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요교호, 군산 동국사 종걸 주지 소장

황등호는 일제강점기 이후 구교호(龜橋湖)또는 요교호(腰橋湖)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황등호는 조선말엽에는 바다 같던 본래 보습은 상실했다.

지금은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는 넓은 평야부를 에워싼 외곽의 마을들과 도로, 산들을 경계삼아 그 자취를 가늠할 따름이다.

‘조선고물고적조사자료’에 따르면 황등호는 일제강점기의 임익(臨益)수리조합에 의해 1923년에 고쳐 쌓여졌다.

황등호는 본래 관리가 안 되는 상태에서도 익산시 황등면과 군산시 서수면, 임피면 일대의 평야의 비옥한 논의 수원지였는데, 토사의 매몰에 따라 상실해가던 기능을 복원한 것이다.

황등제 축조에 필요한 석재는 1923년에 당시 익산시 황등면 용산리에 있는 옛 산성(용산성)에서 수급되었다.

이때 허리다리(요교) 축조에 필요한 비용을 희사한 사람들을 기린 비석이 유실되었다가 후일 다리와 제방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어 현재의 요교(허리다리) 입구에 세워졌다.

이 비석에는 1778년(정조2)에 서만재(徐萬載) 등이 시설비를 들여 다리를 시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황등제는 황등면 청암산과 원불교 총부가 자리 잡고 있는 도치산 줄기까지 호수 안쪽을 남북으로 1.3킬로미터 가량 가로지른 것을 가리킨다.

이 제방의 물은 독수문을 통해 황등 쪽으로 흘러 서부 평야지대를 적셨는데, 이 물길 위로 국도 23호선이 지난다.

국도 23호선을 물길 폭만큼 연결하고 있는 다리가 ‘허리다리’다.

요교호(腰橋湖)는 허리 요(腰), 다리 교(橋), 호수 호(湖)자로 구성된다.

황등호의 갑문이 황등제의 허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법하고, 국토의 남북을 잇는 중요한 다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법도 한, 그 이름부터 상상력을 자극한다.

구교호(龜橋湖)는 요교호 이전의 이름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거북 구(龜), 다리 교(橋), 호수 호(湖)를 쓰는 이 다리 이름은 오래 전에 이 다리가 거북모양이었거나 그렇게 보여서 붙여졌을 것이라는 짐작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지금의 이 허리다리는 경천저수지의 물을 익산 황등뜰 군산 서수·임피뜰 등 드넓은 서쪽 평야부에 물을 나르는 ‘탑천’을 가로질러 버티고 서서 국도 23호선의 육로 연결을 감당하고 있다.

황등제의 제방 위에서 바라본 허리다리 아래에는 얕은 물이 고여 있다.

가을걷이를 앞둔 전형적인 탑천의 모습이다.

탑천은 상부가 족히 50미터가 넘는 대간선수로이지만 흙을 파서 물길을 낸 자연친화적인 수로다.

그 바닥에 네 개의 다리를 짚고 엎드린 허리다리는 아래쪽에 물막이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그 보와 다리 사이에 담긴 창공이 아득하다.

언뜻 보면 허리다리는 서쪽에서 물이 있는 동쪽으로 엎드려 입을 벌리고 있는 신화 속 풍요의 신 같기도 하다.

또, 허리다리의 아래쪽은 앞뒤로 돌출된 둥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져있고, 그 위에 사각 콘트리트 기둥을 떠받치고 있다.

물이 갑문을 살짝 넘고 있을 때는 제방 쪽에서 보를 보면 거북이 네 마리가 황등호 안쪽을 향해 헤엄쳐오는 느낌을 받을 법도 하다.

갑문을 위아래로 여닫기 위한 장치였을 텐데, 그것이 뜻밖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국도 23호선이 동쪽의 황등호와 서쪽의 평야부를 가로막은 장벽과 같아서 유일하게 양쪽 경계의 문이 되는 허리다리 아래가 신비로워 보이는 것일 터이다.

허리다리 위쪽의 탑천 물은 많지 않지만 쉼 없이 흐르며 마른 수로 바닥에 구불구불 물길을 내고 있다.

그 은빛 여울은 제방 측면에 줄지어 군락을 이룬 은빛 억새들의 춤과 어우러지며 탑천 안쪽에 눈부신 수를 놓고 있다.

이곳을 하이킹 하는 사람이 흡족해 할 만한 계절이며 경관이다.

