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신앙이 응축된 ‘육엽인동연화문’, 일본 쇼토쿠종 본산과 주요 사찰에 존재
익산 미륵사와 일본 법륭사·사천황사 용의 보호를 받기 위해 연못에 절지어

우리가 기억하는 바, 백제는 열등감이 없고 낙관적이며 자부심이 강한 나라였다. 그런 기질은 자기만의 독툭한 문화를 꽃 피웠고, 대국이든 소국이든 그것을 흠모하거나 혹은 탐했다. 질박?정교한 미로 대별되는 백제의 국풍은 누구와도 공명하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 지속가능성 덕에 1400년 전 백제 무왕 때의 불교는 일본에 건너가 아스카 문화의 정수가 되었다. 일본 불교문화의 보고인 아스카 지역의 대표 사적은 쇼토쿠 태자가 창건한 나라현의 호류지(법륭사, 法隆寺)다.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호류지는 이른바 쇼토쿠종(성덕종, 聖德宗)의 본산인데, 사찰 경내의 5층 목탑과 익산 미륵사의 5층 석탑은 그 위에 장식 된 풍탁까지 쏙 빼다 박았고, 호류지 박물관 대보장원에는 ‘백제관음상(대형 목불상)’이 보존돼 있다. 이는 쇼토쿠종이 미륵신앙을 계승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사실은 호류사에 대한 실증적인 탐구와 미륵사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하는 가운데, 누군가는 그 질문을 좇아 왜와 백제의 상관관계, 또는 불교에 기반 한 양국의 지위를 오랜 시간에 걸쳐 추적하기도 했다. 이 란에 소개하는 이야기는 같은 맥락에서 발견한 기와의 이야기이며, 이 기와에 담기거나 기와로 연결된 왜와 백제의 이야기는 미륵사의 독자적인 지위를 재상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무엇보다 이 기왓장 이야기는 박제되어있던 미륵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불씨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육엽인동연화문
2. 백제 미륵반가상

“몇 년 전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을 찾은 일본 돈다바야시 사람들은 ‘스토리가 없는 재미없는 박물관’이라고 혹평한 바 있습니다”

이만천 씨(전 KBS PD)는 “백제 유물에 하루 빨리 스토리를 씌워야 한다”고 했다. 그가 익산 미륵사지의 ‘육엽인동연화문’ 기와를 추적한 끝에 마주한 명제다. ‘육엽인동연화문’ 기와는 중국은 물론 고구려, 신라에 없고, 부여나 공주 등 백제의 강역에서도 현재까지 나온 바 없다. 오직 미륵사지의 것이며 그것은 일본 법륭사(호류지) 등으로 건너가 아스카 문화의 씨앗이 되었다.

‘육엽인동연화문’에는 미륵신앙이 함축적으로 깃들어 있다. ‘육엽인동연화문’은 일본 아스카 문화, 또는 일본 불교의 교조인 성덕태자(쇼토쿠 태자)가 백제 무왕 때 익산 미륵사의 교리를 계승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같은 놀라운 사실을 국내에서는 놀랍게도 아는 이가 없었고, 이 씨에 따르면 그가 사실을 공개하기 전까지 학계에서 조차 언급 된 바 없다.

 ‘육엽인동연화문’은 기와 중 수막새에 찍어낸 문양으로, 동그란 중방에 연자(연꽃의 씨앗) 일곱 개가 박혀있고, 중방을 고르게 둘러싼 여섯 장의 각각 연꽃잎에 세 가닥으로 갈라진 인동문양이 있다. 이 같은 구성은 미륵의 설법이 삼천세계에 도달하는 모습을 함축한다.

미륵성불경에는 미륵이 이 세상에 나와 세상을 구원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염부제(사바세계)의 교두말(翹頭末, ketuma)성(城)에는 칠보장엄의 칠보누각이 있고, 용왕이 이 성을 지켜주고 있다. (....) 또 이 성을 둘러싸고 있는 팔만 사천의 작은 성이 있고, (....) 미륵이 용화수 아래 성도 후 교두말성의 중앙 금강좌에서 설법할 때, 대지는 육종진동(六種震動)하고 음성은 삼천세계에 도달했다.(....)”

 ‘육엽인동연화문’은 칠보장엄, 칠보누각의 교두말성을 일곱 개의 연자가 있는 기와의 중방으로 나타냈다. 불가의 셈법에 따르면 팔만사천의 작은 성은 육도(六道)를 말하고, 기와에서는 중방을 둘러싸고 있는 육엽의 연화로 육도를 표현했다. 삼회설법은 세 가닥으로 갈라진 인동문으로 표상했다.

이만천씨에 따르면 육엽인동연화문양은 미륵의 설법(세 가닥의 인동문)이 교두말성(중방)으로부터 육도(육엽연화)로 퍼져나가며 육종진동을 일으켜 모든 중생을 깨우치는 장엄한 세계를 형상화 한다. 또한 익산 땅이 세계만민의 구세주 미륵 부처님이 출현하는 땅임을 상징하기도 한다.

