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지표는 속도를 앞세운 편리와 효율. 한옥이 그 궤적 밖으로 밀려난 이유다. '느림'과 '멈춤'
신드롬은 그 반작용이다. 그것은 한옥의 불편과 비효율을 미래의 가치로 떠오르게 한 바람. 천부의 '나'는 멈춰 서야만 생동하는 외부와 감응한다.
세계유산을 내장했던 대표적인 유적지 미륵사지는 폐사지((廢寺址). 드넓은 절터에 동탑과 서탑이 덩그러니 서있다. 그 고요와 적막은 '속도에서 벗어난 이들'이 갈망하던 것이다. 이는 '휴식과 비움', '사색과 치유'가 문화도시 익산의 방향성으로 자리 매김 된 배경이다. 한옥은 문화도시의 핵심 성장 동력이다. 그런 맥락에서 익산시가 보유한 한옥은 익산이 경유형 관광지에서 체류형 관광지로 전환할 수 있는가를 판단할 바로미터다.
세계문화축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익산시(문화관광재단)는 야심차게 가을축제 '한복문화주간'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문화예술계와 학계는 이 행사 일정 중 10월 16일에 열리는 학술대회를 주목한다. 주제는 '메타버스 미래, K패션의 미래와 가치'다. '한복은 빛의 인간을 지향하는 미래인류가 입을 미래 패션의 원형이 될 수 있다'는 지수현 원광디지털대 한국복식과학과 교수의 말에서 학술대회의 지표를 가늠한다.
지수현 교수는 '호모사피엔스였던 이성적 인간이 편리와 효율을 따졌다면, 영성의 인간인 호모 스피리언스는 편안과 조율로 심신의 균형을 추구하게 될 것이니, 한복은 그에 걸맞고, 한옥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역설 한다.
함라 한옥마을을 살펴보게 된 배경이다.<편집자 주>

개방된 의식

함라 한옥을 말 할 때 삼부자집을 빼놓을 수 없다. 김안균, 조해영, 이배원 가옥 등이다. 이 중 안채와 본채, 별채가 ㄱ자형으로 남아있고 가끔 개방되는 조해영 가옥을 둘러 본다.

고택의 색은 절제되어 있다. 나무와 미색, 잿빛, 기와 정도다. 마당의 흙 조차도 볕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그 색은 여기에 묻혀 살았거나 살아갈 사람의 것이며, 볕을 받은 색은 오롯이 사람의 체온을  전한다.

자연과 일체화한 고택은 곰삭은 기품으로 낯선 눈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말이 필요없는 가운데 집주인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된다.

고택의 주요 부재는 생명을 품고 기르는 목재와 흙이다. 나무는 칸칸을 엮어 세운 얼개이고 흙은 지붕과 바닥, 사방에서 내부를 품고 외부에 안겨있다.

마당과 토방, 주추, 마루를 층층이 쌓아 통풍과  간접 채광을 정밀하게 고려했으며, 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균형있게 결합된 구조다.

특히 방안에 앉아서 창문을 열면 창 가득 바깥 풍경이 담긴다. 모든 창의 턱은 그렇게 낮다. 한옥은 이렇듯 자연과 사람, 사람과 문화 사이를 정밀하게 짠 결정이다.

마루에 앉아 마당과 정원과 하늘을 바라보면 보인다 ,한옥은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더 넓은 공간을 내어놓으며 자연과의 일체화를 꾀한다.

이런 한옥의 구성은 외부와 소통하는 집주인의 정서, 경치나 옆방 같은 환경에 대한 태도에서부터 햇빛, 바람, 하늘 같은  자연 환경에 대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함라 한옥체험단지는 삼부자집과 연접해 있다. 함라 한옥체험단지의 한옥은 내용면에서는 여러모로 삼부자집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우선 창문을 높은 곳에 달아 일어서야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했다. 긴장을 풀고 외부와 소통하는 통로를 차단한 것이다.

한옥의 매력에 취해 전국을 두루 주유해 온 조현주 작가(50대, 서울 거주, 일러스트레이터)는 "경기도 가평에 있는 '취옹 예술관'은 어느 객실이든 창과 문을 열면 사계절의 풍광이 산과 나무와 바람, 햇빛에 실려 바로 제 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며 함라 한옥의 창을 애석해 했다.

