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공동화장실 3기 발견, 구조에서 뒤처리까지 깔끔
우리는 살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기 때문에 먹은 양에 비례해 변을 배출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생활사 중에서 의식주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식생활부터 시작해 농경문화, 건축, 위생관념 등을 문헌이나 그림 속에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시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고학적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활고고학에서 ‘화장실고고학[toilet archaeology]’분야로 구분돼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2003~2004년에 걸친 왕궁리유적 발굴 조사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삼국시대의 화장실이 발견됐다. 그동안 삼국시대 화장실 문화는 일본에 다수 남아있는 유적을 통해 단순 추측해볼 뿐이었지만 왕궁리유적 발굴현장에서 백제시대 것으로 보이는 화장실이 발견됨에 따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 내부에서 각종 유물이 쏟아져 나와 고도 익산의 백제시대 생활상을 조금 더 분명히 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신비에 싸여있는 백제왕국의 문화 중에서도 가장 생활과 가까운 화장실 유적을 통해 고도 익산, 백제왕도 익산의 모습을 그려본다.
◇ 언제나 어디서나 필수아이템, 화장실
농경문화가 자리 잡은 백제시대 익산의 사람들은 지금의 금강유역과 왕궁면 일대, 만경강 주변에 주로 씨족 형태로 마을을 이루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발굴되는 유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강 하류에 정착해 살았던 이유는 평지를 비롯한 비옥한 땅에서 경작하기 위함이고 또한 가까이에서 식수와 농업용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착 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화장실 문화는 어땠을까.
우리는 왕궁리 유적에서 나온 대형 공동화장실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천사백년 전의 백제인들이 어떻게 ‘뒷간’을 만들고 ‘볼일’을 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왕궁리유적은 면적이 약 21만 6천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궁궐터다. 나중에 사찰로 변용된 흔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궁궐로서 사용됐다는 흔적이 성벽 안에 남아 있다.
지금까지 수십 개의 건물터, 정원, 공방, 화장실 등과 수레가 다녔던 흔적, 우물, 웅덩이, 수로 등이 발굴 조사되면서 궁궐 내 생활 모습이 차츰 드러나고 있으며, 그 규모로 보아 천사백년 전 이곳 궁궐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적어도 수백 명은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수백 명이 생활하던 곳에 공동화장실은 필수였을 것이고 군데군데 설치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2003년 발견된 3기의 대형화장실이다.
◇ 궁궐 서북편에서 은은한 향기가 솔솔
대형화장실은 왕궁리유적 서북쪽 평지 지역에서 발견됐다. 발굴과정에서 아궁이, 도가니, 폐기장 등이 발견돼 공방 시설이 자리했던 곳으로 나타나 그곳 장인들이 주로 이 화장실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서쪽 성벽 내측으로 다량의 수레바퀴 자국이 나있는데 그 흔적을 파괴하고 화장실이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수레바퀴가 왕래하던 길이었던 곳에 화장실을 만들었다는 얘긴데, 왕궁 건축 당시 성벽이나 기타 건물을 짓기 위해 수레가 왕래했던 흔적 위에 화장실을 지었거나, 그 근처로 궁에서 필요한 자재 등을 나르기 위한 길로 사용되다 후에 화장실이 들어선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화장실을 관통하는 수레바퀴자국이 화장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방시설까지 나있는 것으로 볼 때 공방에서 필요로 하는 목재나 광석들을 나르는 길이었지 않았나 싶다.
3기의 대형화장실은 공방시설에서 약 30미터 남쪽에 있다. 일렬로 늘어서 있으며 제각각 그 크기가 다르다. 서벽 쪽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가장 크고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작아진다. 그래서 혹시 신분별로 쓰는 화장실이 달랐거나 여자화장실이 따로 있었던 걸까 생각해보게끔 한다.
우스갯소리로 ‘똥에도 계급이 있나’싶지만 봉건제 계급사회가 낳은 하나의 문화로 이해할 수밖에. 실제로 조선시대엔 임금의 똥을 ‘매화’라고 불렀고 임금의 좌식 화장실은 ‘매화틀’이라고 불렀으니 똥에도 계급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어떤 추측이 그럴싸하든 궁성의 서북편에 공방이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수십 명의 장인들과 함께 주변 건물지의 사람들이 공동화장실을 이용했음은 자명하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천사백년 전 익산의 왕궁성 서북편은, 공방 아궁이의 나무 타는 ‘냄새’와 화장실에서 새어나오는 ‘향기’가 은은한, 생동감 있는 장소였다고 상상할 수 있다.
