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가치는 현대에도 유용한가? 이런 의문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이 바닥을 쳤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기술이 가져온 급격한 경제성장과 이로 인한 물질적 풍요로움은 반대로 정신을 박약하게 만들고 인간을 돈벌이와 욕망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돈과 물건이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돼버린 물신주의 사회, 배가 불러도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게 만드는 현대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결국 사람은 스스로를 소외시켰다. 이제 현대인들에게 문명이란 것은 정신적 해방이나 행복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는 싸움과 맹목과 공허함을 부른 원죄다.
가족주의와 패거리주의, 수직적 인간관계 형성 등 좋지 않은 인습을 남긴 것으로 비판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조상들로부터 우리들의 몸에 체화돼 남아 있는 유교적 가치. 정말 현대에 쓸모 없는 것인가, 얻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난 18일 오전 원광대학교 철학과 김학권 교수를 찾아 연구실서 얘기를 나눴다. /대담=김경선 기자  

현대사회의 병폐가 많습니다.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보시는지요.

서양이나 동양이나 과거에는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자연과 화해의 관계, 즉 자연과의 조화 또는 화목을 삶의 기조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이성을 강조했지요. 그러면서 서구에서는 절대적인 가치로 여겼던 신(神)으로부터 인간이 독립을 선언하게 된 겁니다. 이후 자신의 능력으로 삶을 개척코자 하는 노력이 활발히 이뤄졌지요. 동시에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상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이는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연결돼 삶이 윤택하게 되면서 경제적 유용성이 특별히 강조됐습니다. 물질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상황이 된 거지요. 그런데 물질적 가치의 추구는 욕망을 더욱 부채질합니다. 물질의 소비가 급속도로 증폭되면서 이는 다시 생산과 소비를 촉진시켜 외적으로는 자원이 고갈되고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상황을 만들었고, 안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경시하고 파괴하며 인간을 소외시고 인명을 경시하고 영혼이 빈곤해지는 유령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유교적 가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요. 아니면 낡아서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입니까?

유학은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 제반문제 즉,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실천적 학문입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고양시킴으로써 인류의 번영과 공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교의 가치를 적극 활용해야 돼요.

유학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강조합니다. 특히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학문입니다. 또한 지행합일(知行合一 :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킴)을 강조함으로써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실용적 성격이 강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이론적 지식은 풍부하지만 실천적 뒷받침이 되지 않기에 도덕이론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음에도 도덕적 행위가 부재한 현실 속에서 유학의 가르침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교적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거죠. 예를 들어 한나라 동중서는 이런 말을 했거든요. "인간 삶의 도리의 원천은 하늘 즉 자연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하늘이 변하지 않는 한 인간의 도리는 변하지 않는다"라고요. 이때의 자연은 만물을 낳아 길러주는 기능과 역할을 끊임없이 펼치는 무한의 덕을 향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 덕을 바탕으로 삼아 그것을 인간의 삶 속에 실현하는 것으로 봤지요.

유교적 가치가 현대에도 유용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공자는 논어에서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남도 그 목표에 도달하도록' 해주는 충(忠)의 정신과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서(恕)의 정신을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인(仁)의 실천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효도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효(孝)란 부모가 자식에게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인데, 이는 쌍무적 도덕의무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부모의 자애는 강조하지 않고 자식의 효도만 강조하는가.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순리지만, 거꾸로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면 왜 부모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내 생각에 자식은 ‘또 다른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존재를 시공간을 초월해 확장시키는 것이지요. 따라서 효라는 개념은 존재의 영속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사회적으로 확대된 겁니다. 효경에 '신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훼손하지 않는 게 효의 시작'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자식은 곧 나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다치면 내가 다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라는 존재의 영속적인 보존 욕구를 효의 실천으로 요구하게 된 거지요. 즉 영속성의 욕망을 현실 속에서 충족시켜주려는 이념이 효인 것입니다. 이 같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개인의 도덕규범으로, 이를 다시 사회규범으로 확대시킨 것이 효의 개념인데, 현대사회에서도 대단히 실천적이고 유용한 개념이라고 봐야겠지요.

교수님의 말씀은 유교적 잔재로 비판받고 있는 정실주의나 '내 자식, 내 집안 챙기기'와 다른 것입니까?

정실주의, 패거리주의, ‘내 자식, 내 집안 챙기기’ 등에 있어 유교는 일정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과거 전제군주제 아래서 유교는 왕권 유지를 위한 정치이념을 제공하는데 기여했죠. 또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부권(父權) 위주의 윤리도덕을 강조했습니다.그래서 그런 사회적 비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유교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있어 인간이 개체적인 존재이기 보다는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점을 강조했다는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일가친척들과의 필연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 관계를 원만하고 바람직하게 유지하기 위해 부자간 형제간 친척간의 윤리질서를 설정하고 이를 사회와 국가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게 유교의 윤리개념이라는 겁니다. 기본에서부터 출발하자는 것, 이것이 자기 가족만 챙기는 것으로 변질된 것인데, 모든 개인은 평등하며 나아가서 모든 만물이 평등하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주장해온 도가나 묵가의 사상도 있었지만 이것이 중국의 역사에서 주류사상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자기중심 내지는 가족중심 윤리를 사회나 국가에 확산시키는 유교가 주류사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그것을 더 선호한다는 데 있습니다. 비판은 하지만, 인간의 본질상 동의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윤리를 제공했기 때문이지요. 

이 말씀은 유교가 주류사상으로 받아들여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이른바 기능주의적 결론인가요?