함라 한옥체험단지 객실 내부를 보면, 창문 안쪽과 출입문 안 쪽에 외부 냉기를 차단하는 미닫이 샷시 문이 설치되어 있고, 텔레비전이 놓여있다.

한옥의 방은 온돌에서 올라오는 온기와 위에 있는 냉기가 서로 만나 대류를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 방 전체에 고르게 퍼진 열기는 쾌적하고 인체에 이롭다. 샷시는 한옥의 특별한 효능을 지워버린 것이다.

게다가 여름 한 철 편의를 위해 설치한 롤(rooll) 모기장은 고아한 한옥 이마에 그어진 흉터처럼 남아 있다. 또 이곳에는 2인실 두 곳과 4인  한 곳에 침대가 있는데 이 역시  한옥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또한 텔레비전이나 와이파이는 내면 치유의 묘약인 고요가 깃드는 것을 정면으로 방해한다. 문명의 이기에 번 아웃(burn out)된 인류가 잠시 동안이라도 젖어 볼 수 있는 태고적 향수를 가로막는 장치다.

한옥체험마을을 조성한 근본 취지는 방문객들에게 한옥의 우수성과 우리 고유의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익산의 한옥은 인근의 조선의 개국 시조 고향으로 상징되는 전주의 한옥마을 앞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고,  일제 강점기 수탈지의 아픔을 겪어 적산가옥을 간직한 군산과 비교 할 때도 내세울 것이 없다. 문제점은 그렇게 극명하다.

100억여 원을 투입한 함라 한옥체험단지는 극히 저조한 수익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한옥 이용에 따른 수익률은 1.5%에도 미치지 못하고, 문화와 음식 체험관 수익도 미미한 수준이다. 한옥의 전통가치를 복원하고 기획 및 홍보, 운영관리 능력을 보강하는 등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촉구된다.

함라 한옥단지는 2017년에 시범 개관한지 5년차다. 한옥 체험을 비롯한 전통문화와 전통음식을 체험 할 수 있도록 조성했고, '함라한옥마을협동조합'이 익산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익산시에 따르면 한옥은 4인용 '안채' 4실과 2인용 '사랑채' 3실, '별관' 3실 등 총 10실이 운영되고 있다. 체험시설은 58평 규모의 전통문화관과 64평 규모의 전통음식관이 운영되고 있다. 부대시설인 대문채에는 음식점 및 찻집이 입주해 있고, 화장실과 17평 남짓한 홍보관이 딸려있다.

이 시설들은 위탁 운영자가 시설관리?운영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수익을 챙기는 대신 연 967만2천원의 임대료를 익산시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익산시에 따르면 10실의 숙박시설이 1년 내내 대실 될 경우 총 3,650팀이 사용할 수 있고 총 2억8,5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연평균 416.6팀이 한옥에 입실했다. 1일 평균 숙박료가 평일과 휴일을 통틀어 약 78,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 평균 매출은 총 3,245만원이다. 이용과 수익률은 1.5%에도 미치지 못한 실적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함라 한옥체험단지의 숙박 및 체험시설의 총 매출은 1억1,295만원이고, 연평균 매출은 3,765만원이다. 연 평균 숙박료 수익이 3,245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 평균 체험 수익은 520만원에 불과하다.

세계문화유산 축전기간동안 백제역사유적지구 3개도시인 공주, 부여, 익산 중 익산을 다녀간 이수민 씨(30대, 서울)는 "야간행사에 매료되어 숙소를 검색했을 때 함라와 금마의 팬션들이 이미지로 보여 준 것과 실제가 많이 다른 점에 실망했다?며 ?한옥이 주는 아취나 자연지향적 여백이 부족한 실제"의 '실체'를 지적했다.

문화예술도시를 지향하며 추진되는 자발적 시민참여 문화연대 조성사업 '삼삼오오'에 참여하고 있는 이상미 씨(50대, 경기도)는 "함라에 향교가 있어서 청소년 '전통관례'를 한옥마을에서 치르려고 답사를 해봤는데, 도와주실 분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주무시고 가시도록 숙소와 식당, 찻집이나 다실 등이 있으면 좋겠는데, 홍보물에 소개 된 것과 거리가 너무 멀어서 놀랐다"고 아쉬워 했다.

한편, 함라 한옥체험단지 인근에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85호인 '함열향교'가 있고, 함라산둘레길 12km 구간이 있어 최북단 차나무군락지, 함라산 전망대, 숭림사 등을 경유하는 관광코스를 즐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