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
<편집자주>
일본인들이 쌀 수탈을 목적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황등호 일부를 간척한 논.
부여와 미륵사를 이었던 무왕의 뱃길 황등호
황등호 또는 요교제는 미륵산 일대로부터 내려오는 물길을 막아서 형성된 호수였다.
이 둑 안에 담긴 물은 삼기면과 금마면 일대를 적셨다.
미륵산에서 발원해 삼기면 평야부를 가로질러 황등산 남측단을 적신 뒤 요교에 닿는 기양천과, 역시 미륵산에서 발원해 금마면·삼성동·신용동 평야부를 가로질러 원광보건대가 자리잡고있는 도치산 북측단을 적시면서 요교에 닿는 탑천이 그 외곽이다.
호수의 둘레는 80리(32킬로미터)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실학자 반계 유형원은 ‘호남의 황등제, 벽골제, 눌제를 잘 정비한다면 노령산맥 이남은 흉년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북의 서북평야지대 농사를 전부 책임질 수 있는 물이 남실대던 황등호였다.
벽골제는 김제, 눌제는 정읍 고부면에 있다.
황등호는 본래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최초 축조 연대가 따로 기록된 바 없다.
조용현 교수(문화콘텐츠학)는 백제 무왕이 도읍을 익산으로 옮기고 미륵사를 미륵산에 세운 것은 황등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당시 황등호가 미륵사 앞까지 닿아 있었다는 전제에서 비롯한다.
수리안전답에 해당하는 노령산맥 이남의 곡창지대를 부여보다 가까운 거리인 미륵사와 바로 옆의 왕궁에서 직접 관할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라는 견해다.
그는 또 부여와 익산을 잇는 최단거리의 물길 확보가 미륵사 창건의 배경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부여에서 배를 타고 금강으로 내려와 웅포나 성당포를 통하여 황등제로 들어오는 루트다.
“무왕은 배를 타고 미륵사까지 곧바로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등제는 식량과 물류를 확보해주는 호수였던 셈이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미륵사지 창건설화는 황등제와 무관하지 않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물이 문제이다”
황등호 간척지
식량과 물류를 확보해 주던 호수
황등호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내력도 알 길이 없다.
극소하게나마 남아있는 문헌상으로만 황등제의 규모나 형태를 가늠해 볼 따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으로부터 4킬로미터 남쪽에 있는 옥야현(沃野縣, 지금의 모현동)에서 관리를 담당해 왔다고 전한다.
백제시대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황등호는 고려시대까지 유지되다가 조선 중기 쯤에 사실상 폐제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황등호가 구실을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일본인들은 쌀을 수탈하기 위해 습지였던 황등호 아래쪽(서쪽)의 익산 황등·오산을 비롯한 군산 서수·임피·대야 일대를 비옥한 간척지로 만든 뒤 당장 물을 공급할 저수지로 황등호를 선택한 것이다.
1910년 독수문(현재 진미면막국수)부터 황등 남성다기(황등 청남산 자리)까지 1.3킬로미터 길이의 둑이 축조되었다.
본래의 규모보다는 크게 축소되었지만 황등호는 하류쪽 간척지에 필요한 만큼의 물을 가두었다.
이로 인해 황등호의 동쪽 끝인 임상리 일대에서 황등까지 걸어다니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능도 오래가지 못했다.
쌀 수탈을 위해 더 안정적이면서 더 많은 물이 필요했던 일본인들은 1935년 곡창지대의 상류인 완주군 화산면에 대규모 댐을 건설했다.
경천저수지가 그것이다.
그 이후 황등호 하류쪽 평야부는 경천저수지의 물을 공급받는 수로를 갖게 되었다.
황등호는 25년 만에 다시 방치되었다.
바닥에는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흙이 퇴적을 거듭하고 있었다.
일본사람들이 내버려 뒀을 리 없다.
쌀 수탈 면적을 늘리기 위해 수로를 제외한 나머지 습지를 전부 개간했다.
지금은 번화한 도시가 된 삼성동(외화, 내화, 월성, 임상, 정족, 몽환) 일대도 본래는 습지였다.
황등호가 논으로 변한 이후 경천저수지 수몰민 상당수가 익산으로 이주했다.
일본사람들이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경작하던 영농면적을 감안해 황등호 간척지 농지를 배정하고, 인근 4개면에 주택까지 신축해 정착을 돕고 보상도 했기 때문이다.
습지가 농지로 개간되던 때를 목도했던 권세호 옹은 다음과 같이 그 현장을 기록했다.
“이즈음 극심한 가난에 지칠 대로 지쳤던 주민을에게 대단히 기쁜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고장에 침수 피해와 교통의 불편을 안겨줬던 요교호의 넓디넓은 저수지 물은 만 28년 지난 1935년 가을 서서히 빼기 시작했고 1935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간척공사를 시작했다. 황등에 갈 때 이용하던 뱃길은 큰 신작로가 되었고 하천은 깊은 공사로 물이 빠지니 넓은 호수가 경지정리되어 바둑판 같은 필지답 1,200평씩 분할을 1년만에 완공하여 1937년부터 영농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도로가 없어 교통문제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황등 팔봉길이 개통된 후 넓은 신작로에 우마차가 농산물을 유유히 운반하게 되었으니 벽해가 상전이 된 격이었다”
황등저수지(요교지) 1910년 지도
황등제 1911년 이후 황동호의 모습
상전이 벽해가 되다
익산에는 강(江)이라고 부를만한 자연하천이 없고, 사람이 가까이 할만한 하천이나 호수가 크게 부족하다.
친수공간에 목마른 익산사람들은 꽤 오래 전부터 황등호 복원을 꿈꾸고 말해왔다.
황등호 복원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제언도 쏟아졌다.
황등호 복원을 익산의 비전으로 제시하는 목소리도 늘었다.
호남평야의 북측 기점인 황등호가 마한·백제 농경문화의 발원지로서 국가적 자긍심을 회복시켜 주는 등 범국가사업으로 채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풀이에서 비롯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2015년 3월 익산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황등호를 유수지 형태로 복원키로 결정한 것은 익산시민들의 그러한 여망이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황등호는 황등면 일대 농경지의 침수피해를 막기 위한 배수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일부 복원될 전망이다.
황등면을 지나는 탑천 및 기양천 합류지점 주변 농경지 628ha는 매년 여름 침수가 되는 곳인데, 이곳에 12만평 정도의 대형 저수지를 만들어 홍수를 조절하겠다는 게 익산시의 계획이다.
이로 인해 황등제가 일부 복원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익산시는 기본조사를 거쳐 기본계획을 마련했으며, 공사를 맡은 한국농어촌공사는 지난 5월에 배수개선사업에 착공한 상태다.
익산시는 복원되는 황등호 주변 일대를 수변공간으로 조성하고, 쾌적한 휴식공간도 제공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가 370억원에 달하는 이 사업은 또 향후 본격적인 황등호 복원을 위한 전초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익산시는 또 황등호를 고도 익산을 재조명하고 백제왕도 익산의 위상을 고취시키는 역사문화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익산시는 이를 위해 황등호 복원과 고도 익산의 역사 정체성 확립을 위한 ‘황등제의 성격과 실체 확인을 위한 학술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글 공인배 · 사진 송승욱 기자
황등1 배수장 계획 평면도
황등지구 배수개선사업 사업계획평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