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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전 한국은행총재 특강 대기업 주도 경제 정책, 빈곤화 성장 가속화, 극빈자 800만..

▲ “재분배 절실하다”

△약육강식체제의 세계적 확산

우리 경제는 매년 4-5%씩 성장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 엘지 등은 일등상품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1조 달러 규모의 무역수지를 달성하게 되고 세계 15대 경제대국이다. 지난해에는 G20정상회의도 성공리에 개최했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무너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문 닫고 있다. 농민들은 희망을 잃었다. 젊은이들은 대학 나와도 실업자다. 직장인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경제는 잘 된다는데, 선진20개국 경제회의도 주재했다는데 왜 국민생활은 어려워지는가.

나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빈곤화성장'이라고 말한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들은 가난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빈곤화성장은 심각한 상태로 다가오고 있다. 빈곤화 현상은 1980년까지는 없었다. 그 이전까지는 경제가 성장하면 중소기업과 가계, 농민소득도 그만큼 성장했다. 그런데 90년대부터 빈곤화경제성장이 나타나 21세기에는 더욱 급속히 깊어졌다.

왜 그런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와 중국경제의 성장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는 케인즈 주의가 주류였다. 케인즈 경제학은 시장경제의 불신에서 시작한다. 민간기업에만 국가경제를 맡길 수 없으며, 국가가 개입해 재정 지출을 통해 기반시설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가 싹트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세계를 통일하게 됐는데, 신자유주의는 정부역할을 최소화하고, 경제에 되도록 간섭하지 말며 모든 걸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기라는 것이다. 즉 모든 시장을 하나로 개방하자는 것인데, 자유, 개방, 경쟁이 핵심이다. 온 세계를 개방하고 자유경쟁해서 우승열패,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다.

예를 들어 축구를 비유로 들자면, 동네축구는 동네마다 우승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축구팀을 개방시켜 경쟁시켜놓으면 월드컵 팀밖에 살아남을 팀이 없을 것이다. 동네축구는 다 죽고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만이 살아남을 것이며 나머지는 전부 퇴출된다. 이런 질서가 신자유주의인데, 1990년대부터 본격 시작됐다.

중국, 세계호황 이끌어

둘째, 중국경제가 일어난 것이다. 중국은 14억이라는 인적자원에 놀라울 만큼 큰 시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 질서와 중국경제의 부상이라는 요소가 결합한 결과 1990년 대 이후 경제는 두 가지 특징을 갖게 된다.

첫째는 고성장 저물가의 호황경제가 일어난 것이다. 자유개방경쟁을 하면 시장은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값싸게 생산하는 생산자가 독식하고, 이윤이 늘면 기술투자와 자동화가 촉진되면서 생산과 성장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가장 값싸게 생산하기 때문에 물가가 내려간다. 게다가 중국의 막대한 저임금 인력이 시장에 새로 나오고 중국이라는 새로운 공장부지 및 시장이 열림으로 인해 세계경제 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경제성장이 높아진데다 중국의 값싼 물건이 온 세계를 뒤덮었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자. 중국산 물건은 심지어 개고기에서부터 미꾸라지, 호박까지 들어온다. 이 때문에 물가가 싸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수치로 말하면 미국은 2007년까지 20년간 3.1%의 고성장을 누리면서도 물가는 2%밖에 오르지 않았다. 미국의 신발과 옷값은 지난 10년간 10% 떨어졌다. 이는 전부 중국 효과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미국의 경우 80년 만에 최대의 이익을 누렸고, 일본·유럽은 30년 만에 최대, 한국은 단군 이래에 최대 호황을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다. 이건 다 신자유주의와 중국경제 덕분이다.

