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머셋 팰리스 2층 비지니스 센터에서는, 각 정당의 지방자치위원장을 비롯한 국회지방자치연구포럼, 언론계,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화문화아카데미 주최로 정당공천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대화모임이 열렸다.
2010 지방선거를 위해 구성될 국회정치개혁특위가 이날 논의 된 방향성을 어떻게 취사선택해 법과 제도를 정비할 지 주목된다.
이날, 이시종 의원(민주당)과 황한식 교수(부산대), 이연주 한국여성유권자연맹중앙회장 등 다수의 참석자들은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이 '영호남 일당 독점적 정치구조에서의 견제기능 상실', '중앙정치에의 줄서기와 예속' 등 지방정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국민적인 '폐지운동'을 촉구했다.
특히 하계열 구청장은 2010년 지방선거 전 폐지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밝히는 등 지방 참석자들은 공천 폐지에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참석자들은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지방자치 발전의 해법이 정당공천 문제로 환원할 수 없으며, 종합적인 대책이 요구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최근 75% 이상의 국민들과 80% 정도의 전국지방자치단체장들이 기초자치단체 선거의 정당공천제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참했다.
이날 제1 발제자로 나선 하계열(부산진구청장) 부산광역시 구청장.군수협의회장은 그 같은 민의와 현역단체장들의 열망을 대변했다.
하계열 회장은 이날, "지방기초선거에 정당공천제를 도입할 당시의 순기능이 우리의 지방자치 현실에서는 전혀 작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기능만 부각되어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예속시키고, 유권자의 지방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 초래, 집행부에 대한 견제기능 상실, 지방자치의 본래목적인 주민자치와 생활자치의 실종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으로만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고 짚었다.
그는 영남권, 호남권, 충청권 등 지역분할 구도하의 정치현실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경우에 지역 일꾼이 올바르게 선출될리 없고, 이는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져 저조한 투표율을 낳고 있다는 진단을 내 놓았다.
어차피 내가 투표를 하지 않아도 특정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가 당연히 당선될 것이라는 예단 때문이라는 것.
지역할거주의가 낳은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공식은, 후보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천이 실제 선거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으며, 실제로 아무리 훌륭한 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이라 하더라도 소속 정당의 지지율이 낮으면 자신의 능력과는 관계없이 낙선되고, 능력이 떨어져도 공약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지지율만 높으면 당선되는 부작용이 지적됐다.
하계열 회장은, "이같은 폐단의 주된 원인은 후보 개개인의 능력과 지역발전을 위한 공약이 아니라 대체로 정당을 보고 투표한 유권자들에게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대다수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정책공약의 실천여부는 다음 선거에서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케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그는, 정당공천제의 더 큰 병폐로 풀뿌리민주주의의 근본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지방자치는 주민이 직접 뽑은 대표가 주민의 이익을 위하여 지역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 정착되고 완성되지만,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후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고 눈치를 보게 되면서 지방정치의 자주성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책 경시 풍조 만연
하계열 회장은 정당공천제의 또 하나의 폐해로 직선에 의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본연의 자치기능보다 정당이나 지역 국회의원의 하수인으로 전락된 현실을 짚었다.
국회의원의 간섭과 관여로 정책집행이 주민의 복리를 위한 것이 아니고 정당의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고 파행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정당의 인사권 개입, 행정에 대한 부당한 간섭 등으로 주민을 위한 소신있는 행정을 펼 수 없게 되는 등 행정의 비능률과 비효율을 야기할 우려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첫째, 지방의 예산이 국회의원 '표밭갈이용' 선심성 사업에 투자되는 일이 없어지고, 오직 지역발전만을 위한 사업에 우선하여 예산이 투자될 것이다.
둘째, 지방공무원의 음성적 선거개입 논란이 없어질 것이다.
셋째, 조직선거에 의한 과열 혼탁선거가 방지될 것이다. 지방선거에 특정 정당의 정치적 주장이나 정강정책이 끼어들 수 없고, 특색있는 선거 이미지로 새롭게 변신하게 될 것이다.
넷째, 선거비용이 정당공천에 의한 선거전에 비해 최소화 되어 저비용, 고효용의 지방자치선거가 가능해 질 것이다.
다섯째, 전문 경영인, 고위공직자 출신, 교수, 사회단체 리더 등 전문가 계층의 지방정치 무대로의 진출 기회가 확대되어 지방자치의 발전이 가속화될 것이다.
여섯째, 기초의회 의원들의 집행부에 대한 건전하고 제대로 된 견제기능이 작동될 것이다.
일곱째, 지방정치에 대한 불신, 냉소적 분위기가 해소되고 지방선거 투표율이 어느 정도 제고될 것이다.
지방분권 실패,서울 초집중현상 강화
엘리트 독점구도 해체, 낡은 정치구도 개선해야
이날, 제2발제자로 나선 손혁재 박사(한국 NGO학회 회장)은, 정당공천제의 문제점을 짚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손혁재 박사는, "지방자치 부활 이후 서울 초집중현상은 오히려 강화되어 왔다"고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손 박사에 따르면, 국토의 0.6%를 차지하는 서울에 전체 인구의 22%가 모여 살고, 서울의 외연적 확대로 볼 수 있는 수도권까지 포함하면 전체인구의 45.6%가 모여 사는 등 심각한 집중현상을 보인다.
또, 서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생산의 23.7%, 예금총액의 49.5%, 대출총액의 46.1%나 되고, 대학교의 25%, 대학생의 26.3%, 공공.대학.산업 연구소의 31.3%가 서울에 몰렸다.
특히, 정부투자기관의 14.3%, 정부출연기관의 67.7%가 서울에 있고 병원의 27.1%와 의사의 37%가 서울에 있어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손 박사는, "지방정치가 제대로 잘 되기 위해서는 엘리트 독점구도를 반드시 해체해야 하고, 독점구조를 재생산하는 영호남 일당 독점체제 등 낡은 정치구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당의 개입이 주민자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치의 자리를 나눠먹기의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구조적인 모순을 낳고, 특정정당이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동시에 장악한 지역에서는 단체장과 지방의회 사이의 '견제와 균형' 기능이 상실됐다는 지적이다.
손혁재 박사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에 대해, 소속정당 표방을 통해 정책적 성향 등 정보를 제공하고, 후보 중심 선거로 인한 ‘돈 선거’ 가능성을 차단하며, 정당정치 발전에 기여하고, 무책임 공약을 제어할 수 있는 등 잇점이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당공천제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공천 과정의 민주주의와 공정성을 높이고, 무소속 및 소수정당의 보호를 위해 거대정당에 유리한 '선거기호 부여제도'를 변경하며, 중대선거구제의 유지를 제안했다.
손혁재 박사는 특히, 지방정치 발전을 위해 ‘지역당(local party)’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지역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방의원의 비례대표의 비율을 30%로 대폭 늘리고, 지방정치인 후원회 제도도 도입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손혁재 박사는 또, "실시되고 있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뒷걸음질'이라며, 지역 주민.단체 중심의 지역정치, 일당 지배체제의 극복, 제왕적 단체장의 독선 방지 등의 방안을 모색하자고 말했다./편집국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