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면 연동제 주변서 탄생, 죽어서는 석왕동 쌍릉에 묻혀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의 셋째 아들이 백제의 시조 온조(溫祚)왕이다. 온조는 한강유역(위례)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 화려하고 독창적인 백제문화를 열었다. 해상강국으로 발전해 중국 내륙과 일본에까지 영향권을 둔 백제는 서기 600년, 서른 번째 왕으로 익산출신 서동이 왕위에 오른다. 의자왕(義慈王)의 아버지인 무왕(武王)이 바로 그인데, 탄생설화만큼이나 그 자취 또한 신비롭다. 무왕은 즉위 2년 만에 전사한 할아버지 혜왕(惠王,28대)과 마찬가지로 2년도 못돼 죽은 아버지 법왕(法王,29대)을 이어 백제의 왕위에 올라 장장 40년간 백제를 통치했다. 기울어가던 국가를 다시 일으키고자 밖으로는 여러 차례 신라를 공격하여 견제하고 안으로는 익산으로 천도하고 불교중심문화를 키우면서 익산경영에 나선다. 약 700년간의 백제 왕조에 있어서 익산이 도읍이었던 기간은 무왕 후반 몇 년 뿐이라는 것은 무왕과 익산의 인연이 그만큼 깊다는 증거가 아닐까. 무왕의 꿈이자 백제의 희망이었다고 회자되는 익산. 그곳에 서동 무왕이 태어나고 잠든 흔적이 남아 고도 익산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서동생가 터에서부터 익산토성을 지나 쌍릉에 이르는 길을 따라 걸으며 같은 꿈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오금산 익산토성. 석축은 후대에 개축된 것으로 보인다.

서동생가터에서 익산토성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표지판

◇ 용의 아들이 태어나다

삼국유사에서 무왕의 출생에 대해 말하기를 ‘제 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의 못 가에 살았는데 그 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장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탄생설화지만 그 연못과 생가의 흔적이 익산에 남아 있다.

금마사거리에서 무왕로를 따라 도심방향으로 약 2Km 정도 가다보면 우측으로 넓은 연못을 볼 수 있다. 7,8월에 연꽃이 만발한 연동제라는 이름의 저수지인데 그 한쪽에 마룡지(馬龍池)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연방죽을 확장하면서 연방죽과 마룡지가 하나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연동제라는 하나의 못이나 다름없게 됐지만 그 안쪽에 마룡지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곳에 서동생가터가 있다. 무왕길 탐방로라는 표지판을 따라 들어서서 둑을 따라 이어진 길 안쪽에 참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곳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오금산 남쪽 백여 보 되는 자리에 연못지가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서동대왕의 어머니가 축실(築室)하였던 곳 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어 그 신빙성을 더해준다.

그 밖에도 천사백년 된 우물인 용샘이 집터 주변에 남아있는데 무왕이 어릴 적 식수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주변 마을의 이름이 용정(龍井)마을인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서동은 이곳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금산에 올라 마를 캐어 내다 팔기도 하고 마룡지에서 멱을 감기도 했으리라.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이야기대로라면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운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삼국시대 최대의 스캔들을 일으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아내로 얻은 사랑이야기를 남겼다. 훗날 백제왕에 즉위해서도 오랫동안 익산경영을 꿈꾸며 자취를 남겨놓았다.

◇ 용못골길을 따라 오금산에

서동생가터를 지나 근처 용정마을로 나가면 용못골길을 만난다. 그곳에서 오금산(五金山)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안쪽으로 걷다보면 서동과 함께 마를 캐러가는 기분이 절로 든다. 고도 익산 둘레길 조성으로 표지판들을 만날 수 있는데 쌍능길을 만나서 좌측으로 200m정도 가면 익산토성 표지를 볼 수 있다.