예를 들어 강철, 조선, 시멘트, 전선 부문은 중국이 부상하기 전까지 굴뚝산업이라고 해서 전부 부도위기에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나타나면서 호황을 누리기 시작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오늘날 주식시장을 보라, 조선 주식, 포스코 같은 강철 주가가 얼마나 비싼가. 시멘트·유리·건설장비는 또 어떤가. 전부 퇴출대상이 된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면서 경제성장을 견인하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질서와 중국 경제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15대 경제대국 그러나
중소기업 자영업 붕괴
농민은 희망 잃고
젊은이들은 절망
중국 주도 저물가 호황
강자만 살아남아

신자유주의 체제, 양극화 유발 필연적

신자유주의와 중국경제가 맞물려 나타난 두 번째 특징은 이른바 ‘빈곤화성장’이다. 호황과 저물가를 누리며 경제는 성장하지만 그 과실이 한군데로 집중됨으로 인해 국민들 대다수는 더 가난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양극화 현상이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구조, 예를 들어 돼지 열 마리를 기른다고 하자. 평소 한 마리씩 칸막이를 해서 밥을 주다가, 소위 자유개방경쟁을 하는 것처럼 밥통을 하나로 터서 밥을 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먼저 힘센 놈이 독식해서 다 먹고 배불러서 남긴 것만 그 다음 놈이 먹고 나머지 돼지들은 아예 못 먹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유개방경쟁체제는 경쟁에서 강한 자, 기업으로 보면 대기업, 소득계층별로 보면 부자, 대기업과 부유층은 잘 되는데, 부유층은 돈이 있으면 주식투자도 하고 땅 장사도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땅 살 기회도, 주식 투자할 기회도 없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다가 대기업은 잘 되는데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양극화 현상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원인은 고용 없는 성장이다. 과거에는 공장만 들어서면 고용이 늘어나고 일자리를 얻기 쉬웠다. 7,80년대에는 취직하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갈 데가 없다. 경제는 발전한다는데 왜 그러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개방경제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용을 줄여야 하고 비용을 줄이려 하니 사람을 줄이고 기술과 자본에 의존하는 생산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에서 저임금 물자가 들어오다 보니 사람 많이 쓰는 공장, 사람 많이 쓰는 일은 모두 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은행이나 증권회사를 보라. 그러나 지금은 은행도 늘고, 수익도 몇 십 배 늘어났으며, 증권업무와 증권회사의 이익도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은행원과 증권회사 직원 수는 매년 줄고 있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경제는 발전하는데 일손은 필요 없는, 그래서 빈곤화성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빈곤화성장 제일 심해

빈곤화성장이 신자유주의와 중국경제의 부상 때문이라면 왜 이런 빈곤화성장이 한국에만 와야 하는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한국이 유독 더 심하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국의 산업화과정이 대기업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한국경제발전과정의 특수성이다.

한국만큼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한 나라가 이 지구상에 없다.

둘째,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시장 개방에 이어 투자시장, 자본시장까지 완전히 개방하고 외환시장까지 개방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는 수출주도국가다. 수출은 대기업이 한다. 따라서 수출을 늘리기 위해 고환율과 저금리를 유지하며 세금은 대기업에 유리하도록 하는 등 모든 경제정책을 대기업 중심으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중국의 영향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다. 게다가 중국은 경제규모가 크고 한국은 작다. 거대한 중국경제와 소규모의 한국경제가 부딪힐 때 한국이 받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그래서 모든 여러 나라가 겪고 있는 일이지만 유독 한국이 양극화문제에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빈곤화성장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단의 개혁정책이 필요하다.

이대로 한국경제를 놔두면 갈수록 양극화는 심해지고 고용 없는 성장은 깊어지며 빈곤화성장은 더 커지게 된다. 경제구조와 환경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특단의 개혁정책과 사회개혁에 대한 특별한 노력 없이는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정부가 이것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성장 독점, 언제까지

빈곤화성장 문제는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나라 경제는 잘 된다고 하는데 택시기사는 수입이 없다고 하고 음식점은 안 된다고 하고, 구멍가게는 문 닫는다고 하고, 가족이나 주변에서는 일자리가 더 없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정부 발표의 통계치를 보면, 우선 작년 경제성장률이 6%였고,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4~5% 성장할 예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수출을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기업소득이 7% 늘면 가계소득도 7% 늘어서 기업도 잘 되고 가계도 잘돼서 국민생활 수준도 그만큼 향상됐다. 90년대부터 조금씩 괴리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우리나라 수출 거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경제성장 4%든 5%든 전부 대기업이 하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대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수출을 이끌어가고 있고, 대기업이 없으면 한국은 경제성장도 못하고 수출도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경제성장의 혜택은 재벌과 대기업만 누리고 있고, 고용인구가 많은 중소기업이라든지 자영업, 농업 부문은 전부 소외되어 있다. 경제성장에서 비켜나 있고, 경제성장에 참여를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대기업이 고마운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라 경제가 이대로 가도 좋은 것인가, 이대로 계속 십년, 이십년 가도 되는 것인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부유한 대기업-가난한 국민

문제의 심각성은 저축률에서도 나타난다.

