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적 특성·지리적 이점.. 적극적 활용
금마·왕궁 일대.. 자연친화적 계획 도입

◇ 지형적 여건

금마와 왕궁 일대의 지형은 미륵산과 용화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5개의 지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팔봉산-용화산-도순산으로 이어지는 외맥과 익산쌍릉 일대의 구릉지-오금산-금마산-제석사지 일대의 구릉지로 연결되는 내맥으로 둘러싸인 분지 중앙부에 용화산으로부터 건지산(굿대숲), 왕궁성으로 연결되는 지맥이 자리하고 있다.

수계는 크게 3개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왕궁리유적과 관련된 수계로서 미륵산과 용화산에서 발원한 익산천(옥룡천), 도평천, 부상천, 왕궁천(궁편천) 등 4개의 물줄기가 만경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다음 미륵산 북측 수계로서 미륵산과 용화산으로부터 발원해 금강성당포구로 흘러드는 북천, 죽정천, 운산천 등 3개의 물줄기가 구성돼 있다. 또한 이와 별도로 익산쌍릉과 인접한 동측에서 남으로 흘러 익산천에 합류되는 갈전천이 위치한다. 갈전천은 오금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오금산성과 오금산 남측의 선형 구릉지와 연속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익산의 물길과 유역이 어떻게 형성됐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만경강 범람에 관한 조선조와 근대의 기록에 비춰보면, 저습지대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익산의 구조는 고대 도성입지에 영향을 미쳤던 이상적 풍수형국이나 사신상응의 지형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사신상응의 관점에서 북측의 용화산은 현무, 남측의 춘포산은 주작, 동측의 도순산은 청룡, 서측의 팔봉산은 백호에 해당되면 금마시가지는 건지산(1872년 군현지도)을 주산으로 하는 명당에 해당한다.

◇ 지리적 여건

1972년 익산군지도와 지형도를 통해 금마와 왕궁 일대의 지리적 입지여건을 살펴보면 미륵사지와 웅포를 경유해 부여로 연결되는 경로, 향교와 천호산성 인근을 경유해 공주로 연결되는 육상 경로, 그리고 왕궁리유적·제석사지·만경강을 경유해 무주·남원 방면으로 연결되는 육상 경로의 결절부에 위치하게 된다.
금마와 왕궁 일대에는 낮은 야산이나 큰 산줄기의 요소마다 고대 성곽이 위치하고 있다. 익산지역의 고대 성곽분포를 교통체계와 대비해보면 대부분의 성곽이 부여(사비성), 공주(웅진성)로 연결되는 주요 경로를 중심으로 배치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미륵사지 방면으로부터 연결되는 경로 상에 익산토성과 금마도토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여산을 경유해 공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경로에는 용화산성, 당치산성, 천호산성, 학현산성 등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금강으로부터 북천을 경유해 금마시가지로 연결되는 길에는 낭산산성, 선인봉산성, 미륵산성, 용화산성과 함께 금마도토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백제 성곽으로 추정되는 팔봉동 토성은 왕궁리유적 서측 구릉지대의 방어거점을 형성하고 있다.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익산지역을 지키는 역할과 함께 당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보면 왕궁리유적을 기준으로 남쪽보다는 북쪽과 금강변에 관방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금마·왕궁지역의 공간구조를 살펴보면 고대의 지리적 특성이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백제 익산도성의 계획구역

금마와 왕궁 일대의 지형 구조를 기준으로 고대 익산 경영의 1차적인 영역은 북으로 금마도토성이 위치한 금마면과 금마면소재지 동북측의 시대산을 연결하는 일련의 선, 미륵산으로부터 오금산을 거쳐 익산쌍릉 일대의 구릉지로 연결되는 서쪽 내맥, 용화산으로부터 시대산을 거쳐 제석사지 일대의 구릉지로 연결되는 동쪽 내맥, 익산천과 부상천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둘러싸인 내부구역이 된다.
2차적인 영역은 미륵산에서 팔봉산으로 연결되는 지맥과 용화산으로부터 도순산으로 이어지는 지맥, 그리고 익산천과 왕궁천 합류지점 내부지역으로 상정된다.

익산지역의 지형특성과 백제 유적 분포상황을 연계해 보다 구체적으로 백제시대 익산도성의 계획구역을 분석해 보면 서쪽으로 익산쌍릉을 외곽에 두고 오금산성으로부터 갈전천으로 이어지는 선, 동쪽으로 제석사지 동회랑지와 인접한 동쪽 남북측선으로 설정된다. 북쪽으로는 금마도토성과 시대산을 연결하는 선상으로 동서축선이 설정된다. 남쪽으로는 1차적으로 익산천과 부상천의 합류지점을 통과하는 동서축선, 2차적으로는 익산천과 왕궁천의 합류지점을 통과하는 동서축선이 설정된다.
이 경우 금마산으로부터 금마면소재지를 경유해 왕궁성으로 연결되는 지형흐름은 전체 영역의 중앙부를 익산천과 함께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지맥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영역구조는 풍수형국이나 교통여건, 입지여건, 방어여건, 고지대를 활용한 중심시설 배치 등의 측면에서 고대 도성제에서 관찰되는 도성구조와 합치되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 도성계획은 자연친화적으로

금마와 왕궁 일대의 지형흐름과 물길,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를 비롯한 백제유적의 배치형태, 고지형 분석결과 등을 종합해보면 고대 익산고성계획에서 자연지형에 순응하면서 이를 활용하면서도 고대 동아시아 도성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형태인 격자형 도시구획을 도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남쪽 만경강으로부터 왕궁리유적, 북쪽 미륵산·용화산을 연결하는 남북 종축선과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를 연결하는 동서축을 기준으로 격자형 도시구획이 도입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당시 백제와 중국의 교류 상황을 고려하면 중국의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의 도성 조영원리가 춘추전국시대를 계기로 지형적 특성이나 지리적 이점, 유사시의 대응전략 등을 고려해 다변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대로 백제의 도성조영에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성기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웅진도성, 사비도성으로 이어지는 백제 도성구조의 근간이 지형적·지리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보다 자연친화적인 도성계획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은 백제시대 익산의 도성조영계획 또한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