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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대한 시작을 삼킨 무거운 침묵

▲ 과거 청산을 통한 지속가능한 YMCA 재건이 필요해

익산 YMCA(기독교청년회)가 와해 상태에 떨어졌다. 지난 19년 동안 100억에 가까운 부채를 정산하지 못하면서 각종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해결할 주체가 책무를 회피한 탓이다. 익산 YMCA 폐회는 두 가지 큰 피해를 안겼다. 기독교계는 허리에 해당하는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공간을 잃었고, 지역사회는 건강한 사회적 연대를 잃었다. YMCA 부재를 우려하고 복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새로운 익산 YMCA 출범을 열망하는 이들은 지속가능성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다.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의 청산이 선결돼야 하고, 새로 다듬질한 반석 위에 익산 YMCA를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본란은 그 취지에 동참한다. <편집자 주>

익산 YMCA는 웅지를 품은 6인의 장로가 창립했고 장로들은 거의 모든 익산 YMCA의 역사를 지배했다. 그러나 장로들은 법적 절차를 일탈하는 주먹구구식 운영과 무리한 결정 등의 전횡으로 익산 YMCA를 수렁에 빠트렸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별적인 노력과 의지는 있었으나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제3 자에게 이를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익산 YMCA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장로들의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익산 YMCA의 중심에는 각 교회 장로들로 구성된 원로회(난지회)가 있었습니다. 그중 이현식 장로(전 이안과 원장)께서는 자신의 소유이던 현 ‘손약국’ 건물을 YMCA의 뜻을 펼치는 데 쓰라며 희사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원로들은 익산 YMCA의 버팀목이었고, YMCA 운영과 YMCA에서 운영하는 사업 전반을 주관하면서 YMCA 구성원들과 기독교계의 등불을 자임해 왔습니다”
송헌승 YMCA 총장의 말이다.
실제로 익산 YMCA 연혁을 보면, 이현식 장로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창립했고, 조만석(영생당한의원 원장)·이용희(당시 경실련 공동대표)·방순원(기원전자 대표)·오세웅(덕신사 대표)·한병수(진경여고 교장) 장로 등이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위 6인의 원로들은 3년 임기의 익산 YMCA 이사장직을 18년 동안 돌아가면서 맡았고, 한병수 장로는 4회·이현식 장로와 이용희 장로는 각각 2회씩 15년 더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등 익산 YMCA 40년 역사 중 총 33년간 의결기관의 수장이었다.
또 위 원로들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증경이사장(전임 이사장)의 지위로 익산 YMCA 이사회 명단 맨 앞 순번으로 이름을 올렸고, 모든 의결을 주도해 왔다.
이에 대해 익산 YMCA 안팎에서는 “익산 YMCA를 창립하고 이끌어 온 공적과 어른을 존중하는 기독교청년회의 미덕이 만들어낸 국내 유일의 기형적 제도”라는 말이 나온다. 또 “익산 YMCA를 선점한 원로들이 지역에서 YMCA를 이끌 인재를 발굴하거나 육성하지 않고, 관리 운영의 역량을 기를 기회를 주지 않은 채 항존직을 만들고 그 자리에 앉아 YMCA를 쥐락펴락한 건 익산 YMCA 퇴행의 근원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그들에 따르면 오세웅, 방순원, 이용희 등 증경이사장들은 익산 YMCA가 수탁한 익산 청소년수련관의 임의 의결기구인 운영이사회에도 이름을 올려 수련관 운영과 관련한 모든 의결권을 행사하고 감독했다.
그런데 증경이사장들은 무리하게 익산 YMCA 회관 신축을 주도해 익산 YMCA는 건축비 25억원을 부채로 안게 됐다. 또 익산 YMCA 회관 매각 대금 33억원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집행했는데 그 내용은 불투명하다. 그 뿐 아니라 익산 YMCA가 수탁한 익산청소년수련관 후원금 27억원을 모집 및 집행하는 과정에서 수탁법인(익산 YMCA)의 회계를 거치지 않았는데 이를 방치하는 바람에 각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경과를 살펴보면 우선, YMCA 이념에 조예가 깊었던 이현식 장로는 자신의 소유이던 현 손약국 건물을 익산 YMCA에 희사했다. 익산 YMCA는 이 건물을 사용하지 않고 매각한 돈(15억 원)으로 현 전자랜드 땅을 매입했다가 그 옆 주유소 뒤쪽의 땅과 맞교환했다. 수익사업 구상(수영장 설치)에 적합한 이 부지에는 ‘익산 YMCA 회관’이 들어섰다. 익산 YMCA는 회관 신축비 25억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이 같은 노른자위 땅(현 전자랜드)과 용도 이외의 개발이 제한되는 주유소 뒤쪽 맹지를 교환한 점 및 종잣돈보다 더 많은 빚(25억 원)을 진 점 등 주먹구구식 결정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됐다. 게다가 익산 YMCA는 회관 신축 이래 수익사업에서 적자를 면치 못해 직원 급여 체납을 비롯한 각종 미지급 비용이 늘어갔고, 은행 이자는 가용한 범위 내에서 상환하는 중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익산 YMCA는 적자와 부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회관 매각을 결정했다. 그런데 회관 매각대금 33억 원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조만석 증경이사장만 안다. 그가 부채 청산 등의 재정담당을 자임했고, 현재까지도 법인에 정산 내용을 보고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익산 YMCA는 2005년 익산시청소년수련관 수탁법인으로 선정됐다. 관장은 당시 유희영 익산 YMCA 사무총장이 맡았다. 그런데 익산시청소년수련관 위탁 공모 과정은 석연치 않다. 자부담금은 위탁 평가대상이 아닌데 익산 YMCA는 수탁 운영 신청서에 익산지역의 각 교회와 기업, 기독교 신도 등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운영비를 자부담하기로 약정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유래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익산청소년수련관은 2005년 7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모집된 27억 원의 후원금을 임의 의결기구인 익산청소년수련관 운영이사회의 결정을 근거로 무단 집행했고, 수탁법인(익산 YMCA)의 회계를 거치지 않은 이 후원금은 현재까지도 정산되지 않았다. 회계 규정상 해당 후원금 정산결과는 매 회계연도마다 법인 총회에 특별회계로 보고되었어야 한다.