지금부터 15년, 20년 전만 해도 기업저축과 국민저축은 반반씩이었다. 지금은 대기업이 전체 저축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가계 저축은 2000년 40%에서 20%로 쪼그라들었고, 매년 줄어들고 있다.

현재 가계는 940조원의 빚을 지고 있고,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은 총 소득의 2.8%인데, OECD국가 중 가장 낮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6%, 독일은 12%다. 가계의 금융부채 비율은 미국 일본 독일보다 더 높다. 반면, 기업은 빚이 자꾸 줄어들었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외환위기 당시 400%였다. 이게 지금 100%다. 이렇게 부채가 자꾸 줄어들 뿐 아니라 지금 기업 가운데도 10대 기업들은 유보율이 1,200%다. 자기자본의 12배의 저축을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쓸데가 없어서 쌓아놓고 있다. 가계는 빚이 계속 늘어 말라가는데 대기업은 계속 저축을 쌓아가고 있는 양극화현상을 이대로 두어도 되는 것인가?

늘어나는 실업률

셋째 고용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고용률은 매년 감소하고 있고, 실업자는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 년에 3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나야 실업이 늘어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선거 때 60만개 약속했는데, 매년 10만개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계속해서 고용률은 낮아지고 실업은 늘어나고 있다.

빈부 양극화 확대 일로

넷째, 빈부 격차가 날로 확대되고 있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모든 지수에서 매년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빈부격차는 소득격차다. 이보다 더 큰 것이 자산격차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 자산 상위 10%가 전체 국민 자산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 절반인 하위 50%의 자산총액은 전체 자산의 9%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자산격차는 소득격차보다 더 심한 상태다. 이렇다보니 중산층이 매년 무너지고, 저소득층(소득이 전체국민 평균소득의 절반인 사람) 비율은 매년 늘어가고 있다. 저소득층은 2005년 18%였던 것이 2009년에는 23%로 늘어났다. 중산층이 무너져서 저소득층으로 내려 앉고 있는 것이다. 저소득층이 계속 엷어져서 중산층으로 올라가야 정상인데, 우리나라는 중산층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저소득층, 빈민층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가운데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올라가는 게 정상인데, 우리나라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건 국민생활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엥겔계수(생활비중 음식물 구입 비율)를 보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식료품비용보다 문화생활비용이 늘어나야 하는데, 식료품비용 지출이 매년 올라가고 있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대기업 중심 경제발전
무한경쟁 일변도
고용없는 빈곤화성장 부추겨
이대로 내버려둬도 좋은가
대기업은 돈 안쓰고
가계부채는 급증
빈부격차 날로 확대

800만 명 최저생계비도 못 벌어

우리나라 국민의 15%, 약 800만 명이 최저생계비 정도도 못 벌고 있다. 2011년 현재 최저생계비는 월평균 1인당 53만원이다. 그런데 800만 명이 53만원을 못 번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 많다. 이 사람들에 대해 정부서 생활보호대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최저생계비 보조를 받는 사람들은 현재 3%도 안 된다. 800만 명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데, 이중 146만 명 정도만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그것도 못 받고 있다.

게다가 명목경제성장률은 작년 기준 10%(경제성장율6%+물가상승률4%)인데, 신용카드 대출이 25%나 늘었다. 이건 가난한 사람이 받는 것인데, 은행에서 대출도 못 받는 최저 신용등급자(7등급~10등급)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사람들은 신용카드 대출을 받거나 상호금융권으로 간다. 그런데 이 저소득층 대출은 지난해 4사분기 동안 25%가 늘었다. 지난해 신용이 좋은 은행대출은 5%가 늘었는데, 저소득층의 상호금융대출은 17%가 늘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절박한 사정에 몰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자도 몇 십 퍼센트로 비싸다. 그러니 대출이자도 빈인빈부익부다. 부자들은 연이율 5~6% 얻어 쓰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50%짜리 얻어 쓰는 것이다.

