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이전 서류를 사는 말초적 인구정책보다 일자리 하나를 지키는 게 더 효율적”

사라진 기업

8년 전을 기준으로 익산지역의 일자리 부족과 인구유출 원인을 역 추적하다 보면 2018년의 ‘㈜넥솔론’(익산 제1 산업단지) 파산을 만날 수밖에 없다.
㈜넥솔론은 태양광 소재 분야에서 전국 1위를 달리던 기업이었다. 2007년 가동에 들어간 이후 2008년 758억이었던 연 매출은 2년 만에 그 6배인 4,513억을 기록하는 등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무엇보다 ㈜넥솔론의 종사자는 1,000명이 넘었으며, 생산량과 수출실적 면에서 국내 1위라는 지위에 고무돼 공장 증설 투자를 계획했고, 세계 10위권 진입을 내다보던 전도유망한 기업이었다, 덕분에 익산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선도지역으로 급부상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17년 9월 ㈜넥솔론의 생산라인은 가동을 멈췄다. 태양광 잉곳(폴리실리콘을 녹여 균일한 덩어리로 만든 것)과 웨이퍼(잉곳을 0.2㎜로 얇게 자른 것)를 생산하는 ㈜넥솔론은 태양광 산업 부진에 따른 웨이퍼 판매 가격 폭락,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장기구매계약에 따른 역마진 발생, 차입금 증가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 증가 등으로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넥솔론은 법원에 회생신청을 냈고, 회생기회를 얻어 절차를 밟았으나, 결국 청산절차를 밟아야 했다. 끝까지 회생의 바람을 놓지 않았던 직원들까지 1천여명의 직장이 사라지는 과정이었다.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던 기업은 허무하게 몰락했고, 자치단체나 지역 정치권은 동종 업계에서 ㈜넥솔론 공장을 매수해 재가동할 기업을 모셔오지 못했다. ㈜넥솔론의 숙련공들이 고용승계 되지 못하고 타 업종이나 타지로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이유다.
관내 화학노조의 한 관계자는 “넥솔론 공장은 결국 폐기 처분되는 길을 걷게 됐는데, 자치단체나 지역 정치권이 매수기업을 찾아내고, 넥솔론 공장의 청산가치를 조정하는 등 매수기업과 넥솔론의 협상을 적극적으로 중재해 매수 타결을 이끌어냈다면, 노동자도 구제되고 매각·매수 기업이 윈윈할 수 있었을 것이다”면서 “익산시 입장에서는 가장 큰 기업과 인구를 눈뜨고 코앞에서 놓치는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의 태양광 기업인 ‘한화큐셀’의 경우 넥솔론이 생산하던 태양광 잉곳과 웨이퍼를 재료로 사용해 태양광 셀과 모듈 등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넥솔론 공장을 전체 매수해 재가동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있었고, 특히 ‘한화큐셀’의 입장에서 저가의 중국산 제품 수입에 의존하는 것보다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출 경우 보다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보유할 수 있어 조건만 맞아 떨어진다면 매수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또한 문재인 정부도 적극적으로 태양광 산업을 확대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태양광산업이 불황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높아 노동자들은 ‘한화큐셀’ 같은 기업에 공장 전체를 매각하기를 바라며 희망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다.
그러나 막판까지 대출을 받아 우리 사주를 매입했던 직원들은 법정관리절차 중 상장 폐지되면서 고스란히 빚만 안게 됐다.
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바랐지만 무위에 그쳤다. ㈜넥솔론의 전력이용비를 시혜적으로 감액해 준다면 가격경쟁력이 생길 여지가 있었고, 정부가 국내 공기업과 기간시설에 사용하는 태양광 전지만이라도 국내산을 납품받도록 한다면 사정이 개선될 수 있었지만,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사하는 기업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기업은 익산제2지방산업단지에서 가동 중인 ㈜LG화학이다. 1995년 설립한 ㈜LG화학 익산공장은 280명을 고용해 플라스틱·토너를 생산, 연간 1천 억대의 매출을 올리던 기업이다.
근대화학 업종에 속하는 ㈜LG화학익산공장은 중국 등에 대한 수출(60%) 의존도가 높았는데, 중국 등 후발국에 저가 제품 공장이 난립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는 바람에 지속적으로 시장에서 밀려났다.
㈜LG화학익산공장은 지난 수년 동안 24개의 생산라인을 13개로 축소했고, 280명의 인력을 70명으로 축소했다. 매출은 200억 대로 뚝 떨어졌으며, 누적적자가 가속화됐다.
전 ㈜LG화학익산공장 관리직원 A씨에 따르면, 게다가 당초 11개 라인에서 현재 4개 라인으로 축소·가동되고 있는 ABS(저가 플라스틱) 생산라인은 그나마 이달 초까지 완전히 철거되고, 남아있는 직원들은 권고사직 및 ㈜LG화학여수공장 등으로 이적 처리될 예정이다.
앞서 용역업체 소속으로 ㈜LG화학익산공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3개월 치 급여와 위로금 100만원에 정리됐다.
이에 따라 ㈜LG화학익산공장은 당초 13개 라인에서 7개로 축소된 EP(고가 플라스틱) 생산라인만 가동되는 기업이 됐다. 이 공장에서는 약 70명이 일하고 있다.
A씨 등은 “익산시와 정치권이 기업의 어려운 문제를 실사구시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업을 돕기 위해서는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해법을 찾아내고 구제할 수 있는 민·관 지원팀 등을 꾸려야 하는데, 익산에서는 이런 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은 무관심에서 비롯하고, 형식이라는 구태를 벗지 못한 채 행정 영역 밖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타성에 젖어 변화하지 못한 결과다”고 질타했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