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때 지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경기에 집중.

체력훈련 가장 힘들어.. 저한테 대시할 남자 없나요?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펜싱사상 첫 금메달, 남녀 통산 두 번째 금메달을 딴 익산시청 소속 펜싱부 김지연(24.사진) 선수.

지난 21일 오전 익산공설운동장 펜싱연습장을 찾았을 때 그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여자 사브로 세계 1위라는 영광과 성대한 환영식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다가올 또 다른 경기를 위해 마음을 다잡은 모습이었다. ‘미녀검객’을 처음 대면했을 때 그에게서는 꾸미지 않은 청순미가 느껴졌고, 인터뷰할 때는 솔직했다. 30분 정도 진행된 대담은 이상기 감독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 부산 출신인데 고등학교(부산 디자인고) 졸업하자마자 익산시청 펜싱부로 왔는데요, 익산이라는 도시가 굉장히 낯설었을 턴테 어떻게 오게 됐죠?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고요. 처음부터 익산시청으로 가고 싶더라고요. (고등학교)선생님한테도 ‘너 어디가고 싶냐’고 물으면 ‘익산시청 가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 전북 익산이라는 도시를 알고 있었나요?

아뇨. 그냥 (익산에서) 운동을 해보고 싶었어요.

△ 설정된 답변 아니죠?

네. 진짠데.(웃음)

△ 익산에 대해 전혀 몰랐을 턴데, 어떻게 익산에 오고 싶었을까요.

(이상기 감독이 옆에서 거들었다. “익산시청에 선배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당시에 또 익산시 소속 선수들이 (경기를) 잘 했어요. 아무래도 후배 입장에서는 아는 선배들 하고 같이 운동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코치 선생님도 부산 쪽 중학교에 계시다가 오셨고.

(이상기 감독 : 여기 이수근 코치가 부산에서 펜싱코치를 했었어요. 그때 지연이도 알게 됐고.)

네. 그래서 같이 배우고 싶은 마음에 오고 싶었어요.

△ 시청으로 온 뒤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운동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어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언니들이나 오빠들이 많이 챙겨주셔서 견딜 수 있었어요. 그리고 조금만 나가면 마트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죠.

음식도 맛있더라고요. 부산에서는 맨날 싱거운 음식이나 짠 음식 먹다가 여기 와서 먹으니까맛있었어요.

△ 특히 어떤 음식을 좋아해요?

‘돼지코’가 맛있더라구요. 곱창이랑 고기랑 같이 볶아 놓은 건데요 이걸 좋아하구요, 김치찌개도 맛있고.

△ 돼지코는 생소한 메뉴인데, 어떻게 요리해서 나오는 거죠?

양념 곱창이랑 양념갈비랑 양념삼겹살을 주문하면 같이 섞어서 불판에 구워져 나오는데 되게 맛있어요.

△ 보통 몇 인분 먹어요? 운동선수들은 많이 먹는다는데.

제가 입이 짧아서 그렇게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에요.

△ 펜싱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중학교(부산 해운대구 제송여중) 1학년 때 체육선생님이 해보라고 제안해서 시작했어요.

△ 체육선생님이 펜싱을 권유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는데요, 달리는 것 보고 저를 부르더니 ‘펜싱 한 번 해볼래?’ 하면서 체육관으로 오라는 거예요. 그때는 펜싱이 뭔지, 칼이 뭔지도 몰랐는데, 호기심에 몇 번 연습장에 올라갔다가 언니들하고 친해져서 언니들이랑 같이 다니고, 펜싱부는 또 무리지어 같이 다녔는데, 그게 너무 멋지고 재밌어 보여서 펜싱이 하고 싶어졌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 원래 육상부였나요?

원래는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배웠고, 중학교도 태권도를 잘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는데, 당시는 중학교 사정을 잘 몰라서 펜싱을 잘하는 중학교(제송여중)로 가게 된 거죠. 

△ 우연 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네요. 그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익산에 와서 맹훈련을 받았는데,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이 뭐였나요? 

객지에 와서 엄마랑 아빠랑 떨어져 있으니까 그것도 많이 힘들었고, 제가 실업팀에 바로 오다 보니까 선생님들이 운동을 더 시키려고 하셨거든요. 그것 때문에도 많이 힘들었어요.

김지현 선수가 이한수 익산시장으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체력훈련 때문에요?

네. 부산에 있을 때는 제가 제일 잘 뛴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 막상 와보니까 제가 제일 못 뛰는 거예요. 저는 정말 체력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 그럼 맨 꼴찌만 했겠네요?

네. 그런 것도 너무 힘들었고, 계속 힘들었던 것 같아요.

△ 펜싱 기술을 배우는 것 보다는  기초체력을 다지는 게 더 힘들었다는 얘기네요.

예, 예.

(이상기 감독 : 실제로 운동선수들에게는 체력훈련이 가장 힘들어요. 기술 배우는 것 보다 체력을 키우는 과정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거든요.)

△ 매일 얼마나 운동을 하죠?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 8시에 밥 먹고 아홉시 반부터 또 운동하고 12시에 점심 먹고 쉬다가 오후 두시 반부터 운동하고, 다섯시나 다섯시 반쯤 운동을 마쳐요. 매일 하는 건 아니지만 야간운동을 할 때는 일곱시 반부터 아홉시까지 추가로 더 하고요.

