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지역 마을전통놀이.. 연중 공개행사로 명맥 이어져
열악한 환경 속 전통 잇기.. 행·재정적 지원 뒷받침돼야

◇ 옛 전통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기세배 보존회

“갠지 갠지 갠개갠~~, 덩따 덩따 쿵따쿵~~”

북부시장 안쪽 지하 솜리국악원 연습실에서 장단을 맞추는 장구 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한창이다.

머릿속을 맴돌던 가락이 귀로 흘러들어오며, 귀에서 고개로, 고개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온 몸으로 자연스레 가락을 탄다.
금마지역에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전통놀이인 익산 기세배.

그 모습을 보고자 솜리국악원을 찾았다.

금마면 동고도리에 건립된 익산 기세배 전수교육관이 따로 있지만, 방학 중이라 연습은 시내에 위치한 솜리국악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국악원 지하 안쪽 연습실에는 앉은반 사물놀이가 한창이다.

깃발을 들고 마을간 기 싸움을 하며 정월 대보름날에 세배를 하는 기세배놀이의 연습이라기에는 얌전하다. 그 이유는 며칠 후에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예정된 무대를 위해 손발을 맞춰보기 위한 자리이기 때문.

이날 연습실에 자리한 기세배 보존회 회원들은 특이하게도 영남 사물놀이 가락을 연습하고 있었다. 비교적 단조로운 가락에 특히 북의 소리가 힘차다.

회원 대다수가 50세 이상인 그들은 쉽지 않은 연습을 연신 웃으며 즐기고 있었다. 마주한 서로를 보며 웃는 그 얼굴에서 온 몸으로 전해지는 가락의 흥이 전해져, 방문한 기자의 어개까지도 들썩이게 했다.

◇ 마을 간 단합과 발전, 풍년을 기원하던 전통놀이

익산 기세배놀이는 예부터 전해지는 민속놀이 중 하나로 농기세배라고도 불리며, 새해를 맞이하는 기 놀이이다.

원래 금마와 익산 근교의 옥구, 김제 지역에서 행해지던 것이, 함열 지방에서는 농기 뺏기 놀이로 변형돼 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였던 1937년부터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중단돼 한 때 사라질 위기가 있었으나, 1975년에 금마 주민들을 통해 다시 재현돼 익산 기세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기세배에 대한 정확한 고증은 없지만, 삼한시대 마한의 중심지였던 금마에서 거행됐던 농경의례와 제천의식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옛날 마한시대에는 농신을 상징하는 신기 아래에서 은혜에 감사하고, 풍작을 기원하며, 모든 지역 농민들이 즐거운 노래로 단결했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세배놀이를 마을 간의 화합과 단결의 모체로 삼고 한마음으로 결속시키면서 서로 협동하며 즐기는 농촌의 의미 있는 행사로 계승되고 있는 것.

원래 12개의 마을이 참가했으나, 현재는 6개의 마을로 구성해 80여명이 참가해 40~45분간 놀이를 진행하고 있다.

관례상 서열이 이미 정해져 있는 마을 중 최상의 부락을 선상동 혹은 선생마을, 상대마을, 맏형마을이라 해 기세배놀이의 총 집결지로 하며, 선상동의 최고 지위자인 좌상은 놀이의 총수가 된다. 그 다음 서열의 부락을 부상동이라 하고 맨 마지막 순위의 부락을 막내동이라고 한다.

또한 각 부락에는 좌상과 좌상을 보좌하는 공원, 농사에 대한 일만을 관장하는 벼루가 있으며, 이 외에 총각좌상, 총각머슴, 무동, 무동받이(꽃받이), 기받이, 보조 기받이, 사령이 있다.

기세배놀이의 준비는 각 부락의 좌상이 총괄하며,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농악을 치면서 집집마다 방문해 그 생활 정도에 따라 전곡을 걷어 경비를 충당하게 된다. 정월 열나흗날이 되면 각 마을에서는 농기를 당산에 세워 놓고 기제사를 올리며, 대보름날에는 선상동에 모여 기세배의 제전을 벌인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선상동을 제외한 마을의 좌상들은 공원, 총각 좌상, 총각 머슴, 무동 2인, 무동받이 2인 등을 울긋불긋하고 괴상한 차림을 하게 해 기받이들이 각기 소동기를 받들고 막내동을 향해 열을 지어 행진해 들어간다.

