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먹을거리운동 가운데 하나가 농민과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형태의 농민시장이다.

농민들이 같은 지역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직접 파는 형태로 가장 이상적인 로컬푸드운동이다. 인근 전북 완주군은 전주의 일부 아파트단지와 연계해 농민들이 아파트 공터에서 농산물을 팔기도 하는데, 규모가 작고 일정하지 않다. 이런 형태는 완주군 외에도 여럿 있다.  이 같은 '깜짝시장' 형태에서 벗어나 규모화 되고 조직화된 직거래장터가 있다. 강원도 원주시 원주천변에서 매일 열리는 '농업인새벽시장'이다. 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 태풍 메아리가 하루 종일 비를 뿌려대던 지난 25일 원주를 찾았다.

신선농산물 직거래장터

"어디서 오셨어요?"

6월 25일 아침 7시. 웅성거리는 원주시 농업인새벽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한 농민이 물었다.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대기에 하는 말이었다. 

"이것 참 색깔 좋네. 1킬로에 얼마에요?" 여기저기서 값을 흥정하고, 물건을 고르며 주고받는 말이 들렸다. 아이들과 함께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장터를 찾은 주부와 가족들도 있었다.

원주천변에 농민들은 보통 새벽 세시에 나온다. 천변 주차장 8천794㎡(2천600여 평)에 적게는 200명, 많게는 300~400여명의 농민들이 갖은 농산물을 차려놓기 시작한다.

이날 아침에는 태풍 메아리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와서인지 평소보다 적은 200여명의 농민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물건을 다 팔아버린 농민들은 벌써 자리를 정리하기도 했다.

채소를 팔고 있는 원주시 반곡동에 사는 유영순(56)씨. 그는 ‘농업인새벽시장 원주시협의회’ 정회원이다. 정회원은 원주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와 남편은 10년 전부터 매일 새벽 세시부터 9시까지 장사를 하고 있다.

"농지원본이 있어야 해요. 농사 짓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처음 협회에 들어올 때 가입비 30만원 내고 1년에 10만원씩 추가로 내고 있지요." 올해로 74세인 문창배씨는 13년 동안 새벽시장에서 농산물을 팔고 있다.

"2월부터 10월까지 농사를 짓는데, 손톱이 자랄 틈이 없어요." 손톱에 흙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자 수줍어하며 뱉은 말이었다. 손톱에 흙이 끼어 있는 것은 새벽에 채소를 다듬었다는 증거다. 그만큼 이곳 농산물은 신선하다.

"한 달에 300~400만원 벌어요. 아들 내외는 농사 짖고 나는 여기 나와 팔지요."원주시 개운동에 사는 윤희순(57)씨는 준회원이다.

준회원은 농민이 아니다. 하지만 새벽시장이 들어서면서 인근에 조성된 풍물시장이 피해를 보는 것을 감안, 새벽시장협의회가 그곳에서 노점 하는 상인 50명을 뽑아 장사를 하게 했다.

자주적인 운영관리

1994년 들어선 원주의 새벽시장은 농민 스스로 운영한다. 매년 4월 하순부터 12월 초순까지 추석날만 제외하고 매일 새벽 4시~9시까지 문을 연다.

2011년 6월 현재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는 농민 정회원은 453명이다. 이들이 '농업인새벽시장 원주시협의회'(이하 협의회. 회장 지경식)를 구성했다.

협의회에는 원주시내 25개 읍면동 가운데 농지가 없는 시내지역 5개동을 제외한 20개 읍면동 농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20개 지역은 농민회원 수가 적은 곳을 통합해 총 13개 지역협회를 구성하고 ‘원주시협의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시내지역에 사는 사람도 농사를 지으면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   

회원들은 규약에 따라 가입비와 연회비를 낸다.   

농지 규모에 따라 6만~30만원까지를 가입비로 걷고 있는데, 교육이나 견학, 각종 이벤트 등의 경비로 사용한다.

회원을 가입시킬 때는 농지관련 서류를 통해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는지 확인한 후 인물사진을 찍고, 주소와 생산지, 이름이 적힌 회원증을 발급해준다. 농민들은 자신의 매장에 회원증을 비치해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매일 새벽에는 각 지역협의회별로 주차를 관리하고, 외부인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감시하기도 한다. 해당 지역 농민이 당번을 서지 않으면 벌금 3만원이다. 