미륵산에서 발원한 두 갈래 물길

허리다리 위로 되돌아가서 바라본 황등호에는 물 대신 황금빛 벼들이 그득하다.

넉넉한 들녘 동쪽 끝에는 올망졸망한 촌락들이 정겨웁다.

호수는 저 멀리 삼기산과 미륵산 기슭을 옹벽 삼아 물을 모았으리라.

그 물은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산기슭 뒤쪽 혹은 마을 뒤쪽 만곡부들을 구석구석 적시며 남실남실 충만하였으리라.

‘탑천’은 허리다리 아래(서쪽 평야부)를 적시며 만경강에 이르는 지류(支流)의 이름이다.

탑천 상류(동쪽)에는 두 갈래 물길이 있다.

한 줄기는 두천 혹은 망동천(望洞川, 또는 팔봉천)인데, 허리다리 상류 100미터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며 남동진한다.

그 꺾이는 곳에 가장 많은 물이 고여 있다.

경천저수지를 수원으로 하는 탑천은 가을걷이를 위해 경천저수지가 수문을 닫은 탓에 거의 마르다시피 했지만, 왼쪽으로 꺾이며 북동진하는 다른 한 줄기 기양천에 제법 물고기들을 품을 만큼의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허리다리에서 갈라져 남동진하는 망동천은 정족동의 용골방죽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만나고 은기동 내두 앞을 지나 금마면의 미륵초등학교 앞을 거쳐 용순리까지 뻗어나가 있는데 부송동을 제외한 임상동, 정족동, 월성동 들녘을 경유하며, 그 발원지는 미륵산 서록(西鹿)이다.

망동천은 상류에서 완주군 경천저수지에서 시작된 대간선수로와 연결된다.

임상동의 몽환 앞 허리다리에서 북동진하는 기양천(삼기천) 또는 금천(錦川)은 삼기면의 간촌리에서 장항천(獐項川)과 구문천(九文川)에 합류한 뒤 기산리까지 뻗어나가 그 발원지인 서록(西鹿)에 닿아있다.

이 물길이 구불구불 평야부를 지나는 탓에 예전에는 ‘뱀내’라고 불렀다.

‘여지승람’에는 이 망동천 지류인 구문천 유역에는 옛날에 속칭 ‘번지(藩池)’라고도 불리워지던 상실연(上失淵)이라는 큰 못이 상·하 둘로 있었다가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언제 없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은 그 터만 지명으로 불리워지고 있는데, 아마도 황등제가 없어진 후에 생긴 못으로 추정된다.

황등호는 이 두 천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아무튼 황등호는 두 줄기 물길이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 두 줄기 물길의 발원지는 같다.

만약 트레킹을 한다면 초행길일지라도 가다 보면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 한 바퀴에서 평온한 들녘을 지나고 비단물결 수변의 평안을 만끽하며, 수려한 산기슭과 농토 사이를 걸으면서 유유자적할 수 있다.

물길을 기억하는 마을 이름들

1935년 경천저수지가 완공된 이후 황등호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나룻배를 교통수단으로 삼았던 삼기면과 금마면, 팔봉동 및 황등면의 넓은 들에 걸친 호수도 시간이 흐르면서 물 빠진 습지로 전락했다.

황등면에 존재하는 도선(배 나들이, 渡船), 백길(뱃길, 白吉), 섬말(섬 마을, 島村) 같은 마을 이름이 황등호의 물길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허리다리의 남서쪽에 있는 ‘어은리’라는 지명은 과거 금강과 만경강을 이용해 미륵사로 들어오던 임금이 잠깐 머물렀던데서 유래한 지명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물을 가두기 위해 남북으로 축조했던 황등호의 제방은 도로의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었다.

황등호의 습지는 일본인들에 의해 간척되어 논으로 바뀌었다.

바둑판같은 논과 논 사이에는 수많은 도로(농로)들이 생겨났다.

허리다리 쪽에서 탑천 상류(망동천)의 제방을 거슬러 걷다보노라면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폭의 이 제방은 수많은 농로를 거느린 간선도로 같다.

물길과 도로가 매우 조밀하게 얽혀있으면서도 제방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런 교차는 지극히 간명하다.

이 제방에서는 반듯하게 가른 농로들 덕에 삼기면이나 금마면이나 팔봉동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이 제방에서 농로 끝에 있는 마을들은 자동차로 5분 거리 안에 있다.

글 공인배·사진 송승욱 기자

허리다리 앞 수문

기양천(삼기천)

두천(망도천)

두천변 갈대

두천변 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