국내투자 확대정책은 한계 노출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가. 크게 봐서 대안이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이 국내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대기업이 돈을 벌면 이익을 국내에 투자한다. 그럼 거기서 돈이 가계로 흘러가, 가계는 대기업 제품을 사준다. 선순환 경제구조다.

그런데 대기업은 잘 되는데 중소기업과 국민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어디가 막혀도 막혀 있다는 증거다. 사람으로 따지면 혈액순환이 안 된다는 거다. 만약 심장이 뇌에서 혈관이 막히면 어떻게 되는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된다. 국민경제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막혔느냐, 대기업이 이익을 얻는 것 까지는 좋다는 거다. 문제는 이윤을 국내에 투자해야 하는데 안 하는 것이다.

어디에 투자하느냐. 첫째 외국에 투자한다. 그러고도 돈이 남으면 빚을 갚는다. 가계 빚은 계속 늘어나는데 기업 부채율이 떨어지는 이유다. 그러니 은행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주 고객이었던 기업이 돈을 안 빌리고 오히려 빚을 갚으니 은행이 먹고 살기 위해 뚫은 고객이 어디냐, 바로 가계다. 그래서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이다. 가계는 대출 받아 집 사면 집 값 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은행은 담보 잡혀 대출이자 받을 생각에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지면서 가계 빚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이다.

기업이 은행돈 갚고도 돈이 남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냥 쌓아두는 것이다. 아까 유보율이 1,200%(약100조원)라고 한 게 이것이다. 경제가 여기서 막힌 것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대안은 대기업이 국내투자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안 된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국내 월급은 높고, 노사분규 때문에 투자하기 싫고, 국내서 생산하기보다는 현지에 공장을 세우는 것이 가격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것은 수지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정부서는 국내투자를 촉구하고 있지만 기업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이것만 갖고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재분배 정책이 가장 현실적 대안

그렇다면 해결책은 재분배정책을 강화하는 것밖에는 없다. 재분배는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균형을 이루는 정책이다. 재분배정책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의료혜택을 늘리거나 반값등록금을 시행하거나 연금정책 등이 있다. 지금 정부는 부자감세를 추진하고 있지만 완전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키우고 있는 쪽으로 가기 때문에 나는 반대한다.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내도록 해서 극빈자나 실업자,폐업한 자영업자들을 도와주는 게 재분배정책이다.

정부, 감세정책으로
빈익빈 부익부 심각
극빈자 3%만 정부 보조
중산층은 무너져 빈민으로
대기업 국내투자 늘리고
복지정책 강화해야

성장·분배정책 다시 짜야

한국은 OECD에서 세금 가장 적게 내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세금부담율(담세율)은 소득의 20% 수준인데다가 간접세 중심이다. 간접세는 누가 내냐, 어려운 사람이 더 내는 게 간접세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조세정책은 빈부격차를 줄이는 게 아니라 키우는 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재분배효과가 없다. 반면 선진국은 담세율이 적어도 25%에다 각종 공적부담금(의료보험, 연금 등)을 합해 40%가 넘는다. 보통 45% 정도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걸 합해도 26%밖에는 안 된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가 OECD에서 재분배정책이 가장 취약하고 소득 재분배가 거의 안 되는 나라라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재분배정책, 다시 말해 성장과 분배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문제는 재분배 정책
기업, 소탐대실 말고
정부, 생계·의료·교육
혜택 평등하게 누리게 해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성장
공감대 이뤄야

자본주의 체제위기 올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는 이대로 두면 자본주의 체제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대기업만 잘 되고 국민들이 소외받을 때 국민들이 자본주의 질서와 시장경제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경제에 위기가 올 수 있다. 자본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 대기업 부유층 이 사람들이 체제를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빌게이츠는 자기 소득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내놓고 자식들에게는 100만 불만 주겠다고 하고, 나머지 모두 사회에 바치겠다고 했는데, 그는 미국의회가 상속세 폐지안을 내놨을 때 한사코 반대했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제일 혜택을 보는 사람이 빌게이츠인데 끝까지 반대한 것이다. 그래서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데 왜 재산을 환원하고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느냐고. 빌게이츠는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엉뚱한 대답 같지만 그는 자본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소외받은 사람을 대변해주지 않고 자신이 속한 부유계층만 대변할 때 자본주의체제는 위기에 봉착한다고 말했다.

