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리더에 의해 창조되는 문화

문화의 어원은 ‘자연 상태를 인위적으로(경작하여) 변화시킨 모든 것’이다. 문화는 후천적으로 진화한 것이며, 창조적으로 이루어진 무엇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는 문화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획득한 능력과 습관의 총체”라고 했다.

문화의 개념은 확장일로에 있다. 정철현의 ‘문화연구와 문화정책’ 에 따르면 문화는 유물이나 유적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예술적 소양을 갖춘 질 높은 생활과 세련됨을 나타내거나 문화상품, 문화상징처럼 지역 또는 집단을 대표하는 물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생활습관 생활양식의 의미로 사용되거나 인류의 가치적 소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육학자 이종각의 ‘교육인류학의 탐색’에 따르면, 문화는 모든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통해 공유된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생활양식의 축적물이다. 문화는 유기적으로 연관을 맺으면서 사회 전체를 이룬다. 문화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문화의 내용은 고유하며 상대성을 지닌다. 문화는 개인이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된 집단의 생활양식이다. 문화는 독자성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그 통합성을 유지하면서 좀처럼 변하지 않다가도 그 요소 가운데 하나가 변화하면 상관성으로 인해 다른 문화요소가 영향을 받게 되고 통합성이 무너져 다른 문화로 변하는 가변성을 지닌다.

비평가 매튜 아놀드는 개인주의적 철학을 바탕으로 문화를 인간사고의 표현이라고 했다. 즉 인간정신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 문화이며, 문화는 소수의 뛰어난 문화적 리더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레이몬드 바우어가 정의한 ‘문화지표’란 사회 공동체의 가치와 방향성을 평가 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이고, 전반의 문화수준을 파악하는 척도이며, 변화를 반영하고 판단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모든 증거다.
-편집자 주

군산은 보았지만 익산은 보지 못한 것

문화적 관점은 곧 가치다. 군산과 익산은 이 나라를 강점한 일본이 쌀 수탈의 주요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군산에는 항구를, 익산에는 철도역을 건설했다. 쌀 수탈에 필요한 모든 기관과 식민에 앞장선 일본인들의 주요 거주지와 그 주변에는 그들이 세운 학교가 집중됐다.

일제가 남긴 유·무형의 근대문화는 최근까지 두 도시에 비슷하게 분포했다. 그런데 군산은 잔존하는 근대문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도시의 대표 문화를 포착해냈다. 또 여기서 창출한 관광 브랜드를 잘 팔았다. 군산은 현재 관광산업 전반에서 국내 톱을 찍는 성공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의 군산 관광객 수는 470만 여명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에도 414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군산시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미승인 된 통계이지만 올해 1분기(1월~3월) 동안 114만명의 관광객이 군산을 방문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500만 관광객시대를 열고도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은 ‘익산 방문의 해’였고, 1월 초에는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 박물관이 개관한 해였다. 그런데 익산은 이 같은 초대형 관광 상품을 보유하고도 같은 해 1년 동안 148만명의 관광객을 모으는데 그쳤다. 익산시는 ‘익산 방문의 해’를 1년 더 연장했고, 다양한 홍보 캠페인을 벌이는 등 관광객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익산시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월~3월)에는 29만명 가량의 관광객들이 다녀갔다. 2022년의 관광객 수에나 미칠지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마한·백제의 유적과 유물이 그득하고 백제문화 위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기념비적인 대가람 미륵사지와 왕궁터 등을 보유한 익산이다. 하지만 익산의 유적과 유물은 재해석되지 못한 채 전시관 안에 박제되어 있고, 천년 고도 익산은 ‘웅진시대’ 공주 백제의 위상에 대한 경쟁력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유사관광지에 머무는 모양새다.

나아가 익산에서 서동 설화나 마·백 문화를 빼면 이렇다 할 대표 문화가 없는데, 그것은 물려받은 유산 파먹기에 안주한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 목소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 도시에는 수많은 문화 현상이 산재해 있고, 이 문화지표 중에는 도시를 대표할만한 현상이 적지 않으며, 간혹 버리려고 했던 문화가 도시의 대표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군산의 경우가 그렇다. 군산의 내항을 낀 도심 곳곳에는 일본인이 살던 적산가옥들이 박혀있고, 내항주변에는 일제강점기에 쌀을 수탈하기 위해 세웠던 각종 공공건물들이 산재했다. 1990년대 초까지 군산사람들은 이 일제의 잔재들을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인들이 핍박하고 강탈하던 세월을 그리워하며 방문하는 치욕의 역사를 하루빨리 치워버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군산시는 이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오히려 아픈 역사를 일상에서 되새기는 것으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예방하자는 역발상의 결과였다. 이는 구도심 재생사업의 방향성이 되었다.