그 때 부상동에서는 풍물을 대동하고 막내동을 향해 가는데, 막내동의 동구가 가까운 곳에서 막내동의 소동기가 보이면 순간 일제히 풍물을 올려 “너희들의 형님네 기세배 행렬이 너희 부락을 향해서 가고 있으니 정중히 맞이하라”고 외친다.

모든 마을의 행렬이 막내동에 모여들면, 이들은 다시 서열대로 열을 정돈한 다음 부상동의 풍물을 선두로 해 막내동의 당산을 한 바퀴 돈다. 이때 막내동의 기받이는 그 부락의 대동기를 받든다. 이렇게 막내동의 당산 순례를 마친 대열은 다음 부락으로 건너가 역시 당산을 한 바퀴 돌고 그 부락의 기받이는 역시 대동기를 받든다.

이런 순서로 마지막 부상동의 당산을 끝으로 대열은 기세배를 위해 선상동으로 집결하는데, 이것을 영행인솔이라 한다. 집결된 행렬은 잠시 음식을 먹어 시장기를 면한 다음 각 부락의 대동기를 서열에 따라 세워 놓고, 자기 마을의 기 앞에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낸 후 기세배의 대제전을 벌인다.

제전을 진행하는 제관은 구호를 불러 시작을 알리고, 그의 구령에 따라 맨 먼저 부상동의 대농기가 네 사람의 기받이에 의해 선상기 앞에 나타나는데, 이때 둘레에서 구경하던 부상동의 응원대들은 절을 되도록 덜 구부려 끝내도록 고함과 야유로 종용한다. 이런 아우성과 소란 속에서 부상기는 선상기를 향해 정중히 절을 올린다.

이때 하위의 기는 약 45도의 구부림을 하고 선상기는 대개 10도 정도로 답례를 한다. 이렇게 3배가 진행되는 동안 선상동의 좌상이나 막료들이 하위 부락의 기들이 깃대를 많이 구부려 정숙한 절을 하도록 호령을 연발하며 양편이 서로 버티는데, 이는 하위 부락들이 관습상으로 세배는 해도 지고 싶지는 않다는 자존심과 긍지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위 부락의 깃대가 절을 할 때에 그 기폭이 땅에 닿으면 불길하다 해 기받이들은 최선을 다해 기폭이 땅에 닿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기세배가 끝나면 강변 백사장에서 여흥으로 무동놀이·씨름놀이·소고놀이·설장고놀이·기돌리기 등을 펼치고, 선상동에서 제공하는 주연으로 끝나게 된다.

◇ 전통 잇기 위한 노력, 지원과 관심 필요

지난 1972년 12월 2일 전라북도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됐다가, 2000년 11월 24일 전북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익산 기세배 놀이는 1995년에 설립된 익산 기세배 보존회를 통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익산 기세배 보존회(회장 소월례)는 현재 90~100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연중 정기적으로 정월 대보름과 익산의 대표축제인 서동축제 때 공개 시연행사를 마련해 8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는 익산시자원봉사종합센터와 연계해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익산지역을 두루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별도로 섭외 요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세배를 알리고 보존회를 지켜나가고 있다.

소 회장은 “시에서 지원해 주는 운영비와 정기 공개행사 때 사회단체보조금 명목으로 나오는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사실상 운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회원들이 서로 일을 도맡아 하고 나누며 보존회를 꾸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06년 문을 연 익산 기세배 전수교육관은 매년 1,0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보존회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소 회장은 “명색이 전수교육관인데, 전문 강사를 채용할 예산이 부족해 강사 없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이다. 익산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에 비해 예산 지원이 아쉽다. 전통을 잇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자체나 정부에서 실시하는 공모사업 지원 등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단위로 이뤄졌던 대부분의 민속놀이와 전통놀이와는 달리, 마을 간의 협동과 두레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공동체를 꿈꾸며 이어져 내려온 익산 기세배.

그 명맥을 잇기 위한 행·재정적 지원과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