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 무왕 33년(632년)에 태자로 책봉되었고, 641년 무왕이 죽자 30대 중반이 넘은 그가 즉위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641년 일본천황(죠메이)도 서거했다. 이 때 백제에서 조문사를 보냈는데, 그 일행 중 한 수행원의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지난해(641년) 11월 ‘대좌평’ (사택)지적이 죽었습니다. 올해(642년) 정월 왕의 어머니가 죽고 아우 왕자 교기(翹岐)를 비롯해 교기의 친여동생 4명과 내좌평(內佐平) 기미(岐味) 등 40여 명이 섬(일본)으로 추방되었습니다” 이 일본서기 642년 2월조의 기록은 의자왕의 즉위가 반대파를 물리치고 이루어진 것을 엿보게 해주며, 의자왕이 반대파를 축출하는 정변이 있엇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의자왕의 즉위를 반대하는 세력이 왕자 교기를 추대하려고 했고, 백제의 가장 높은 관직인 ‘대좌평’ 사택지적이 반대세력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기 옹립하려 했던 익산의 귀족 ‘사택씨’ 문벌의 실체는 미륵사지 서탑에서 나온 사리봉안기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리봉안기는 무왕의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교기는 사택적덕이 낳은 왕자로 보인다. 다. 결국, 의자와 교기는 배다른 형제였고 사택 씨를 중심으로한 세력이 교기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의자를 옹립하려는 세력과 대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 642년 2월조의 일본서기와 미륵사 사리봉안기의 내용을 감안 하면, 사택씨 문벌은 의자왕이 태자로 책봉되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방해했던 세력 가운데 하나다. 사택왕후가 주축이 되어 미륵사 서탑을 건립한 것으로 보아 이들은 익산 지역의 세력과도 연계되어 있었다고도 보여진다.

반면 의자왕 옹립세력이 익산 왕궁을 사찰로 바꾼 점은 부여를 중시했던 세력이라고 미루어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백제 정변은 익산파와 부여파의 대립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학자들은 외교노선에 있어서도 의자왕 세력은 대신라 강경노선이었던 것에 반해 교기 추대 세력은 대신라 온건노선이었이었다고 상정한다. 이런 사정들을 놓고 보면 나라의 존망이 걸린 대신라 결전을 앞두고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택씨 일문은 의자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배다른 아우(사택 왕후의 아들) 교기(翹岐)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뜻을 버리지 않다가 의자 추대세력에 일본으로 축출된 것이다.  
 
일본으로 추방당한 교기는 642년 5월에 이시카와의 백제 대정(百濟 大?)에 정착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일본 학자들은 이곳을 오사카 동남방의 돈다바야시市(富田林市) 일대라고 비정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위에서 살핀 익산에서의 정변을 뒷받침해주는 유물과 유적들이 나왔다.
 
오사카 사카이항에 상륙한 교기는 동남방쪽으로 남하해 이곳에 당도한 것이다. 백제 대정은 이시카와 강의 중류 지역이고, 일본서기 비다스12년(583년)에 나오는 이시카와 백제촌(石川百濟村)과 하백제 하전촌(下百濟 河田村)이 있던 지역이다. 지금도 동백제, 서백제로 불리는 지역이 있고, 이곳에서는 백제의 유물,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다.

돈다바야시市는 하비키노市, 가시와라市, 후지이데라市와 함께 ‘가까운 아스카’ 지역에 속한다. 돈다바야시시에서 타케노우치 가도(竹內街道)를 넘으면 나라현이다. 나라현의 아스카(야마토 아스카, 大和飛鳥, 먼 아스카)와 오사카 동남방의 아스카(카와치 아스카, 河內飛鳥, 가까운 아스카) 두 개의 아스카 지역은 일본서기에 나온다.

1945년 이전 일본 군국주의의 시대에는 야마토(나라현) 중심사관에 따라 두 개의 아스카 가운데  나라현의 아스카를 중시해온 경향이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오사카 동남방의 아스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가까운 아스카에서 먼 아스카로 문화 수혈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들이 다수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가까운 아스카 지역은 백제 이주민의 선진문화가 먼 아스카 지역보다 먼저 도착해 일찍부터 꽃을 피운 지역이라고 일본인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오사카 동남방의 아스카 지역은 사카이(堺)항에 도착한 백제인의 입장에서 거리상으로 나라현(야마토)보다 가깝기 때문에 ‘가까운 아스카’라고 불렀다고 알려져있다.