 쇼토쿠 태자가 백제 무왕 때의 미륵신앙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증거는 미륵 하생의 땅 교두말성(ketuma)을 지키는 전륜성왕=용을 중시하고 용이 있는 곳에 절을 지었다는 점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미륵사를 연못을 매운 땅 위에 창건했는데, 성덕종의 본산인 법륭사와 일본 최초의 국찰인 오사카 사천왕사가 이를 따랐다.

현재의 법륭사는 670년 화재 이후 다시 지은 사찰이다. 서원가람과 동원가람으로 이루어졌고 중궁사가 인접해 있다. 그리고 경내에 약초가람지가 있는데, 화재 이전의 창건 법륭사다. 7세기 전반에 시작되어 643년 무렵에 완공되었던 것으로 본다.

그런데 약초가람은 남북으로 흐르는 냇물을 매립해 탑과 금당을 세웠다. 화재 이후 다시 지은 법륭사 서원가람도 냇물을 매립해 조영했다. 또 약초가람에서 육엽인동연화문 기와가 나왔다. 7세기 2.4반기의 기와다. 미륵상에서 나온 것보다 직경이 훨씬 크고, 인동문의 잎은 다섯 개 다.

화재 이전, 법륭사 동원가람 자리에 있던 이카루가궁(斑鳩宮)의 소불당에서도 육엽인동연화문 기와가 나왔다. 크기는 약초가람의 것보다 작고, 인동문의 잎은 세 개다. 제작 시기는 643년 이전, 7세기 2.4반기로 본다. 주목할 점은 이 기와를 복원해서 1998년 10월 22일 낙성된 법륭사 대보장원의 백제관음당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이만천 씨는 특히 법륭사는 서쪽의 용전천(타츠다가와), 동쪽의 부웅천(도미오가와), 남쪽의 대화천(야마토가와)이 둘러싸고 있는 지역에 있고, 용전천(龍田川)과 대화천(大和川)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산을 나라현에서는 ‘미무로야마(三室山)’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무로’를 용(龍)이란 뜻의 우리말 고어 ‘미르’의 변이형 발음이라고 보면, ‘미무로(三室)’는 ‘세 마리의 용’이 된다는 것이다. 인접한 오사카에서는 이 산을 ‘용전산(龍田山,타츠다야마)’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무로=용=미르’가 성립한다. ‘타츠’는 용이란 뜻의 일본말이고 ‘무로=미르’는 같은 뜻의 우리말 고어다.

이 씨는 “일본말이 있음에도 우리말 ‘미르’를 써서 ‘미무로야마’라고 한 것은 한반도 이주민이 일본에 가 정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며 “이무로야마와 익산의 미륵산, 용화산과의 관계를 부정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씨에 따르면 익산시와 교류중에 있는 오사카 돈다바야시의 용천사(龍泉寺)에서도 육엽인동연화문 기와가 나왔고, 사찰 경내에 용샘(龍泉)이 있다.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이나 샘, 냇물이 있는 곳에 미륵신앙의 도량이 세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씨는 “무왕이 어머니와 마룡지의 용 사이에 태어났다고 전해져오는 이야기도, 무왕이 미륵하생의 땅 교두말성을 지키는 전륜성왕=용임을 말해 준다”고 설명했다.

623년부터 7세기 후반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진 일본의 국찰 사천왕사도 용의 보호를 받고 있다. ‘사천왕사어수인연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경전원(사천왕사의 중심가람)에 청룡이 살고있는 깊은 황릉지(荒陵池)가 있다. 청룡에 제사를 지내고 이쪽으로 사찰을 옮겨 지었다. 땅에 칠보를 깔았다. 청룡이 항상 지켜준다. 맑은 물이 동으로 흐른다.(....)”

이 기록으로 사천왕사 창건에 연못과 용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사천왕사의 금당 서편에 ‘용의 우물’이 있다.

이 씨는 이와 관련 “익산 마룡지 부근에도 용샘의 흔적이 남아있다. 육엽인동연화문 기와가 나온 오사카의 용천사에도 용샘이 있다. 이들 사찰과 익산에 용샘이 있는 것은 미륵신앙을 지켜주는 용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고 풀이했다.

이 씨는 또 연못(냇물?샘), 용(용화산?미무로야마), 육엽인동연화문 기와 등 성덕종과 무왕백제의 공통 키워드와 관련해 “일본서기 602년, 백제에서 일본에 파견된 관륵스님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며 “관륵스님은 성덕태자가 죽을 때 까지 그의 스승이었고, 오늘날에도 법륭사 주지스님 취임식은 법륭사 경장(經藏)에 모셔진 관륵상 앞에서 거행되고 있는데, 이는 관륵스님을 통해 미륵사의 신앙이 성덕태자에게 전파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씨는 특히 “육엽인동연화문이 일본의 법륭사, 사천왕사, 익산의 미륵사지에서 나왔다. 따라서 세 사찰은 형제 관계, 또는 부자관계다. 그럼에도 이산가족으로 천년을 넘게 살아왔다. 앞으로의 해우를 기대해 본다”며 일본 성덕종과 관련한 익산 미륵사의 위상 재정립을 희망했다.

한편 ‘육엽인동연화문’이라는 이름은 일본인이 붙인 것이다. ‘인동문’은 paimette를 일본인이 번역한 것인데,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paimette는 부채살 모양의 대칭을 이루는 식물 모양을 지칭한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