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권씨는 80년대 청년시절 우연한 기회에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다가 권인숙 부천경찰서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적극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나서 이리 익산지역 가두투쟁을 이끌며, 국본활동과 함께 이리, 익산 농민회를 조직하여 민주화와 민중생존권 실현 실천운동에 나섰다.(편집자주)   
지금 생각하면 84년 우연히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어렴풋이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이 민주화의 첫걸음이었다.

그후에 민추협 활동을 하던 왕상희 선생을 만나면서 전두환 독재에 일반인도 열심히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한편으로는 인생에 전환점이 된 전희남동지를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관과 역사인식을 하게 되어 85년 이화춘, 박춘봉이와 함께 풍물패(불나비)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민주화 전선에 서게 되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참가는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이 일천했던 우리 청년들에게 인간적 성숙과 운동적 역량을 많이 성장시켜 주었다. 86년 말경에 고 최동우 목사가 숭림사에서 민정당원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소식을 듣고 청년 5명이 경찰서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하다 전원 연행되면서 조직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87년이 시작되자 정부당국은 더욱 강경해지고 마침내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해 2월 중순,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익산에서 청년 20여명이 ‘박종철을 살려내라’ 는 프랑카드를 들고 (구) 경찰서 옆 중앙교회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다 급기야 2명이 연행되고, 그 중 정태인 동지가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 사건이 있고나서 우리는 농민운동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편, 4.13 호헌조치로 목사, 신부, 정치인 등이 주축이 된 익산국민운동본부에 적극 참여하여 실무일과 함께 시위조직을 하고 내적으로는 민중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농민자주조직의 결합체이며 모든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운동 조직에 박차를 가하게된다.

국본 활동을 하면서도 오토바이로 익산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밤낮없이 조직운동에 매달렸다.이 때 만난 망성 형님들, 웅포, 여산, 왕궁농민들, 그리고 나중에 사동맹활동으로 5년여 옥고를 치루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잊을 수 없는 이화춘, 최갑선과 함께 87년 7월 이리.익산농민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87년 6월은 매일 매일 시위에 참여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직운동에 치열했던 그리고 행복했던 민주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지금 이름 없는 별들과 그나마 기억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낸 민주는 가고 없다. 민주를 지켜내지 못한 회한에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난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누구도 비켜 지나가지 않았다. 농사꾼이 되어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 날부터 회의가 들어 고민하던 중 80년대 초 20대 후반 우연히 접하게 된 단행본 책자를 단숨에 읽고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역사와 진실들을 접한 후 내 삶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고 정치 사회운동에 뛰어 들었다.

86년 여름 전주 중앙 성당에서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 규탄 집회에 조정권 동지와 참여했다가 주동자로 현장에서 연행되어 전주교도소에서 3개월여를 복역하게 되면서, 남민전 사건과 오송회사건 등에 연루된 김남주(시인), 이광웅(시인)을 비롯한, 시국 관련 사건의 기라성 같은 정치범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왜 독방에 수감되어야 하는지, 사람들이 왜 나를 피하는지 몰라서   김남주 시인에게 물었다. 김남주 시인이 “하하! 자네나 나는 빨갱이라 수번의 색깔도 빨간색이네. 사람들이 빨갱이를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웃어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분들은 나의 아주 존귀하고 훌륭한 스승이 되었다 3개월여 동안 많은 책들을 접하게 되었고 토론을 하며, 앞으로 농민운동을 하여 농민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출소 후 익산지역에 농민회를 만들려고 구속 전 함께 활동했던 친구, 후배, 카톨릭 농민회 회원, 기독교 농민회 회원들을 찾아 다녔다.

그즈음 조정권 동지를 통하여 서울대 농대 출신들이 김제 지역에서 농민회를 만들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들과(지금도 박용환 동지는 김제에서 활동하고 있음) 함께 86년 겨울 김제 동학농민회를 창립하였다. 87년 1월 박종철 고문살인 사건이 터져, 그 해 2월 나는 우리지역에서도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익산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조정권 동지와 “선도적인 차원의 투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일치를 본 후 시위대를 조직하기로 결심했다. 

조정권 동지와 시위용품을 준비하고 김제동학농민회와 원광대생들에게 지원 요청하여 시위를 하다가 2번째로 구속이 되어 6월 항쟁에 참여할 수 없었다. 7월 중순경 출소해서 나와 보니 조정권동지를 비롯한 선후배 동지들이 이리 익산 농민회를 조직하였고, 87년 여름 익산카톨릭농민회가 조진권 씨의 주도하에 출범되어 87년 여름 웅포 송천지구 수해복구 사업에 농민회원과 노동자 동지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87년 말 나는 대선 정국 속에서 다시 전주역 노태우 저지 투쟁에 참가했다가 수배되어 세 번째로 구속되었다. 이후 열심히 농민회 활동을 해오면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젊은 시절 생각했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세상을 아직 이루지 못한 현실을 보면서 안타깝고 무력감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