일본식 건축물 170여 채가 건축자산진흥구역으로 등재 됐고, 이 같은 도시의 가치는 다각적으로 재생되고 보완됐다. 관광객들과 시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여러 거점공간을 조성했고, 결국 윤색과 융합을 거친 내항 해양공원과 근대문화역사지구는 거대한 근대박물관이 되었다.
    
침체일로에 있던 공업도시 군산이 세계적인 근대항구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버려져있던 ‘일제의 잔재’라는 도시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이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치환한 결과였다. 특히 도시재생사업과 근대문화 복원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고, 근대문화유산이 집중된 원도심 월명동이 살고 싶고 살기 좋은 곳으로 거듭났다는 점도 군산시의 자랑거리다.

군산시의 사례는 무엇보다 도시에 산재하는 어떤 문화도 도시의 대표브랜드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는 익산시가 도시에 존재하는 문화현상들을 조사하고 집대성해 문화지표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이기도 하다.
목표의식 부재

익산시는 일제강점기의 번화가였던 중앙동에 문화예술의거리를 조성했다. 2013년 전북도의 지원사업으로 시작됐는데, 전북도는 2019년까지 7년 동안 19억4,500만원을 지원했고, 익산시는 43억 원을 투입했다.

사업비는 주로 문화예술의 거리 경관조성과 구역 내 건물에 입주해 활동할 의사가 있는 작가나 동호인·판매인 등에 대한 건물 임대료 지원,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 운영 등에 사용됐다. 익산시는 특히 문화예술의 거리를 활성화시킬 거점시설로 익산 아트센터(396㎡)와 청년들의 문화·소통의 플랫폼 역할을 할 청숲364(㎡)을 건립했다.

익산시는 이와 함께 중앙동 2가에 100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구 삼산의원’을 해체해 익산문화예술의거리로 옮겼다. 새 부지의 매입비와 건축물 이전비용으로만 27억원이 들었다. 재조립 된 이 건물은 문화예술거리의 거점기능을 수행 할 익산근대역사관(289㎡)으로 변모했다. 익산시는 문화예술의거리 조성을 위해 7년 동안 83억원 가량을 쏟아 부은 것이다.

시민들은 익산이 자랑할 만한 문화관광의 거리를 희망했다. 때마침 2017년에는 중앙동 도시재생사업이 개시되면서 구도심이 상실했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모든 추이와 조건이 군산의 월명동과 같았기에 영종통도 그에 버금가는 명소로 부활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수년 동안 요란하게 주의를 끌던 익산시의 풍장은 전북도가 지원을 끊은 2019년에 멈췄다. 또 도시재생사업은 목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익산문화예술의 거리와는 무관하게 추진됐고, 그 결과 익산문화예술의 거리는 살풍경을 자아내는 슬럼가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나아가 청년들을 불러 모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문화·소통 공간이었던 청숲은 텅 비었다. 문화예술의 거리 밖에 새로 조성된 청년시청으로 옮겨간 탓이다. 또한 익산아트센터와 익산근대역사관의 방문객은 연간 1만 명 남짓 하거나 밑도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같은 실패의 원인은 문화콘텐츠 개발 사업이 의존적으로 추진되고, 관주도의 일방통행 식 양태에서 비롯한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유용한 문화의 활착을 위한 협업문화의 부재가 걸림돌이다.

또 개별적인 사업들의 시너지를 위한 전략적 통합과 그것을 위한 방향성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표류 할 수밖에 없고, 지속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익산문화예술의거리가 방증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역의 대표문화는 어떤 문화현상이든 될 수 있다. 유적이나 유물은 물론 인물, 사상이나 신념, 특정한 장소, 공동체 특징, 심지어는 음식, 향토 기업, 특정한 장소 등 무엇이든 지역의 대표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성패는 어떻게 문화를 개발하느냐, 무엇과 융합하느냐, 어떻게 전파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출발점은 지역 특성을 지닌 문화들을 모으고 구분하며 유용한 문화를 걸러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군산이 공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환골탈태하는 10년 동안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은 급속히 삭제되었다. 이제 익산시 근대문화를 관광상품으로 브랜딩한다 해도 웬만해선 유사 관광상품의 처지를 면키 어렵게 됐다. 문화에 대한 안목의 차이가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