익산토성은 사적 92호로 지정됐으며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위치한 오금산에 조성된 성벽 유적이다. 오금산은 서동이 마를 캐던 산이며 선화공주에게 줄 금 다섯 덩이를 얻은 산이라 해서 오금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익산토성은 오금산 정상에서 남쪽 골짜기를 안고 좌우 두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성내에 계곡을 포함한) 산성으로 발굴조사결과 백제 말기에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 보면 산 중턱에 돌로 쌓은 성벽이 기다랗게 남아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익산지역에서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성벽 유적이다. 대부분 토성으로 구성됐지만 남쪽 계곡 근처 삼사십 미터 쯤 남아있는 석축은 후대에 개축된 것이다. 토성의 둘레는 약 700m가량이며 성벽의 하부 폭은 3m, 상부는 약 3m정도이고 성벽을 관통하는 문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 외 특별한 시설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발굴과정에서 성안에 도자기 벼루, 토기, 명문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어 성내에 간단한 건물지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익산토성에 올라가서 보면 백제 왕궁유적과 함께 주변의 삼례, 전주, 김제까지 내려다보인다. 무왕이 마를 캐던 당시 오금산에서 익산 땅을 바라보며 장차 그곳에 궁궐을 짓겠다는 생각이라도 했을 법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 서동과 선화공주가 잠든 사랑의 공원

익산토성에서 내려와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지나 1.5Km 정도에 이르면 무왕과 선화공주가 잠든 쌍능을 만난다. 도심에서는 금마 방향으로 무왕로를 따라가다 팔봉장례식장 전에 왼쪽으로 빠지는 쌍능길로 접어들면 된다. 사적 87호로 지정된 쌍릉은 대왕릉과 소왕릉의 두 고분을 아울러서 일컫는 것이다.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고려사에 따르면 쌍릉은 후조선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 하였는데 속칭 말통대왕(末通大王)능이라 불렸고 일설에는 ‘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서동인데 말통(마동)은 맛동 즉 서동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고 덧붙여 쌍릉의 주인공이 서동과 선화공주임을 기록하고 있다.

무왕릉의 봉토는 직경 30m, 높이 5m이며 왕비릉은 직경24m, 높이 3.5m로 무왕릉이 약간 크고 남북으로 150m 정도 떨어져 있다. 두 무덤의 구조는 동일한 양식인데 지하로 땅을 파고 화강암을 다듬어 장방형의 묘실을 마련한 다음, 위에 고임석을 올린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형태다. 이는 웅진과 사비시대에 지배층의 대표적 묘제 유형으로 능산리 왕릉과 비견되며 피장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백제 왕릉 가운데 그 피장자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공주 무령왕릉 뿐이며 기타 왕릉급의 고분뿐 아니라 어느 고분에서도 그 주인공에 대한 근거가 없다. 그러나 쌍릉이 무왕릉이라는 고려사의 기록과 고분의 위치적 성격, 고분조성 유형 등이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쌍릉은 고려 충숙왕 때부터 왜구의 노략질로 여러 차례 도굴되고 방치되다 1917년 일본인에 의해 간단한 발굴조사가 실시됐을 뿐이다.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부장품은 거의 사라지고 목관과 관장식 몇 점만이 남아 출토됐다. 지금은 주변을 서동공원으로 조성하여 무왕과 선화의 사랑을 기리는 테마로 익산시민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 무왕과 함께 숨쉬는 익산

서동이 태어난 생가에서 왕궁리 유적까지는 직선거리로 1.5km, 오금산 익산토성 까지 1km, 쌍릉까지는 1.4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모두다 2Km 이내로 서동이 태어나 자랐던 그야말로 진정한 고향이라고 봐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40년 동안의 재위기간 동안 30년 이상을 부여에서 보낸 무왕은 마지막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정치적 이유야 어쨌든 서동 무왕의 익산에 대한 강한 애착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미륵사와 왕궁리유적, 제석사 유적 등 무왕과 관련한 문화 유적이 익산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고도 익산으로 지정되어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는 이 시기를 맞아 무왕 또한 지하에서 흐뭇해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서동공원으로 조성되고 관리되는 쌍릉에 비해 서동생가터나 용샘, 익산토성에 대한 관리 부재가 아쉬움으로 남는 점이다.   

정완창 인턴기자

무왕릉(대왕릉)

무왕비릉(소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