◇ 최첨단 수세식 화장실 구현
3기의 대형화장실 중에서 가장 큰 곳의 길이는 10.8m에 이르고 다른 곳은 약 5m, 3m순이다. 1m에 한 명씩이라고 계산하면 10명이 한꺼번에 볼일을 해결할 수 있는 대형 공동화장실이었던 셈이다. 그만큼 사용량이 많았다는 것은 궁궐 내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궁궐로서 온전히 이용되었음을 시사한다.
화장실을 만드는 과정을 추측해 보면, 일단 적당한 자리를 폭 1.7m, 깊이 3m정도로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로 파낸다. 그리고 파낸 내부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로 벽면에 거의 접하여 나무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는다. 현재는 기둥이 약 1.8m정도가 남아있지만 조성 당시는 지표면이나 혹은 그 위까지 놓여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직경은 15cm~24cm이며 일정한 간격으로 보아 칸막이 구분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내부 벽에 20cm두께로 점토를 덧바른 점은 내벽이 내용물에 의해 무너지지 않게 보강하고 오물이 지하수에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으로 추측된다. 이른바 침출수 방지 기능을 갖추고 있었던 것. 이보다 놀라운 것은 화장실 서쪽 끝부분의 바닥에서 2미터 지점에 수로를 내 동서석축배수로로 자연스럽게 내용물이 흘러나가도록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수세식 정화조와 비슷한 기능을 이미 사용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게다가 내용물이 일정량을 넘으면 자연스럽게 배출돼 배수로를 따라 서쪽 성벽 밑을 지나 밖으로 흘러가게 설계돼 있는데, 인접한 수로에 작은 돌을 빈틈없이 치밀하게 채워 넣은 것은 오수를 정화하기 위한 시설로 볼 수 있다. 과연 최첨단 친환경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고 무엇일까.
◇ 뒤처리도 최첨단
이러한 최첨단 화장실 문화를 영위하는 백제인들의 '뒤처리는 어떠했을까. 종이를 비롯해 지푸라기, 나뭇잎 등 갖가지 상상을 초월하는 뒤처리 도구가 있다. 바로 조그만 나무막대 측주(厠籌)다.
나무막대를 뒤처리에 사용한다는 것이 지금에선 쉬이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일본에서 발굴된 측주나 익산에서 발굴된 측주를 통해 그 시대에 통용되던 뒤처리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측주가 상당수 발견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익산시 왕궁리유적 에서 발견됐다.
길이는 26.3cm~30.3cm이고 폭 1cm, 두께 0.4cm로 손에 쥐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크기다.
그 사용법을 예측해 보면 이렇다. 화장실 내에 두루마리화장지처럼 측주가 담겨진 항아리가 비치돼 있고 사용자가 볼일을 마치면 측주를 꺼내 뒤처리를 한 다음 사용한 측주를 다른 항아리에 넣는 방식이다.
당시 상황에서 나름대로 위생과 편리함을 갖춘 도구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일본에서 발굴된 측주가 죽간을 재활용했거나 그 끝부분이 날카롭게 되어있는 반면, 왕궁리 측주는 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매끈하게 다듬어 뒤처리를 하는 부분이 둥글게 처리되어 있는 차이점을 보인다.
◇ 화장실 나올 때 다른 마음
지금까지 백제시대의 화장실 문화를 들여다보았지만, 단순히 생각해도 왕궁리유적의 화장실이 그 시대의 대표 문화라고 특정할 수 없음은 틀림없다. 다만 궁궐의 문화가 대다수 백성들에게 전파돼 생활화 됐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유물들에서 발견된 내용들도 많다.
예를 들어 여성이 사용했을 거라고 추정하는 손잡이 달린 요강이나 남성용으로 추정되는 호자(호랑이 모양으로 남성이 실내에서 사용했던 요강)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대다수 백성들은 농경문화 속에서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하기 위한 슬기로운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해지는 것이 없어 여러 상상만 해볼 따름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속담이 있듯, 단순히 백제시대의 유물이나 문화재를 아름다움과 경탄으로 바라볼 때와 다르게 깊숙이 들여다봄으로써 느끼는 지점이 확연하게 다름을 느끼게 된다. 고도 익산에서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는 유물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통해 천사백년의 시간차를 무시하고 함께 숨 쉬는 문화도시 익산을 조심스럽게 기원한다.
정완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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