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무는 특혜 의혹 단골, 제한 입찰·고의 탈락
악덕 브로커와 그 세력, 승진시기 놓친 공무원 이용

<속보> 지난 2월 22일자 본지가 보도한 "시장측근, 공무원과 공모 의혹"이란 제하의 기사 내용과 관련, 담당 공무원이 감사원 감사를 받던 중 지난 12일 자신의 아파트 계단 난간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의 핵이었던 당사자의 죽음으로 사건이 미궁속에 빠져들 공산이 높아지면서 모든 관심은 고인이 남긴 유서와 자료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고인이 유서에 적시한 곳에서 사건의 내막을 밝혀 줄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채 행방이 묘연해진 상황이다. 당사자가 조사 선상에서 사라진 이후 감사원의 감사는 맥이 풀릴 수 밖에 없다. 검찰이 확보한 유서 한 장과 시신 부검결과는 입찰 담합의혹을 풀 단서가 되지는 못한다.

절전형보안등 교체사업(ESCO)의 전말

문제의 절전형보안등 교체사업(이하 에스코사업)은 현재 설치된 나트륨등 150W(소비전력 173W) 램프를 세라믹메탈(CDM, 소비전력 70W) 램프로 교체하는 120억규모의 사업이다.

익산시 담당공무원은 지난해 8월 에스코사업을 시행하면서 익산시장의 측근 브로커와 공모, 특정 업체를 들러리 세우고 실제로는 사업내용에 맞지 않은 업체로 하여금 공사를 시행토록 하기 위해 입찰제한 수법을 동원하고 입찰 담합을 지휘, 브로커와 출자자들에게 이익을 공여 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익산시는 우선, 지난해 9월 입찰과정에서 89억원에 입찰한 1위업체와 93억원에 입찰한 2위 업체를 배척하고 99억원을 써낸 3위 업체를 선정해 답합의혹을 받았다.

탈락한 1위와 2위 업체는 익산시가 공모요강에서 제시한 정격전압 70W를 위배하는 73W를 써냈고, 이는 전기업자라면 누구나 알수 있는 상식적인 70W 범주를 벗어난 고의적인 탈락으로 지적됐다.

게다가 전북전기공사협회는 지난 3월 12일, 익산시가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입찰자격을 단일준공실적 20억원 이상으로 제한했고 전북 도내 업체를 배재해 특정업체를 선정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익산시민 A씨는 감사원에 "정치인과 공무원, 경제인 등 십여명이 일부 출자를 통해 G회사를 사업자로 선정하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H사를 낙찰시키기 위해 참여자격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담합입찰을 별였다"고 진정을 냈다.

이 진정서에는 또 "H사는 사업 수주 이후 사전에 공모한 이들과 담합을 맺은 업체에 금품을 지불하는 방법으로 수십억원의 비용을 지출시켰다"는 고발 내용이 포함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2월 말경부터 익산에 현지 본부를 꾸리고 익산시가 발주한 절전형 보안등 사업의 특혜입찰 의혹과 공무원 등의 금품수수 여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며 중단없는 감사를 시사하고 있다.

왜 자살까지 가야 했나

감사원의 조사 과정에서 담당공무원이 업체로부터 1,500여만원을 받은 정황이 포착되어 어떤 이유로 이 돈을 받았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 하던 중에 자살을 선택했다.

감사원은 고인이 자신의 근무지에 있는 현금인출기로 차명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장면을 잡아냈고, 고인은 자신의 오점이 드러날 경우 자신과 가족에게 닥칠 파장에 대해 감당 불능의 압박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담당공무원은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난간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3일 동안 연가를 낸 그는 감사원 감사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자료의 존재를 적시한 유서를 남기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자살을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 "정산 하루 전 내가 남긴 자료를 가지고 모 시장 후보 캠프에 찾아가 흥정을 해라. 그 돈을 갖고 먹고 살아라. 서랍에 관련 자료들이 들어 있으니 이걸 찾아 동료 를 만나 대비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부터 유서를 건네 받은 경찰은 문제의 자료를 찾기 위해 고인의 사무실에 갔지만, 자료는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13일 오전 부터 유서와 자료에 관해 일절 함구하고 있으며, 이 유서는 검찰에 보내졌다.

감사원 감사 결과대로 고인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1,500만원을 받았을 경우 뇌물 혐의로 징계 양정은 파면에 해당된다.

