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최초로 돌로 만든 최대의 원각여래좌상(圓刻如來坐像)

우리가 살면서 흔히 쓰는 말에 ‘부처의 미소’라는 말이 있다. 자비로운 사람에게서 비치는 은은한 미소를 보며 으레 하는 말이다. 그것은 불교에서 주창하는‘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이 불상(佛像)의 미소에서 나타나고, 또한 불상이 짓는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비심의 오의(奧義)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생긴 말일게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나 석굴암의 불상에서처럼 여태껏 보아온 대부분의 불상은 자비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부처의 미소에서 평안을 얻곤 했다. 부처의 미소가 하나의 상징처럼 생활 속에 녹아든 이유가 아닐까. 그런데 웃지 않는 불상이 익산에 있다. 삼기면 연동리의 석불좌상이다. 천사백여 년 동안 그 자리에서 익산을 지키며 버텨온 연동리석불좌상. 백제시대의 불상이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크고, 돌을 사방으로 깎아 만든[圓刻] 최초의 불상일진데 미소를 잃어버렸다니 그 속사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석불사 깊은 밤 그윽한 풍경소리

문화재청에 ‘보물 제45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으로 등록돼 있는 석불은 삼기면 연동리 석불사(石佛寺) 대웅전에 봉안돼있다. 미륵사지에서 함열읍 방면으로 약 3km지점에 낭산면 방향 718번 국도와 만나는 석불사거리 서쪽에 석불사가 위치해 있다. 석불초등학교, 석불수퍼, 석불회관 등의 명칭을 주변에서 볼 수 있어 본디 마을 이름이 석불리(石佛里)였으며 석불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쉬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석불사는 한국불교화엄종 본산이며 발굴된 유물(遺構)로 볼 때 백제 무왕대인 7세기 전반에 창건돼 13세기까지 내려오다 폐찰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옛 사찰명은 봉림사(鳳林寺)였으나 조선말 중창되면서 석불사로 개칭됐다. 미륵사지와 제석사지, 왕궁리 오층석탑 등의 창건보다 앞선 시기에 건축됐으며 위치상 산과 떨어진 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찰로 보인다. 가까운 곳에 있는 태봉사, 미륵사 등의 절과 함께 백제왕도 익산에서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자취가 현재까지 이어짐을 알 수 있다.

한편 ‘彌勒山石佛寺(미륵산석불사)’라 쓰인 일주문(一柱門) 현판은 일붕 서경보 스님이 썼고, 특히 석불이 모셔진 대웅전 현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명필 한석봉(韓濩:한호)의 솜씨여서 석불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반가움을 전해준다.

◇ 눈부신 후광이 감싸는 석불

석불사 대웅전에 들어서면 여래상의 웅장한 모습에 일단 놀라게 된다. 큰 절에 비해 비교적 소규모의 대웅전이지만 천장에 닿을 듯 놓여있고, 화강암을 깎아 만들어진 불상이기에 무게감과 위압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게다가 천사백년의 세월을 간직한 신비스러운 느낌과 영험한 기운까지. 수백 톤에 달하는 불상이 굽어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절로 무릎이 굽어 오체투지가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석불은 크게 나누면 좌대(석불이 앉은 자리)와 그위에 앉은 석불, 광배(光背: 머리 뒤쪽의 후광)로 나뉜다. 좌대는 전면 폭이 2미터25cm이고 높이가 약 45cm로 하면에는 10cm가량의 돌 받침대를 두고 있다. 석불의 옷자락이 자연스럽게 좌대를 덮은 상현좌(裳縣座:옷자락이 좌대를 덮은 모양)를 하고 있는 형상인데, 석불을 받치고 있는 돌(지대석)은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당당하고 우아한 인상을 주는 석불은 좌대 위에 결가부좌(좌우 다리를 접고 바른 자세로 앉은 모양)를 했는데 몸체의 높이가 1미터56cm다. 이는 불상의 머리 부분을 제외한 크기로, 불두(佛頭)를 후에 새로 달았기 때문이고 머리까지 합한 앉은키는 2m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야외에 있었기 때문에 닳고 떨어진 부분이 많지만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가사(袈裟)자락이 얇게 표현돼 있고 주름이 활달하고 사실적인 느낌이다. 수인(手印, 불상의 손가락 모양)의 형태는 오른손을 무릎 위에 가볍게 올려놓고 왼손은 가슴에 댄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광배는 부처의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을 표현한 것인데, 연동리 석불의 광배는 특히 우리나라 불상의 광배 중에서 가장 크다.

높이가 4.48미터로 배[舟] 모양이며 보통 광배는 머리 뒷부분만 있는데, 연동리 석불은 몸에서까지 빛이 나오는 모양을 조각해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라 칭한다.

