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지(無知)하다’는 제로베이스 시점의 태도를 논의구조의 핵심가치로 삼아야

3차 소통포럼은 인문운동가 이남곡 선생을 초청해 ‘지금의 난국을 넘어서기 위한 인문적 바탕’이라는 주제의 혜안을 접했다. 이남곡 선생의 강연은 깊은 가을밤 서늘하게 길을 비추는 높은 하늘의 달 같았다. 소통포럼의 구성원들은 이 선생의 고요한 외침과 치열한 고민을 숨죽여 들었다. 우리는 창조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 백(白)이 되어 포용과 관용의 주체로 설 수 있을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비판적 지지도 있었다. 다음은 강익현 한의원장의 말이다.
“사회 진화과정을 보면, 이기적 유전자가 발동이 더 잘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은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인 생존 기계’라고 주장한 도킨스의 역설을 생각한다. 도킨스는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인 탓에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상호적 호혜성을 발현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급속한 서구화와 개인화에 휘말린 우리 사회는 소위 유전자의 공통 책무인 ‘사회를 지탱하는 협력’의 반대쪽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도원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로 오픈된 사회를 이끌어가려고 한다면 어느 정도쯤 효율을 낼 수 있을까. ‘정의와 타인의 신성한 권리에 대한 존중’을 평화로 인식했던 마호메트 정치체계를 갖추자는 것. 사회적 조건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얘길 한다는 것. 그러한 운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현실이라는 한 손과 지향하는 한 손이 어떻게 하면 서로 만나 실효적인 프로그래밍을 구현할지 고민해야 한다” <편집자 주)

‘내가 있는가 없다. 어떤 평범한 사람이 와서 물어 오면,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 것을 내려놓고 내가 양단을 두들겨서 끝까지 파헤쳐 보리라’

“공자의 말입니다. 주자(朱子)의 풀이와는 달리 내 눈에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50대를 야마기시 운동에 투신하며 갖게 된 나의 새로운 눈 덕분이었지요. 나는 무릎을 쳤습니다. 우리사회의 당면한 과제가 ‘갈등사회를 협동사회로’라면 이 한 문장이 그 해법을 제시한다고 보았지요”

이남곡 선생은 새 이정표를 포착한 순간을 상기된 얼굴로 그렇게 회상했다. 위 문장은 논어 제9편 자한 7장의 구절이다. 주자는 이 문장을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비천한 사람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다하여 알려줄 것이다’로 풀이했다.

논어를 배운 적이 없는 이 선생의 눈에 위 문장은 전통적인 주석과 크게 동떨어진 뜻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의 갈파에 학자들도 ‘일찍이 그렇게 해석한 바가 없었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 선생은 자신의 사상적 전환기에 야마기시(무소유 공동체)에 입문했다. 야마기시는 ‘인간은 사실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제로베이스 시점의 태도를 공동체의 핵심가치로 세웠다.

야마기시는 무아집의 상태로 원형으로 마주 앉아 ‘지금 시점에서 무엇이 옳을까’를 끊임없이 연찬한다. 연찬은 탐구하고 합의하고 실천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야마기시는 일본판 개벽운동이었고, 한때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이상사회의 모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야마기시는 운동성을 상실했다. ‘무아집’이라는 틀이 구성원들의 표현을 제한하고, 그로 인한 부자유와 부자연스러움은 오히려 허위의식을 구축했다. 허위의 공동체는 이상한 사교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이 선생은 논어를 63세 때 만났다. 자한 7장은 그에게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안겼다. 공자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수많은 이들과 함께 한 논어 연찬은 그 일환이었다”

그는 “자한 7장은 적대와 증오의 정치를 해소하는 인문적 바탕이고, 논어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지표다”라면서, “이는 대화와 토론과 합의를 거쳐 실천하는 연찬의 방법론이고, 그 결과(판단)는 나라는 필터를 통과한 결과물일 뿐이다”고 설파했다.

그는 또 “중앙정치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지역에서 할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굉장히 창조적인 행위다”며, “그러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바뀌는 경험이 필요하고, ‘인간은 사실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제로베이스에 입각한 연찬을 통해 전에는 싫어했던 걸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바꾸면 대단히 창조적인 단체가 될 것이다”라고 소통포럼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소멸도시 익산엔 ‘협동대학’이 대안

이남곡 선생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증오가 낳는 절망’으로 정리했다.

그는 “내가 살던 함평에서 서울까지 기차여행을 할 때 숨 막히게 끼어 앉아 밤을 새워 가야 했던, 술 마시다가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끌려가는 막걸리 반공법이 엄혹하던 시절에 비할 때비약적인 문명전환이 일어났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966년을 비교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파라다이스다”며 “하지만 한국 정치는 심리적 대란 상태다. 이는 증오와 적대 정치가 낳은 폐해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우리 청년들은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자기 세대의 특징을 ‘포기’로 표현한다. 최근에는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일곱 번째가 ‘희망’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 정치는 희망을 되찾아야 하고, 정치적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연합정치가 유일한 해법이다”고 했다.

이남곡 선생은 소멸도시 익산을 향해서는 “의존적 상황을 벗어나 자립경제 방안들을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조언하면서 “이런 관점에서 인구 30만도 안 되는 도시에 종합대학이 존재하는 사실에 주목하고, 지자체는 대학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지역이 필요한, 지역경제공동체 구축에 필요한 인재를 대학이 양성하도록 협력해야 한다. ‘협동대학’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살림이나 아이쿱 같은 협동조합과 연계하는 맞춤형 학과를 만들면 전국적, 세계적인 수요에 부응할 수도 있다”며, “협동사회 성지 스페인에 있는 ‘몬드라곤’에서 배워야 한다. 나아가 개별성과 창조력이 강한 한국인들의 기질을 잘 살리는 대학의 커리큘럼이 알려지면 세계 방방곡곡에서 인재들이 몰려올 것이다”고 했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