익산에서 출발해 일본에 상륙한 백제 왕자 교기 일행의 족적을 탐사하던 이만천씨(전 KBS 피디)는 2009년 돈다바야시市에서 교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돈다바야시市(富田林市) 교육위원회의 나카츠지 와타르 연구관은 “이 고분은 645년에서 67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이 고분의 동쪽을 바라보면 이시카와 백제촌이 아주 잘 보입니다. 이시카와 백제촌은 일본서기에 나옵니다만, 무왕의 아들인 교기가 이시카와 백제촌 오오이(大井)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645년에서 670년 사이 만들어진 이 고분은 교기의 무덤일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소개했다. 당시 이 고분은 미발굴 상태였고,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이 씨는 교기 왕자가 백제정변에서 패하고 익산의 사람들과 일본에 추방되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돈다바야시市를 포함한 ‘가까운 아스카’지역에 고도 익산의 유물과 유적을 찾아 나섰다.

이 씨는 교기 왕자를 포함한 40여명의 적지 않은 수의 고관이 일본에 축출되었다고 하면 이들을 수행하는 도공, 와공, 석공, 건축공은 물론 스님들도 함께 일본에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미륵사 고유브랜드인 ‘육엽인동연화문’기와와 녹유제조 기술의 산물들이 ‘가까운 아스카지역’에 분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것이 모두 7세기 중엽 이후에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교기 일행이 이 지역에 들어온 시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까운 아스카’는 돈다바야시市뿐만 아니라 하비키노市, 가시와라市, 후지이데라市등 오사카 동남방을 포함한 지역이라는 것은 위에서 밝혔다. 돈다바야시市의 용천사(龍泉寺)를 비롯해 하비키노市의 야중사(野中寺)터, 가시와라市의 산하사(山下寺)터, 대룡사(大龍寺)터, 후지이데라시의 진당폐사(津堂廢寺, 진당에 있는 빈 절터) 등에서 ‘육엽연화인동문’기와가 나왔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1970년대 익산 미륵사 발굴에 참여했던 코베상선대학의 기타노 고헤이(北野耕平) 교수는 오사카 하비키노시의 야중사터를 발굴하면서 7세기 중엽에 제작된 육엽인동연화문 기와를 채집했고, “익산 미륵사지에서도 이와 똑같은 기와가 나왔다”고 밝혔다. 　

특히 가시와라市의 대룡사 기와의 경우는 하비키노市의 야중사 기와와 같은 거푸집를 사용해 인근의 두 지역이 ‘가까운 아스카’ 문화를 공유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또한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의 고유브랜드인 녹유제조 기술(녹유기와 등)로 만들어진 녹유기와편이 가시와라市의 산하사(山下寺)터에서 발굴되었으며, 돈다바야시市 하백제 지역에서는 녹유벼루 조각이, 돈다바야시市의 남쪽 河南町의 쯔카마리 고분에서는 녹유로 장식된 관태(棺台)가 발굴돼 7세기 중엽에 육엽연화인동문 기와가 녹유 기술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유물들은 가시와라市의 자료관, 카와치 나가노市의 치카츠 아스카 박물관, 하비키노市의 교육위원회, 후지이데라市의 발굴조사단 사무실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육엽인동연화문 기와는 돈다바야시市의 용천사에서도 나왔다. 이 씨는 “용천사는 누가 세웠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교기 왕자가 용화산 미륵사와 용샘이 있는 익산을 그리워하며 용이 사는 샘이 있는 곳에 이 절을 세우고 ‘용천사(龍泉寺)’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추론한다.

교기는 고향을 지극히 그리워했다. 그가 개축한 돈다바야시市의 오함사(烏含寺, 현재는 ‘신당폐사’ 新堂廢寺, 신당에 있는 빈 절터)를 보면 그 사무침을 가늠할 수 있다. 오함사가 북쪽 끝에서부터 강당-금당-탑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사찰이었던 것을 교기는 650년대에 금당 좌측과 우측에 동서금당을 짓고 회랑으로 연결하는 가람으로 증축했다. 자신이 살던 고향 익산 왕궁리의 제석사지를 똑같이 재현했다고 보여진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