앞선 2005년 6월 오세웅, 이현식, 이용희, 방순원, 조만석, 한병수, 유희영(사무총장) 등은 “익산 YMCA가 익산시청소년수련관을 수탁하게 될 경우 후원금은 반드시 익산 YMCA에 기부하도록 하며 익산 YMCA는 YMCA회계 인준 절차를 통해 자부담금을 지출하기로 한다”고 결의한 바 있다.
증경 이사장들은 이 같은 적법하지 않은 익산청소년수련관 후원금 집행 문제와 익산 YMCA 회관 관련 적자와 부채문제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비상한 현실에 직면했고, 제3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송헌승 목사가 증경이사장들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2010년 11월 22일 다시 익산 YMCA 사무총장으로 부임하게 된 배경이다.
송 총장은 유희영 사무총장의 돌연한 사직으로 공석이 된 익산청소년수련관장을 겸직하면서, 이미 발생한 익산 YMCA 관련 부채 청산과 이자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지급하는데 매달려야 했다. 불법적으로 집행된 익산청소년수련관 후원금 정산 문제 앞에서는 책임 주체들이 협조하지 않는 바람에 오리무중에 빠졌다.
송 총장이 비효율적인 일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가운데 익산 YMCA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고 체납액이 늘어나 이 발등의 불을 끄는데도 동분서주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YMCA 전국연맹은 수차례에 걸쳐 익산 YMCA에 “정산되지 않는 회계 등을 규명하라”고 지시 했다.
송 총장은 증경이사장단과 익산청소년수련관 운영이사회를 상대로 회계 정산과 정상화에 나서도록 다각적인 방법을 동원했으나 결국 벽에 부딪히자 YMCA 전국연맹을 상대로 회계 정산 책임을 묻던 중에 오늘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증경이사장단은 송 청장을 영입하면서 정년까지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근로계약은 물론 수차례 확약하고도 2017년 9월부터는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송 총장은 “이분들은 나아가 나에게 죄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여러 차례 여러 죄목으로 나를 고소했습니다. 물론 모두 무혐의 처분으로 끝이 났으나 그분들이 나한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며 “무엇보다 고소 내용에서는 사실에 대한 무지가 드러나는데, 나는 그 무관심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렇다고 증경이사장단(이하 난지회)이 익산 YMCA 정상화에 대한 의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병수 이사장이 2019년 4. 29일 난지회 회원들에게 등기로 보내 호소한 서신을 보면 사태의 전말과 당시 난지회 회원들의 상태, 한 이사장의 심경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한 이사장은 “우리 난지회 형제들이 오늘에 와서 YMCA로 인한 곤궁한 문제로 상호 거리를 두며 접촉해야 하고 갈등과 고뇌를 하게 된다는 것에 비통함을 느낀다”고 심경을 밝혔다.
한 이사장은 “난지회 회원들이 30년 이상을 선교목적을 위해 YMCA에 헌신해 왔으나 정성과 지혜가 부족하고 운영상 미숙에 따라 적자와 부채가 누적되어 난국을 맞이하게 됐다. 후임 이사장은 부채에 시달린 끝에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고, 송헌승 사무총장을 청빙한 비상체제 경영하에서도 두 이사장이 연달아 중도하차 해 비상 체제 직전 이사장인 내가 다시 십자가를 매게 됐다”고 상황을 술회했다.
한 이사장은 “송 총장은 자신도 생활비를 못 받는 처지에 이사장을 대신하여 억울하게 직원들로부터 소송 대상이 됨으로 내가 옆에서 그 입장을 역지사지해보면 현실을 헤쳐 나갈 길도, 방법도 보이지 않은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익산 YMCA 채무변제를 위해 본인 소유의 주택을 헌납할 뜻을 밝히며 난지회 회원들의 동참을 호소하면서 책임 분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방순원 장로에게는 자신의 주택 매입을, 조만석·오세웅·이용희 장로에게는 직원 인건비와 건물임대료, 사채 등 최소 1억 5천만원 정도를 나누어 분담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한 이사장이 자신의 소유주택을 헌납하고 방순원 전 이사장이 해당 주택을 매입해 익산 YMCA의 빚을 일부 갚았으나 나머지 증경이사장들은 한 이사장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 한 이사장의 말마따나 증경이사장들의 운영상 미숙과 잘못된 관행으로 누적된 익산 YMCA의 부채와 정산되지 않은 98억원에 대한 책임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송헌승 총장에게 떠넘겨졌다.
송 총장은 “익산 YMCA와 나는, 익산시민과 기독교 교계에 확산된 98억 원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벗어야 하며, 이를 통해 익산 YMCA가 그동안의 아픔과 어려움을 딛고 재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YMCA 전국연맹은 지난 17일 익산을 방문해 익산 YMCA 재건을 위한 전국연맹 수뇌부와 송헌승 총장 간의 직통라인을 구축하고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후임 새 총장 육성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해 귀추가 주목된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