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후기왕궁터를 보존하고 있는 왕궁리 유적지

익산시가 고도(古都:옛 도읍지)로서의 면모를 보전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4년 '고도보존특별'에 따라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고도로 지정된 데 따른 것이다. 새만금의 배후지로서 익산시가 고도의 모습을 보존하거나 복원하는 것은 관광산업 측면에서 잘 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익산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고도 보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정체성은 현재를 이루는 바탕이고 기반이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익산시민들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소속감, 자부심을 주며, 익산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익산시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예로부터 교통이 발달해서인지, 도시 전체가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하다. 일제가 곡물 수탈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도시, 호남의 교통요충지, 보석도시, 섬유산업의 도시, 석재도시로서의 면모로는 정체성 확립이 어렵다. 결국 역사적 맥락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이에 <소통신문>은 익산시가 처해 있는 현 주소를 점검하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보기로 했다.<편집자주>

익산시와 익산시민은 사실상 정체성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다.

적어도 익산은 마한시대의 수도였고, 백제시대 때는 호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백제시대 후기 무왕 때에는 도읍 부여와 함께 도읍지에 버금가는 별도(別都)였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다.

별도는 도읍지 못지않게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라는 의미다. 무왕 때에는 익산에 천도할 계획까지 세웠다.

익산이 특정 권역의 중심지, 한나라의 별도 및 천도지였다는 것은 이곳에 그만큼의 생산력과 유력한 세력 즉 인적 자원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 들어서도 익산은 한 때 교육과 교통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쳤었다.

하지만 지금 익산은 '중심', '중요한 곳', '요충지'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한낱 중소도시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2011년 현재 익산시는 지방자치제, 환황해권 시대의 도래와 중국의 부상, 새만금 신도시 건설, 도시경쟁력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기반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왜 고도(古都)인가

익산의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고도로서의 모습이다.
고도의 이미지가 중요한 것은 정체성을 과거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집안과 가풍은 유교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고, 선악과를 따먹어 죄를 지었다는 점은 기독교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확정짓는다.

또 과거에 쌓은 업보가 현세에서 구현된다는 것은 불교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다.

익산이 찬란한 과거로부터 정체성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민 공감대 형성 미흡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익산시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되면서 쇠퇴 일로를 걸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익산시가 정부로부터 '고도'로 지정되고, 지난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면서 고도로서의 정체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익산은 궁궐(왕궁), 내성·외성을 비롯한 성곽(익산토성), 사찰(미륵사, 제석사) 등 도읍지가 갖춰야 할 문화유산을 고루 갖추고 있다.

유네스코 잠정목록 지정은 세계유산으로 선정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고도로서의 익산은 우선 시민들에게조차 인식되지 않은 상태다.

문화유산이 많다고는 하지만, 현상이 보전되어 있지 않아 막상 유적지에 가보면 황량한 벌판에 찬바람이 분다.

또 현재 보존되어 있는 유적 주변의 시설과 건물이 '옛 정취'를 느낄 수 없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이 같이 문화유산에 대한 인프라가 미흡해 시민들조차 '익산이 정말 고도인가'를 의심하고 있다.

경주, 부여, 공주와 같이 과거의 현장과  주민들의 거주지가 같은 경우는 부지불식간에 주민들이 '고도의 냄새'를 느낄 수 있지만 익산시의 경우는 다르다.

익산에서는 금마, 왕궁, 삼기, 낭산면이 고도지역인데, 시내권과 멀리 떨어져 있다.

땅값이 싸다는 점은 향후 개발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주민들이 정서적 합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재원·인력 부족

문화유산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이와 관련한 예산및 담당 공무원 수가 적기 때문이다.
문화유산과 관련한 소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주시의 경우 올해 예산은 935억 원이다. 과 단위 부서도 3개나 된다.

부여군청의 문과관광 업무는 익산시와 같이 1개 과에서 처리하고 있는데, 예산은 280억 원으로, 익산시(114억 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정부로부터 고도로 지정돼 본격 개발을 앞두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국비를 얻어낼지 모르지만, 익산시의 자체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