 부딪힐 수 밖에 없고, 공정한 게임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생각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이를 표상으로 삼고 묵묵히 뒤를 따르던 사람들. 노무현의 분신으로 신념의 세포분열을 믿었고, 그래서 뜻을 이루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들에게 좌절과 치욕감을 안겨 줄 수 없었다. 이미, 말기까지 진행된 정신적 공황에서 벗어날 자각의 기제가 되고자 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 노무현, 외면 당한 단 한사람의 노동자를 위해 전부를 던졌던 노동투사 노무현, 정권의 권력구조 자체를 재구성하려 했던 노무현, 균형을 추구했던 노무현, 모든 권위를 국민에게 돌려주려 했던 노무현, 그는 그러한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가 지키고자하는 신념의 지점에는 지역도 정파도 없다. 미래를 위한 용단이 있을 뿐이다.
그의 죽음은 명예에 대한 인식의 프레임을 확장시키면서, '희망의 지속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라는 역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과 주변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한 흔적은 짧은 유서 전반부에 집약되어 투영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조건 없이 그의 신념을 따라주고 밀어 준 사람들, 그래서 속절없이 같이 상처받는 사람들, 신념을 버리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함께 침몰해 갈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더이상 절망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와 우리가 받았던 고통이 부당한 가해에서 기인한 것이냐 그렇지 아니하냐는 오랜 동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가 믿었던 가치가 부당하게 유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희망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정치 보복'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되돌아 갔다는 주장에는 더구나 동의할 수 없었다.
그가 검찰을 삼권분립의 완전한 주체로 독립시킨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자기부정을 강요하는 정치적 현실의 일탈이었다. 이 땅의 모자란 정치는 그가 지극히 바라는 자연인으로 끝내 보내지 않았다.
누구도 그의 죽음을 왜곡시켜 욕망의 재생산에 이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이제, 그가 정치인이라는 허울을 벗고 자연의 또다른 조각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기를 바란다.
다만, 농촌의 한 어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소박한 노무현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비통할 따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