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변화, 그러나 도시 전체를 바꾸는 원동력 기대

백제 왕도(王都) 익산, 천년 유적이 산재하고 유물은 땅만 파면 나올 정도로 그뜩한 도시다. 하지만 세계문화유산은 용화산 남측 끝자락에서 북쪽 미륵산까지 치달은 산맥의 구릉에 집중되어있는데, 이 산맥은 도시의 동북단에 남북으로 가로지른 형세다. 그런 탓에 이 산맥은 금강을 사이에 둔 ‘공주 백제’와 ‘역사문화권’을 연대하고 있으나 정작 익산시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백제를 탐방하는 관광객들의 소비가 도시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관광객들을 유인할 익산만의 고유한 매력을 가꾸는 일이 긴요하다.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Ⅰ왕도 사람들
Ⅱ익산 문화의 정체성
Ⅲ방향성

능동의 기틀 쌓기

익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어느 정도의 깊이일까. 그 결과의 값은 애향심의 척도가 된다.

자기 지역의 특색을 숙지한 시민들이 많은 도시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다. 그들은 지역의 가치를 확장하고 재생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한 이해는 관심에서 비롯하고, 관심은 참여들 통해 촉발한다. 참여가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이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익산문화관광재단이 지난 2018년부터 추진해온 ‘왕도정원 가꾸기’는 그 본보기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이름부터 익산이 내장한 천년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주민이 주도적으로 왕도의 역사문화자원을 가꾸는 역사 경관 가꾸기다. 무엇보다 주민이 직접 도시경관 조성사업을 발굴해 실행하면서 도시에 끼친 파급력은 주목할만하다.

익산문화관광재단은 필요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먼저 학생부터 일반인까지 취지를 들어 줄 사람을 모았다. 왕도 정원을 어디에 어떻게 조성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한 워크샵을 지속적으로 마련했다.

적극적인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식물들을 심고 가꾸는 법을 가르쳐주는 가드닝 클래스 개강도 병행 했다.

시민들은 예술적인 감각을 발휘해 나만의 '작은 정원'을 가꾸어 보면서 반려 식물의 세계에 매료 되었다.

이 클래스는 정원 조성이 조경이나 관상 목적뿐만 아니라 정서를 안정시키고 취미 생활의 일환이 될 수도 있으며 식재료를 심고 수확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공유했다.

참여했던 사람들은 왕도 정원의 취지에 흠뻑 취했다. 왕도 정원이 시민들에게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하면 설렜고 그것은 실천의 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어라하 꽃단’이라는 자원봉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어라하’는 백제시대의 왕을 달리 이르는 칭호이고 '꽃단'은 정원을 만드는 단체를 의미하는 말인데, ‘어라하 꽃단’에는 왕의 정원사들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행복한 공동체

왕도 정원 사업은 ‘어라하 꽃단’ 시민활동가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을 특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 3월 3일 열린 회의를 들여다 본다.

이날 회의에서는 남중동 희망 터널을 비롯한 황등면 황등중학교 내, 함라면 금곡마을 등이 왕도 정원사업 대상으로 제안되었다.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는데, 회의 참석자들이 선택한 의견 가운데 ‘남중동 희망 터널’의 경우, “터널이기 때문에 벽 쪽에 밝은 그림과 희망적인 문구가 담기면 좋겠다”. “4계절 내내 볼 수 있는 꽃과 벽화에 그려져 있는 꽃을 식재하면 좋겠다” 등이다.

‘황등면 황등중학교 내’의 경우, “학생들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바로 볼 수 있는 식물을 식재하자”. “학생들이 직접 재배한 후 먹을 수 있는 오이, 토마토 등의 작물을 심자” 등이다.

‘함라면 금곡마을’의 경우, “대추 꽃, 부추 꽃 등 주민들이 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는 작물을 심자”. “사철나무를 심고 주변에 벤치를 설치하여 마을 주민들께서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싶다” 등이다.

그들이 의견이 반영된 왕도 정원은 길가의 담벼락 같은 평면에도 조성되었다. 나무나 꽃을 담은 벽화와 그 아래 화초를 심은 플랜트 박스들로 어우러진 왕도 정원을 완성했다.

그들은 원광정보예술고와 모현동 옥창마을 사이 골목길 같은 오래전부터 우범지역으로 지역주민과 학생들의 민원이 잦았던 곳을 추천하기도 했고, 유관기관과 주민들의 협력 아래 왕도 정원을 조성해 현지 주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어라하 꽃단’은 용안면 입산마을 주민들 및 ‘정원을 만드는 시민 자원봉사모임’과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 꽃을 심는 등 꾸준한 관리로 아름다운 왕도 정원을 만들어왔는데, 꽃밭 가꾸기에 참여한 한 주민의 말이 인상적이다.

“마을 입구가 몰라 볼 정도로 바뀐 풍경에 동네 사람들의 쉼터로 인기가 좋다.봄부터 더운 여름과 장마철에도 이웃들과 함께 직접 꽃을 심고 관리하면서 우리 마을이 변화되는 모습에 몸은 힘들지만 정말 뿌듯했다.”

우범지역을 특성에 맞는 아름다운 골목길로 변화시키자는 취지에 익산경찰서의 ‘범죄예방환경개선사업’이 맞물렸다. 익산희망연대의‘붓으로 만드는 세상’과 원광대학교 미술동아리 ‘월플라워’ 및 조경학과도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해당 동의 주민자치위원회와 마을 주민들, 자율방범대, 원광정보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해 골목의 살풍경을 ‘골목 정원’으로 바꿨다. 기관·단체·학교 간 연계 시스템 구축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획득한 것이다.

‘어라하 꽃단’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땀을 흘린 남부시장에 광장 정원이 생겼고, 금마면 한옥마을 이주단지 앞 저류지와 금마초등학교 골목길 일대에는 ‘왕도 정원’이 생겼다.

영등동 시민공원 내에는 시민들의 ‘한 평 정원’이 조성되었고, 후미진 동네의 골목에는 꽃길이 시골 마을 입구에는 ‘꽃 쉼터’가 조성되었다.

‘어라하 꽃단’ 시민자원활동가들은 그린키퍼 활동도 병행했다. 환경 개선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혐오를 지우고 푸르름으로 빛나는 공간을 창출했다.

다음은 창대하리라

왕도정원가꾸기는 주민들이 마을과 주변 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논의하고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기에 지역의 공공장소뿐 아니라 개인소유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같이 이웃과 함께 만드는 정원문화가 확산하면 지역 곳곳이 꽃과 나무가 가득한 도시로 거듭나고 그 과정에 함께하는 이웃 간 생활커뮤니티 활성화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프로그램으로도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익산시와 문화관광재단은 ‘왕도 정원 가꾸기’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법정문화도시 지정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법정문화도시 요건 중 ‘시민주도’는 무엇보다 큰 무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되면 국비 200억원을 지원받아 지역문화 융성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그런데 ‘왕도 정원’은 법정문화도시 지정 평가 항목 중 핵심으로 꼽히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주도적인 구상과 실천’을 충족한다.

법정문화도시에 선정과 관계없이, 익산문화관광재단은 그 취지에 부응했고, 자원봉사를 매개하는 시민친화적인 재단으로 지리매김 했다는 점, 그에 따른 가능성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왕도정원가꾸기가 주창하는 ‘이리로. 꽃길로’가 문화재단이 내는 여러 길과 융합해 모든 길의 만화방창을 이루길 기대한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