결국 그는 30년이 넘는 공직생활에 대한 퇴직금과 연금 등을 일절 받지 못하게 된다. 남은 가족의 생계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던 것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법상 망자는 형사소추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유족들은 일단 고인의 명퇴에 준하는 모든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익산시 일부 공무원들에 따르면, 고인은 공무원으로 거의 40년 가깝게 걸어 온 사람으로 좁은 지역사회에서 죄인이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불명예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

사건의 핵심, 유서가 적시한 자료는 어디로 갔나

익산경찰에 따르면 윤모 계장은 3일 동안 익산시청에 연가를 내고 월요일 사건 당일 출근하지 않았다. 오후에 약간의 반주를 한 상태에서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5시 30분 경 남편의 유서를 발견한 아내는 친척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하였고 그래도 찾을 수 없자 직장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직장 동료 중 가장 먼저 연락을 받은 사람은 고인의 담당 부서 차석으로 일하고 있는 N씨였다.

익산소방서 남중센터에 따르면, 고인의 아내는 유서를 처음 발견한 시간으로부터 약 4시간이 지난 시점인 저녁 9시 43분 119에 전화를 걸어 "유서를 써놓고 연락두절됐다 자살한 것 같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해달라"고 요청 했다. 긴급 전화를 받은 119는 전북도 본부에 휴대폰 위치추적을 의뢰했고, 구급대원들과 경찰은 합동으로 남중학교 근처에서 고인을 찾기 시작했다.

위치추적 결과 고인의 아파트 건물로 나타나자 고인의 아내와 남동생이 16층 계단 난간에서 목을 맨 채 숨져있는 고인을 발견하여 관내 종합병원으로 후송, 고인의 사망을 최종 확인했다.
119 구급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장 발견 당시 주검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사망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신을 발견한 장소에서 윤씨의 아내는 유서를 평화지구대에 넘겼고, 평화지구대 경찰은 이를 현장에 출동한 형사과 담당 경찰에게 넘겼다.

유서에 적시된 자료를 찾기 위해 정보과 형사가 고인이 근무하던 사무실로 급파되었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이미 고인의 책상 오른쪽 서랍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현장을 보존해 줄 것을 요청하며, 서랍을 열게 된 사유를 물었고 서랍을 연 공무원은 "유족들의 요청에 의해 고인의 영정사진을 찾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이어 뒤늦게 도착한 형사과 직원 등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상태여서 문제의 자료 찾기를 포기해야 했고, 고인에 대한 삼오제가 끝난 후 수사를 속개한다는 계획이다.

자료, 유족의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 가장 높아

현장에서 고인의 유서를 직접 읽은 사람은 고인의 아내, 남동생, 고인의 부하 직원, 평화지구대 경찰, 형사과 담당 등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사건의 핵심이 되는 자료가 실재했다면, 가장 먼저 그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인물은 바로 고인의 부하 직원 N씨다. N씨가 같은 자료를 입수했을 경우, 고인이 유서에서 당부한 대로 고인의 아내나 동생이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아내가 유서를 발견한 시점이 5시 30분경이고 시신을 발견한 시점이 9시 30분이 넘은 시각으로 4시간의 공백이 있어 이 시간 동안 이미 자료에 대한 처리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검찰 감사원의 향방은

이 사건의 경우 단순히 한 공무원의 뇌물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 고인의 사무관 진급 시기가 꽤 많이 흐른 뒤에 일어난 일로, 고인이 사무관 진급 유혹에 가장 약하다는 약점을 측근들이 이용했을 공산도 높은 실정이다.

또, 120억이라는 국책사업에 대한 정치권과 행정기관, 경제인들이 함께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한 공모 의혹이 따라 붙는다는 점에서 대형사건으로 분류된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의 장례식이 치뤄진 이후 가족과 공무원 및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이고 검찰 역시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감사원이 감사 중에 있고,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검찰은 진행중인 감사에 간여하거나 같은 사안을 수사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검찰의 수사 범위는 한정 될 수 밖에 없고, 감사원의 감사가 매듭 될 때 까지 입찰 담합의혹은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없어 이 사건은 상당 기간 소강상태에 들어 갈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의 경우 목숨을 끊은 공무원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가 종결되지만, 감사원이나 검찰이 이미 많은 양의 정보와 자료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수사 향방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한편, 가족의 입장으로 보면 이 자료를 검찰에 넘기지 않는 쪽이 유리한 것으로 판단되고 가족이 끝까지 자료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경우 가족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압수수색이나 영장발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을 예상되고 있어 수사가 한계점에 이르러 종결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