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노정, ‘키퍼둥지’

‘리치 칼가이드’는 ‘레이트 블루머’에서 “시기만 다를 뿐, 피지 않는 꽃은 없다”고 했다. 자기 나름의 방법에 따라 자신의 일정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최고의 운명을 찾아내는 사람이 ‘레이트 블루머’다. 좋은 부모찬스로 한 분야에서 재능을 일찍 꽃피운 10% 가량이 ‘얼리 블루머’라면, 90%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을 ‘레이트 블루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구도 루저가 아니다. 다만 아직 꽃피지 못했을 뿐이다” 이강래(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이사장, 전 원광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부 교수)의 관점이다. 엄동설한을 이겨내면서도 밟히면 더 강해지는 보리(麥)의 뜻(志)을 담은 맥지(麥志)청소년사회교육원은 1985년에 창립된 맥지회(麥志會)의 정신을 계승한다. 맥지회는 이강래 이사장이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 선후배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그 회원들이 모은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으로 1997년 ‘사단법인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이하 ‘맥지’)이 출범한 것이다. ‘맥지’는 올해 그동안 모아온 대리부모 키퍼(민간 후원자)들과 함께 ‘위기청소년’들의 자립준비를 돕는 ‘키퍼(KeePer) 둥지’를 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위기청소년’은 ‘맥지’를 만난 순간 ‘레이트 블루머’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40년 동안 흔들림 없이 꽃을 피우고 번식해 온 ‘맥지’의 정신에 동참하고 있다. ‘맥지’ 자체가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맥지’의 대명사가 된 이강래를 만나게 된 이유다.<편집자 주>

90%의 우리들 ‘레이트 블루머’

“라틴어 옵포르투는 수심이 낮기 때문에 수심이 좀더 깊어지는 밀물이 오기를 기다리는 선박을 뜻한다고 한다. 즉, 항구에 들어가려면 이 기회를 늦게라도 포착해야만 한다. 나는 우리가 키우는 ‘레이트 블루머’를 ‘기회청소년’을 의미하는 옵포르투(Opportu)'라 부르고 싶다”

이강래 ‘맥지’ 이사장이 내린 이른바 ‘위기청소년’에 대한 정의다.
여기에는, 이 이사장이 2019년부터 공들여 왔고 올해 출범을 앞 둔 ‘키퍼둥지(위기청소년 회복을 위한 사회안전망) NGO단체’의 방향성이 내포되어있다.

그에 따르면 ‘위기청소년’은 소위 부모한테 천시받고, 직장에서 좌절하고, 사회에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키퍼둥지’에게는 늦게 꽃을 피우는 ‘레이트 블루머’다.

‘맥지’의 자립준비를 돕는 프로세스는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청소년, 잠깐 환락가를 경험하고 후회하는 청소년, 아이가 아기를 낳고 돌아온 청소년 등 탈선·부적응·기결·우범자로 분류되는 모든 위기청소년들을 포괄하고 있다.

‘맥지’에게 이들 위기청소년은 배척해야 할 ‘위험’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다. 늦었지만 때와 기회를 만나면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현하며 살아갈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다.

이강래 이사장이 그동안 ‘맥지’를 운영하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며, ‘레이트 블루머’는 일찍부터 고장난 시계 취급을 받아보았기 때문에 연민이 짙고, 좌절에서도 스프링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통찰력, 지혜력도 상당하다.

‘맥지’가 3년 동안 구축해 온 ‘키퍼둥지’는 레이트 불루머들이 매일 생활할 ‘心부름꾼센터’다. 이강래 이사장은 “곧 마련 될 키퍼둥지에서 기퍼들은 우선 ‘레이트 블루머’들에게 맞는 적성과 환경을 찾아 옮겨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키퍼둥지’

위기청소년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세금에만 의존한 공공정책은 한계를 보인다. 무엇보다 위기청소년 보호연령과 보호기간을 제한하는 법령이 제도의 취지를 가장 크게 퇴색시키는 장애 요소다.

청소년 쉼터의 경우를 보면 지난해 9월까지 9세에 입소해 18세에 퇴소해야 했다. 퇴소하는 청소년에게는 소정의 정착금을 주고 모든 지원을 끊었다. 다만, 지난해 9월 18일 이후부터는 퇴소 연령이 24세로 늘어났지만 사회로 돌아간 청소년들에 대한 실질적인 정착 지원은 중단된다.

이강래 이사장은 “청소년 보호기관의 보호를 받는 대부분은 부모가 없는 경우다. 상당기간 국가기관에 의존하다보니 독립심도 결여되어 있다. 그들을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급류로 떠미는 것과 같다. 국가기관과 세상 이라는 두 개의 큰 배를 오가는 소형배가 필요한 이유다. ‘키퍼둥지’는 바로 소형배격이다. 민간이 자조적인 방법으로 태생적 한계를 가진 갈 길 잃은 청소년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사랑의 브릿지 역할이 필요한 것입니다”라며 ‘키퍼 둥지’ 조직결성의 취지를 설명한다.

‘키퍼둥지’의 지향점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정이 해체된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구제하는 것’이다. 그들 청소년들이 고등학교 또는 대학에 진학하고 취직에 성공해 사회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브릿지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강래 이사장은 2019년 3월부터 ‘키퍼둥지’ 구축을 주도했고, 현재는 전주와 익산, 군산, 김제 등 전북지역 700여명이 동참을 선언하고 정식 창립을 위해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위기청소년의 치유·체험 교육과 보호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키퍼둥지 구축과 확장에 동행하며 청소년의 안정적 사회 정착을 위한 어젠다 발굴에 함께 노력하게 된다.

익산키퍼둥지는 이·미용을 비롯해 제과·제빵·바리스타·식당 등 다양한 분야의 현장체험, 자격증 취득 지원, 검정고시 지원, 자체 연수 등을 통해 청소년 자립도 지원할 계획이다.

이강래는

이강래는 학창시절 소위 문제아였다. 광주상고 재학 시절엔 ‘신을 찾겠다’고 200여 일간 무단 결석을 했다. 뒤늦게 조선대 회계학과에 입학하지만 2년 뒤 지명수배자로 도피생활을 하는 신세가 됐다.

80년 조선대 총학생회장에 당선이 되면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혐의를 받은 것이다. 옥고를 치르고 나오자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원광대학교로부터 편입학 제안을 받았다. 이 후 학교를 착실하게 다녔지만 취업은 역부족이었다.
　
그의 눈에 ‘위기 청소년’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원광대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학업에 흥미를 잃었던 자신의 청년시절을 돌아봤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을 잡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선후배들을 찾아 나섰다. 85년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맥지회’(麥志會)를 만들었다. 이후 12년 만에 이강래를 비롯해 회원들이 모은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으로 97년 사단법인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이 출범했다.
　
“정치적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대안교육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명맥을 이어왔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강래는 고개 숙인 청소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애들아! 막차를 놓치면 첫차를 탈 수 있단다”고 한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