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벌지 못했지만, 신의로 외길 인생을 살아온 것이 돈을 번 것보다 마음이 편합니다."

평생 주류도매업을 운영해 온 외길 인생 최태규(76세) 사장의 회고다.

마한주류상사의 최태규 사장이 '돈'이냐 '신의'냐 두 갈래 길에서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한 때는 1995년 경이었다.

가장 어려울 때 지킨 신의

1982년부터 OB맥주 대리점을 시작으로 주류도매업을 하고 있는 그에게 1995년은 인생 최대 고비의 순간이었다. 하이트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전북지역에서의 OB맥주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달 6억이 넘던 매출이 2억 이하로 떨어지면서 주류도매업을 운영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OB맥주를 떠나 하이트맥주로 전향하기 시작했다. 이때 최사장은 OB맥주를 떠나지 않았다. 당시 하이트맥주는 OB맥주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최 사장에게 OB맥주를 떠나지 않는다는 이유와 생산량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하이트맥주를 내어주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지만 최 사장은 쓰러지면서까지 OB맥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현재까지도 익산에서 OB맥주 시장을 지켜오고 있다.

"상대방이 가장 어려울 때 지킨 신의, 나에게로 돌아왔다"

최 사장이 이처럼 OB맥주와 신의를 지키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흔다섯살 즈음 정부는 개인이 운영하던 주류업을 법인으로 운영토록 방침을 바꾸어 주류도매업을 법인으로 전환하고 4명이 동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익이 많이 발생하지 않자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았다. 자금난과 경영난에 극도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OB맥주에서 보배소주 근무시절의 판매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찾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800만원짜리 전세금 밖에 없던 OB맥주는 7천250만원어치의 물품을 그에게 아무 조건없이 보내줬다. 그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월 200만원씩 3년에 걸쳐 이 비용을 갚았다. 당시의 그 은혜를 잊지 못한 최 사장은 OB맥주가 어려울 때 그 신의를 지키고 OB맥주의 곁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최 사장과 OB맥주에 대한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산그룹이 OB맥주를 매각하던 시절, OB맥주 사장의 친형인 박용연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OB맥주를 떠나면서 OB맥주를 끝까지 지켜준데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신체검사라도 받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신체검사에서 뇌혈관이 막힌 것을 발견했다. 

최 사장은 "OB맥주가 어려웠을 당시 OB맥주를 배신하고 하이트맥주로 옮겼더라면 아마도 죽었을 겁니다." "그들이 어려웠을때 내가 지켜준 신의는 결국 나의 생명을 지켜준 은인이 되었습니다."

돈은 없어도 후회하지 않는 인생

"OB맥주를 지키기 위한 노력 때문에 돈은 벌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최 사장은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OB맥주에 대한 은혜를 잊을 수 없어 신의를 지키며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익산시 오산면 송학리에서 1936년에 태어난 최 사장은 돈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했다.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를 다녀와 보배소주에 입사했다. 이리출장소 영업소장, 전국 여러 지역의 출장소장, 구매과장 등을 거쳐 현재에 와 있다.

현재 전북에서 대부분의 주류도매점이 하이트맥주를 주로 취급하지만 최 사장이 운영하는 마한주류상사에서는 총 매출의 60%가 OB맥주다. 최 사장은 돈을 떠나서 지금도 OB맥주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이 돈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죽을 때까지 먹을 돈은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의 요지입니다."

최 사장의 신의와 성실의 삶은 익산세무서도 인정했다. 올해 초 익산세무서는 1982년 법인으로 시작한 이래 29년째인 마한주류상사를 20년 이상 장기성실납세법인으로 인정하고 5년간 세무조사를 면제시켜주는 혜택을 안겨줬다.

"돈에 의해 움직이지 말고 신의에 의해 움직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인생을 살고 난 후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자긍심을 자식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신의를 후손들에게도 남겨주고 싶은 게 제 삶의 희망입니다."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끝까지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상인이 되면 좋겠다는 게 최 사장의 철학이다. 나이가 들어 과거를 돌아보면서 신의를 지키며 살아온 날들이 가장 보람되었다고 최 사장은 자부하고 있다.         

오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