아닙니다. 다만 그런 문제점을 인식해 유교는 편협한 가족주의를 떠나 분명히 남에 대한 배려, 즉 앞서 설명한 충서(忠恕)를 바탕으로 한 인(仁)의 정신, 그리고 개인주의보다는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의(義) 등과 같은 윤리이념을 강조했다는 것이고, 이는 현대인들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윤리라는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물질 또는 자연을 정신이나    영혼의 하위개념으로 보거나 정신이 통제해야 하고 지배해도 좋은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요, 유교는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물질적 가치는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물질로 되어 있고 감각기관들도 외적 물질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있는 한 물질적 가치와 관심에서 벌어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필연적으로 몸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정신활동은 몸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물질과 정신과의 관계는 하나의 몸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지요. 육체는 정신활동의 보금자리요, 정신은 육체의 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활동이 부재한 육체는 무의미한 것이고 물질적 토대 없는 정신활동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유교에서는 물질과 사람 양자관계를 불가분의 필연관계로 보고 있고 둘 사이의 조화를 강조합니다.

돈이나 물건 같은 물질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면, 유교에서는 도덕적 삶의 실현은 물질적 뒷받침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사람이 먹고 살 수 있어야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다고 보는 거지요. 그래서 맹자는 정전제라는 토지제도를 통해 백성이 고루 넉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공자도 공정한 분배를 강조했습니다.
돈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삶의 수단으로서 재화가 공정하게 분배돼서 인간 상호간에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유교적 가치는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기본이 지켜지기 위한 지혜를 유교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유교적 가르침의 근간을 제시하고 있는 대학(大學)에서는 먼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밝은 덕을 밝히고, 이에 기초해 백성을 교화시키며 나아가서 지극히 선한 세상을 이룰 때까지 계속 노력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을 지극히 선하게, 또 선한 세상이 될 때까지 밀고 나가는 게 대학의 원리죠. 이를 이루기 위해 격물에서부터 수신, 평천하까지 8가지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덕목들은 지극한 선을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한 수양과정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밖으로 향해져 있어 내부의 자기를 볼 수 없지요. 그래서 마음의 눈을 통해 자기 안의 밝은 덕, 존엄한 도덕성, 즉 명덕(明德)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기본이 돼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사회에서 기본이 지켜지는 행위를 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교적 가치는 현실적인 도덕규범일 뿐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에 위배되는 것인가요?

위배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일례로 삼강오륜을 보면 군신간 부자간 부부간의 관계는 임금과 아버지와 남편에게 상대가 종속되는 수직적 윤리인데, 오늘날 민주사회에서는 합당하다고 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도덕 실천의 길은 '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유교적 가르침이 뒷받침될 때 더욱 바람직한 민주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혼란스럽고 여전히 민주적 절차는 지켜지지 않으며 의식은 뒤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교의 어떤 점이 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과거의 수직적 윤리, 지배계층에게 복종하는 윤리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기 때문인데, 의식은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게 아니거든요.

기본적으로 유교는 식자층의 도덕입니다. 우선 한자(漢字)를 알아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니 배운 사람은 다 기득권층이었죠. 그래서 유교윤리는 문자를 독점적으로 재배해온 계층의 윤리 성격이 강한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한자는 배우기도 힘들고 구어체가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문어체로 되어 있어 어렵기조차 합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이 소외된 거지요. 그러다보니 논의의 초점이 '훌륭한 지도자론'으로 흐른 경향이 있습니다.

맹자는 인정론(仁政論)에서 백성을 내 몸처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맹자의 대장부론을 좋아합니다. 천하의 넓은 곳에 거처하고, 천하의 바른 위치에 서며, 천하에서 가장 큰 도(보편적 도리)를 행하라고 했고, 부당한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아니하면 대장부라고 했습니다. 

즉 편협함과 불의를 떠나 범공동체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실행하라는 것이죠. 정치인들은 이것을 본받아야 된다고 보고, 국민들도 이를 바탕으로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또 모든 구성원이 함께 논의해 도출된 공의(公義)는 이해가 다르고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협조하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하고 함께 관리하고 책임지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죠.

현대교육에서는 유교적 가르침이 배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어려서부터 철학을 배웠는데, 요즘에는 지식 위주의 교육만 실시하고 있지요. 현대 교육, 어떻게 보십니까?

지식 위주의 교육이 우선은 실용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기 위한 지식인가에 대한 답이 주어지지 않을 때 지식은 단순히 개인의 욕구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립니다.

이는 결국 인간 소외, 인명 경시 등으로 이어져 인간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이 도덕 시험에서는 100점을 맞는데, 행동은 전혀 다르거든요. 이제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지구촌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모두 지구라는 주거공간에서 한 가족처럼 살게 됐지요. 그래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면서 함께 번영하려면 유교적 가르침 즉 타자(他者), 남에 대한,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정신이 절실하게 됐습니다.

유교에서 말한 인의성경(仁義誠敬)이 다시금 우리 삶에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학권(59)교수는

원광대학교 인문대 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1952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대만 문화대에서 박사학위(중국철학 전공)를 받았다.
김 교수는 안팎으로 분주하다.
교내에서는 인문대학장과 대외협력처장을 지냈고, 밖으로는 한국주역학회장, 범한철학회장을 역임한데 이어 현재 국제주역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자요산'이라는 말처럼 그는 등산을 좋아한다. 산악회 회원으로 한달에 한번씩은 꼭 산에 간다고 한다.
부인 김유옥 여사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