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 전.. 기와나 생활 도구 등 유물 널려 있어
세력 당당했던 백제의 사찰.. ‘괴무덤’ 이야기 전해져

‘괴무덤’이 있는 자리로 추정되는 미륵사지 남쪽 1Km 지점.

◇ 마을 사람들 삶의 터전..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그 당시에는 절터 자리에 마을이 있었어. 우리 집도 지금 동탑 뒤 대나무 무성한 자리였다고.”
금마면 기양리 노상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금마를 지켜온 대한보강원 채남석 원장은 미륵사지 발굴·조사 전부터 지금까지 미륵사지와 함께 살아 온 산 증인이다. 당시 생활상을 들어보기 위해 그를 만났다.

그는 50~60년 전 미륵사지에서 자랐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당시 우리 집이 지역 유지였지. 아주 잘 살았어. 아버지 교육열이 대단하셨는데, 당시 미륵사지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한국문화사학회의 거두였던 고 황수영 박사가 미륵사지 연구를 하며 2개월 여 우리 집 사랑채에서 살았어.”

당시 그의 집은 현재 미륵사지 동탑 뒤 대나무가 무성한 자리였다. 가운데 목탑지와 복원에 착수한 서탑 사이 마을길이 있었고, 이 길이 마을의 주 통로 역할을 담당했으며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금당지 자리쯤에 농사를 짓기 위한 간이 저수지 시설이 있었다. 당시 절터 위에 자리 잡은 마을은 대부분 논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땅에 돌이 많아서 모를 심기 위해서는 일일이 들어내 깨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절터의 기초석일지도 모르는 돌들이 유물로 출토돼 보존되기 전에는 한낱 돌덩이였던 것.

“황수영 박사님 계실 때는 기와나 활촉 같은 것들을 주워오라는 심부름을 많이 했어. 특히 기와에 글씨나 그림이 있으면 아주 좋아하셨지. 수저나 밥그릇, 엽전 같은 것들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마을 아이들 모두 주워 가져다 엿을 바꿔먹곤 했어.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석탑 위에는 한여름에도 모기가 올라오지 않아서 제일 명당 자리였다고. 골목대장이 제일 위층에 자리를 잡으면 줄줄이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놀았지.”

그때 당시에는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삶의 일부였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모두 하나하나 미륵사지의 조각들이다.

그때의 미륵사지의 조각들이 하나 둘씩 발굴되고 복원되며, 그 가치를 되찾으려 하고 있다. 비록 복원된 모습이지만, 동탑이 견고하고 짜임새 있는 모습을 뽐내며 서 있고, 국보인 석탑도 부활의 첫걸음을 떼었다.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도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며 관람객들의 눈앞으로 다가와 있고, 이들을 간직할 익산의 국립박물관도 건립될 채비를 하고 있다.
일생을 금마와 미륵사지에서 보낸 채 원장은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 바로 미륵사가 복원되는 것.

미륵사의 기와를 주워 나르며 컸던 그는, 이후 미륵사 복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0년대부터 활동하던 ‘익산고적보존회’가 1984년 사단법인 ‘익산고적선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되면서 부회장을 역임하며, 익산의 문화유산 지킴이 역할을 자처했다. 사재와 발품을 팔아 만든 학술집 ‘익산문화’를 발간하고, 미륵사 복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전개하는 등 쉼 없이 미륵사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미륵사지를 포함한 백제역사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지금, 그는 미륵사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미륵사지와 가까운 곳에 따로 장소를 정해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사찰이었던 미륵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 쥐 형상의 미륵사 터.. 고양이 무덤으로 잠재웠나

“그려, 맞아. 있고 말고. 괭이무덤이라고도 하고 괴무덤이라고도 하지.”

익산시사에는 미륵사지에서 남쪽으로 1km쯤 가면 ‘괴무덤’이라는 무덤 자리가 있다고 전해진다. 예전 미륵사는 엄청나게 큰 규모의 절이어서 기거하는 중들의 수도 놀랄 만큼 많았다. 그래서 절이 위세를 부리고 많은 중들로 인한 행패도 심해, 절 앞을 마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언제나 호된 봉변을 당하는가 하면 인근 마을에서는 미륵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사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비방을 알려준다. 도사의 비방은 “미륵사 자리가 풍수 상 쥐의 형상인데, 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먹는 형국이라 그 길목에 쥐와 상극인 고양이를 묻어 놓으면 절의 기세가 꺾일 것”이라는 것.

이에 마을 사람들은 미륵사로 통하는 길목에  고양이 형상을 만들어 묻었다. 그런 뒤로 절이 차차 망해갔고, 거주하던 중들의 수도 줄어들어 행패나 괴롭힘도 자연히 사라졌다. 이 고양이 형상을 묻은 곳이 괴무덤이다.

“예부터 미륵사 터를 쥐혈이라고 했어. 괴무덤은 당시 중들이 아녀자를 겁탈하고 행패를 부리니까, 상극인 고양이를 묻어 쥐를 잡으려 했다는 것이지. 괭이무덤이나 괭이뜰, 괭이모퉁이라는 말들도 있어.”

또 다르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보다 구체적이다. 역시 미륵사의 중들이 행패가 심했는데, 그 중에서도 주지의 성질이 어찌나 못돼 먹었는지 이 절 앞을 지나 신행하는 신부를 모조리 잡아다가 욕을 보였다. 그래서 이 근방 사람들은 혼인할 때마다 큰 걱정거리였다.

어느 날 절 서쪽에 있는 기양리의 권 씨의 딸이 절 동쪽 봉산마을에 사는 심 씨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신부 아버지 권 씨는 어떻게 하면 무사히 절 앞을 지나가게 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끝에 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됐다.

그때 마침 길을 지나가던 한 도사가 이 말을 듣고 권 씨를 찾아가 “미륵사의 주지는 천년 묵은 쥐가 둔갑한 것이니, 이것을 없애면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권 씨가 오래 묵은 고양이를 잡아다가 절 어귀에 묻어두자 미륵사 주지가 얼마 뒤 죽고 말았다. 주지가 죽고 나자 절도 망하게 됐고, 마을 사람들은 편하게 살게 됐다.

이 고양이를 묻은 곳이 괴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느 이야기든 당시 미륵사의 세가 대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미륵사의 쥐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상극인 고양이를 이용했다는 점이 공통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다른 의견도 전해진다. 채남석 원장의 은사이자, 익산고적선양회 활동을 함께하며 익산의 문화유적 발굴과 미륵사 복원을 위해 노력했던 고 송상규 선생은 “괴무덤에는 아주 중요한 문서나 유물이 보관돼 있었을 것”이라며 문화유적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미륵산 정상을 중심으로 좌우를 감싸고 있는 지형처럼 균형적인 측면에서, 전해지는 미륵사지 남서쪽 괴무덤 말고도 남동쪽에 또 하나의 괴무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전해지는 이야기든 고 송상규 선생의 주장이든 검토해 볼 필요성은 충분해 보인다. 미륵사 복원과 함께, 괴무덤의 비밀도 밝혀지길 기대해 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