심하게는, ‘이 체제 못 살긴 마찬가지다’ 하면서 ‘때려 엎자’는 생각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부유층이 빌 게이츠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본다. 소탐대실하지 말고 이 정신을 배워야 한다.

생존 의료 교육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그러면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앞으로 우리나라는 기본 수요는 같이 가야 한다. 빈부에 관계없이 똑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본 수요는 가야 한다. 기본 수요가 뭐냐, 첫째 생존이다. 굶어죽지는 않아야 한다. 굶어죽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줘야 한다. 죽지 않을 때까지는. 여기에는 뭐 효율이고 뭐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생존을 위협받는 극빈층의 지원에다가 의료, 이건 돈 있고 없고 관계없이 똑같은 혜택을 누리게 해야 한다. 세 번째가 교육이다. 이 세 가지는 공동체가 해결하자.

요즘 반값 등록금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찬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놔두면 빈부의 세습이 나타난다. 부자는 계속 부자로, 가난한 사람은 대대손손 가난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는 망한다. 이렇게 되면 혁명이 온다. 자본주의가 살아나려면 부유층이 늘 바뀌어야 한다. 나 자신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내 자식은 부자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게 있어야 자본주의가 사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희망은 주는 것, 이것이 교육이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빈부의 세습화를 막아주는 것, 이것이 교육이다.

그러니 교육은 돈이 있으니까 대학에 가고, 돈이 없으면 가지 말고 이건 절대 안 된다. 어떤 형태로든지 가난한 사람도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본 틀, 이걸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생존과 의료와 교육은 국가가 보장하자. 유럽은 대학원까지 공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힘이 없으니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지원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현실에 맞게 단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보지만, 어쨌든 무료교육은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세 신설해야

기본수요를 사회공동으로 해결하려면 돈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사회복지세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개인은 총 자산에 부과하고 기업은 이윤에 부과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부유층이 돈을 더 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고 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도 대기업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지키는 방법을 대기업과 부유층이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담세율을 현행 20%에서 22%로 올리자는 것이다. 그러면 20조~30조의 재원이 생긴다.

정부, 극약처방 내려야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화성장의 문제는 정부와 국민이 아주 개혁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 적당한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노무현 정권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친 서민 정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사람 몸에 친서민적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가 한은 총재를 지낼 때 가까이 접해서 잘 안다. 그 분은 항상 어려운 사람, 소외된 사람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노무현 정부에서 혜택은 누가 봤느냐, 대기업과 부유층이 봤다. 누가 피해를 봤느냐, 불쌍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서민들이 봤다. 왜 그런가. 그분은 친서민쪽으로 가려 했지만 아까 얘기한 신자유주의 바람, 부동산 투기바람, 중국바람 이런 것 때문에 배가 이상한 곳으로 간 것이다. 노는 친 서민적으로 저었는데, 배는 반 서민적으로 간 것이다. 노무현 정부처럼 그런 노력을 해도 바꿀 수 없었다. 그 만큼 이 문제가 어렵다.

문제가 이렇게 되다보니, 나는 지금처럼 자기만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면, 환멸을 느낀다. 나는 반 대기업 정서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양극화가 있다고 해서 대기업 성장을 막아야 하느냐, 그렇지 않다. 대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그나마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다. 완전히 3등국가로 떨어진다. 문제는 기업 이윤이 선순환이 안 되는데 있다. 그런데 근래 대기업을 보면 자기네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 같은, 빌 게이츠와는 다른, 다시 말해 한국에는 빌 게이츠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대기업 개혁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나는 종합부동산세를 끝까지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시키지 말라고 앞장서서 주장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종부세 반 토막 내지 않았나. 그 덕택으로 나는 지금 종부세 한 푼도 안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 기업들도 자기들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유층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전체를 생각하자. 우리사회는 이제 ‘나만 살면 그만이다’는 정신을 고쳐야 한다. ‘함께 살자’,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신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걸 나는 ‘공동체적 성장‘이라고 말한다.

공동체가 같이 살아야지 한쪽만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 방향에서 사회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