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 국내 최초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의 한국 상륙과 '93년 11월 서울에 문을 연 '이마트'는 유통업계에 쇼크를 일으켰다. '95년에는 국내 최초로 TV 홈쇼핑 시작됐는데, 대형마트와 편의점, 홈쇼핑은 유통혁명인 동시에 재래시장의 몰락을 예고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잠잠했다. 대도시 주민들은 대형마트가 주는 편리함과 친절한 태도에 우쭐함을 느꼈고, 오히려 대형마트가 들어오지 않은 곳은 문명에서 소외받은 것처럼 여겨졌다. 근사한 대형마트에서 가족과 함께 장을 보는 것은 중소도시 젊은이들의 환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환상이 걱정거리로 바뀔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이 빨대처럼 지역자금을 흡수하면서,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은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 늦을세라 자치단체와 정치권은 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이에 <소통신문>은 재래시장의 현황을 짚어보고, 재래시장을 살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만약 살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Ⅰ. 재래시장정책 이대로 좋은가
Ⅱ. 시장의 현황, 상인들의 이야기
Ⅲ. 재래시장을 살리려면

재래시장 살려야 하나 

재래시장 살리기에 모든 사람이 흔쾌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재래시장은 시대에 뒤쳐진 퇴물'이다. 자본 및 서비스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재래시장은 이미 가격 측면에서 대형마트와 차별화될 수 없게 됐고, 품질에 대해서는 대형마트가 더 엄격하다. 설사 재래시장 물건이 더 싸더라도 "싼게 비지떡"이다. 

또 재래시장은 지저분하고, 주차장과 내부 시설 측면에서 대형마트를 따라갈 수 없다. 따라서 재래시장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붇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차피 망해버릴 것"에 혈세를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형마트나 기업형수퍼마켓(SSM)은 소비자들에게 쇼핑의 편리함을 주고 저가격·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장려돼야 한다. 이는 소비자주권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 같은 의견은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익산시는 재래시장에 예산을 투입하거나 재래시장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재래시장을 살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재래시장 살리기가 대형마트나 기업형수퍼마켓에서 쇼핑하는 편리함을 포기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래시장 정책 한계 노출

재래시장 살리기에 나선 익산시의 행정은 효과는 있었지만 한계를 노출했다. 익산시는 2004년부터 대형마트 진입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재래시장에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2009년까지 30억원을 투입배 건물 리모델링 및 신축, 주차장 조성이 이뤄졌다. '06년에는 3개 시장에서 동시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북부시장 주차장 설치, 중앙시장 환경개선, 창인시장 공동물류창고 설치 등에 13억여원을 들였다. 이 같은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외도 시장마다 새로운 환경 조성에 예산을 투입했다.

'06~'09년까지 창인 북부시장에 42억원을 들여 아케이드 특화거리를 조성했다. 국가 정책과 맞물려 국비도 함께 지원했다. 이와 동시에 재래시장 상인들의 의식을 변화시켜 경영혁신을 이루기 위해 교육을 실시했다. 노래자랑 등 이벤트도 개최했다.

'09년부터는 북부시장 건물 보수, 중앙시장 건물 보수 및 이벤트 광장 조성, 함열시장 아케이드 설치, 황등시장 풍물시장 조성, 매일시장 주차장 및 화장실 조성 등 2~3년간 100억원 넘게 투자했다.

이와 함께 '06~'09년까지 31억5천만원의 재래시장상품권을 발행해 인위적인 소비를 유도했다. 이외에도 장보기 도우미 운영, 문화행사 등 각종 이벤트 개최, 와글와글 시장가요제, 우수시장 박람회 참가 등 각종 지원이 뒤따랐다. 하지만 '0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7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의 쇠퇴는 멈추지 않고 있다.

남부시장의 상인 K씨는 "시설 현대화로 장 보기도 편해졌고, 재래시장 살리기사업을 하기 전보다는 좀 더 활성화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장사가 안되는 것은 여전하다"고 말했다.수백억원을 투입했지만 대형마트로 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돌지지는 못했다. 익산시가 재래시장 살리기에 가장 활발하게 나선 최근 수년간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오히려 더 늘었다.

2009년 롯데마트와 이마트, 홈플러스의 매출액은 1천700억원 가량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천억원 정도로 300억원 가까이 늘었다. 결국 재래시장 살리기 정책은 시장의 환경 개선에는 도움이 됐지만, 실질적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정치논리 아닌 경제논리 필요

재래시장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것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접근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가 정책에 편승한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재래시장 상인회와 시장·군수 후보들간에 연합이 이뤄지고 있다.

명분은 재래시장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지만 암묵적으로는 선거에서의 지지를 약속받는 양상을 띤다. 상인회는 예산을 지원받아 좋고, 자치단체장은 표를 얻어서 좋다는 얘기다. 따라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심층적인 고민 없이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고 일부 사업에서는 보조금을 잘못 사용해 물의를 빚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또 주요 정당들이 대선이나 총선 때 재래시장 살리기를 공약하고 정부가 이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자치단체들은 국비 받아먹기식 사업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 부족하고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앞서는 이유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