수입 좋고 생활 넉넉해

직거래를 하다 보니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가 생겼다.

이곳 농민들은 월 평균 2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얻으며, 최대 1천만원 이상까지 다양하다. 협의회 지경씩 회장(57)은 지난해 3천800만원을 벌었다.

지난해 농민회원 400여명의 전체 매출액은 80억 원 정도지만 정확한 수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해 새벽시장을 찾은 사람은 약 23~24만여 명. 원주시 농업기술센터는 올해 방문객 25만 명, 82억 원의 소득을 기대하고 있다.

농민-소비자 상생모델

농산물 가격은 농민이 정한다.

협의회는 품종별로 상한가를 정한다. 농산물 시세가 높다고 폭리를 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협의회가 상한가를 정해놓으면 개별 농민들은 자신이 내놓은 물건의 품질에 맞게 가격을 매긴다.

농산물이 품귀할 때도 소비자들이 시세보다 값 싸게 살 수 있는 이유다.

농민들은 받아야 할 만큼만 받고, 소비자들은 농민들이 매긴 가격을 비싸다고 하지 않는다. 농산물은 하루 전이나 그날 새벽에 수확한 것들을 다듬어 내놓기 때문에 신선하다.

유통 중간 단계가 없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게다가 소규모 농민들이 적은 농산물을 갖고 서울 가락동시장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농 활성화가 가능하다.

소비자들은 수입농산물이나 타 지역 농산물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농산물 유통에 들어가는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하면서 신선한 농산물로 건강을 지킨다. 

원주시의 인구는 익산시와 비슷하지만 이마트의 규모는 익산시의 3분의 1수준이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다.

저농약 인증체계 마련

원주시농업기술센터는 새벽시장에 나오는 농산물을 저농약 친환경 농산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인증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농기센터 관계자는 "그동안 새벽시장 농산물은 값이 싼 중저가 물건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이제부터는 저농약 고품질 시장이 될 수 있도록 2014년까지 인증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부터 친환경유기농 농산물 코너를 새벽시장에 마련했다"며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김경선 기자 

미니인터뷰

‘농업인새벽시장 원주시협의회’ 지경식 회장 일문 일답

지경식(57) 회장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3년째 메기농법을 실시하고 있는 농업인이다.10만평의 농사를 짓고 있는 대농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협의회장으로 선출됐다.

△새벽시장 역사와 현황에 대해 말해달라

=새벽시장은 94년부터 시작해서 17년 됐다. 당시 농민과 소비자간 직거래를 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농사를 짓는 정회원은 현재 453명이고, 준회원은 50명이다. 

준회원 50명은 풍물시장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이다. 새벽시장이 옆에 있는 풍물시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피해를 보상해주기 위해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회원 및 농산물 관리는 어떻게 하나

=정회원은 일단 원주시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어야 하고, 원주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농지 원부가 없으면 농지임대차계약서 가 있어야 하는 등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어야 한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농산물 품명과 생산지, 생산자 연락처가 기재된 회원증을 발급한다. 우리는 생산자표시제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 이력을 알 수 있어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다.

△매출액은 어느 정도인가

= 개인당 평균 2천~2천500만원 정도다. 나는 지난해 3천800만원 정도 벌었다. 1년 매출이 1억5천만원인 사람도 있다. 작년에 새벽시장에서는 총 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정회원 250여명, 준회원 포함해 300명 정도가 매일 새벽시장에 나온다.

△협의회는 어떻게 구성됐나

지역협의회는 13개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읍면동 회장을 선출하고, 지역별로 당번일자를 정해 당번을 선다. 25개읍면동 가운데 시내에 있는 5개동만 들어오지 않았고 20개 지역이 들어왔다.

지역협회 회장과 시협의회장은 민주주의 방식으로 투표해 선출한다. 가입비는 6만원~30만원까지인데, 회비는 시장관리와 회원 경조사, 각종 행사, 교육, 견학 등을 실시하는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