두광(頭光: 머리 주변의 광배)에는 백제의 기와에서 볼 수 있는 16엽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주변엔 부처의 여러가지 모습(化佛:화불)과 용을 형상화한 불꽃무늬 등으로 채워져 있다.

◇ 석불 머리에 얽힌 미스터리

신비로운 백제시대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석불이지만 그 가운데 영 어색하다. 바로 불상의 머리인데 석불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만든다. 석불의 몸통과 머리가 좀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몸통과 머리가 너무 붙어있어 움츠러든 모습이라거나, 머리의 가로세로 길이가 비슷해 둥그렇게 보이며, 몸통에 비해 머리의 비례가 맞지 않아 왜소하게 보인다. 어디에서도 자비로운 미소 또한 찾을 수 없다. 그저 멍한 표정의 머리가 어색하게 얹혀있어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이는 석불의 머리가 떨어져 없어지고 새로 달았기 때문인데 자료상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달았는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석불의 머리가 떨어진 이유는 조선시대 말에 불상의 광배가 끊어져 앞으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쳐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후 1963년에 야외에 방치돼있던 석불좌상을 보호할 목적으로 시멘트 보호각을 건립했는데 그 당시 광배를 세우고 머리를 새로 달았다고 전해질 뿐이다.

일단 머리는 지금껏 보던 불상의 머리와 판이하다. 동글동글한 곱슬머리도 없으며 눈매와 귀부분도 조잡하게 처리됐다. 특히 미소 짓고 있다고 보기에 어려우리만큼 입 꼬리가 처져있는 모습이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백제 불상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인근의 태봉사 삼존석불이나, 서산마애불, 태안마애불, 정읍 보화리 석불입상에서 볼 수 있는 백제 불상의 얼굴과 너무 다르다. 질적으로 미적으로 조화로서도 맞지 않는 머리를 달고 있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진홍섭이 1976년 발간한 ‘한국의 불상'에서 연동리 석불의 머리에 대한 단서가 있다. 연동리 석불에 대해 쓰면서 ‘원래의 머리는 옆에 보관돼 있다’라고 기술했던 것. 그렇다면 떨어져 나온 머리를 보관하고 있는 상태에서 1963년 새로 머리를 달았다는 얘긴데, 지금은 잃어버려 찾을 수 없기에 본디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과연 현재와 비슷한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모습이었는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 석불의 머리가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부처의 얼굴이라기보다 어떤 스님의 얼굴을 모델로 하지 않았나 싶다. 

◇ 나라를 지키려 목을 바친 석불

석불에는 그 영험함과 맞물린 갖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백제 무왕이 재위 11년경 선화공주와 함께 태봉사로 기도하러 가다가 미륵사와 태봉사 사이에 가람을 세우고 미륵본존불상을 조성했다는 전설로 시작해, 부처가 연동리 사람의 꿈에 나타나 자신을 꺼내달라고 말해 점지해준 땅을 파보았더니 불상이 있어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진다. 그 중 정유재란 당시 왜장을 막아 나라를 지켰다는 이야기는 석불의 머리가 없는 이유와 관련이 있다.

정유재란 당시 왜장 가등청정(加藤淸正,가토기요마사)이 금마에서 여산을 통해 서울로 진격하려던 중 금마지역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진격을 하려고만 하면 안개가 끼어 대낮에도 칠흑같이 어두워졌기 때문. 당황한 가등청정은 부하들을 풀어 주변을 염탐하게 했고 그 결과 사람들이 석불 앞에 모여 왜군이 사라지기를 기도하고 있었다는 보고를 받게 된다. 왜장은 한밤중에 그 석불을 찾아 갔는데 광채가 빛나는 석불을 보고 모든 게 석불의 조화로 여겨 칼로 석불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돌아와 진격하려는데 맑은 하늘에 비가 쏟아져 조총이 물에 젖고 화약도 젖어 쓸모없게 되었고 이때 낫과 죽창으로 무장한 의병들이 공격해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 고도 익산의 첨병

백제시대 최대, 최고의 기념비적 걸작이고 우리나라 석상 조각의 기원으로 꼽히기도 하며 후대와 일본의 고대 조각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이는 연동리 석불좌상. 하지만 그런 학문적 가치와 더불어 더 큰 가치라고 이를만한 생활 속의 문화재였다는 사실을 갖가지 전설과 현존하는 석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삼기면 석불사거리를 지나는 길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람들을 굽어 내려다보고 있을 석불에게, 익산시가 마한백제의 고도로 발전해 나가는데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해주십사 기원해본다.  

정완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