△ 먹고 운동, 또 먹고 운동만 하는 거네요.  이렇게 생활하다보면 답답했을 턴데요.

(이상기 감독 : 선수생활 자체가 자신과의 싸움이 돼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훈련이 이어지니까요. 주말에는 잠깐 쉴 수는 있는데, 이때도 시합 있으면 훈련을 해야 하고 시합이 없는 평소 때도 잠깐씩 운동을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자기 생활이 없죠. 지연이가 아직은 어리잖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것이고 부모님을 뵙고 싶을 때도 있을 턴데, 자기 마음대로 못하고 그런 면을 상당히 힘들어하죠.)

△ 주말에 외박을 나가거나 하지 않나요?

처음 실업팀에 왔을 때는 적응이 안 되다 보니 주말만 되면, 하루밖에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집에 갔다 왔어요. 토요일 날 부산에 도착하면 밤 11시 정도 되는데, 엄마 보는 게 좋아서 같이 하룻밤 자고 일요일 날 오전에 올라오고 그랬죠.

△ 울었어요. 혹시? 엄마 보고 싶어서?

네. 많이 울었었죠. 처음엔.

(이상기 감독 : 지연이가 여려요, 마음이. 지금은 많이 단련이 돼서 좋아진 편인데..)

△ 감독님이 무섭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무섭기도 하시고, 그리고 가까이 하질 못했어요. 감독님이다 보니까.

(이상기 감독 : 사브르 코치가 있는데, 사브로 종목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많이 알고 있거든요. 코치가 몇 년 전부터 누구를 데려올까 팀 내에서 조율하고 팀 내에서 ‘누가 괜찮다’ 하면 지켜보거든요. 좋은 선수가 있으면 계속 지켜보고 판단하는 그런 과정이 있어요. 1년이든 2년이든. 이수근 코치 같은 경우는 부산에 있을 때 지연이를 지켜본 경험이 있으니까 ‘발전 가능성이 있겠다’ 라는 생각을 가진 거죠. 또 저희도 지연이를 관심 있게 지켜봤고, 지연이가 고등학교 때 잘 했어요.) 

△ 김지연 선수가 바라보는 이상기 감독님, 어떤 분인가요?

(이상기 감독이 웃으며 “제가 있으면 말 못할 것 같은데요”라며 자리를 비켰다.)

자상하시구요. 엄할 때는 또 엄청 엄하시고. 그리고 운동시킬 때만큼은 진짜 독하시더라구요.(웃음)

△ 감독님이 제일 미웠던 건 어떤 점이었어요?  ‘이럴 땐 정말 밉다’ 할 때가 있잖아요.

가끔씩 운동을 시키는데요, 정말 힘들게 시키실 때가 있어요. ‘가끔씩’ 시켜주시는데, 그 때가 ‘정말’ 힘들어요.

△ 좋았을 때는 언제였나요?

가끔씩 금요일 날 외박을 주실 때요.(웃음. 이상기 감독도 옆에서 듣고 있다가 웃었다.) 정말 가끔씩요.

△ 경기 얘기를 해보죠. 준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인 미국 자구니스 선수와 겨뤘는데, 한참 지고 있다가 13대 15로 역전승을 했단 말이에요. 그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고,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다 들었을 것 같은데요. 경기 시간도 길게 느껴졌을 것 같고. 어땠어요? 그 때 느낌이.

별로 생각 든 건 없고요, 그냥 3,4위전이 너무 뛰기 싫었어요. 3,4위전 뛰면 왠지 제가 4등을 할 것 같은 거예요. 세계랭킹 1,2,3위가 다 올라와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고 있어도 별로 부담이 안 됐었구요. 지더라도 그냥 포기하지 말고 악착같이 뛰자, 이런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냥 마음 편하게 뛰었던 것 같애요.

△ 승리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게 이긴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결승전에서는 어땠어요? 이것만 이기면 금메달인데.

너무 힘들게 이기고 올라가다 보니까 결승은 오히려 더 걱정을 안 했던 것 같애요. 담담하게, 더 편하게 뛰었던 것 같애요.

△ 혹시, ‘이기지 않아도 은메달은 이미 따놨는데’, 이런 생각 안 했어요?

그런 생각도 했죠. 그래서 더 편하게 뛰었던 것 같애요. 그 선수는 금메달 욕심이 있었을 거고,세계랭킹 2위다 보니까 분명 욕심이 있었을 턴데, 그런데 저는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를 이겼고, 결승까지 올라왔으니까 ‘금메달 따야겠다’ 이것 보다는 ‘결승 온 것도 잘 했는데’라고 생각하며 더 편하게 뛸 수 있었던 것 같애요.

△ 결승 이기고 나서 김지연 선수가 기뻐하는 모습이 온갖 매체에 떴어요. ‘이제 금메달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느낌은 어땠나요?

정말 믿기지가 않았구요, 제가 지금까지 국제대회에 나가 1등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더 기뻤던 것 같애요.

△ 눈물이 펑펑 났나요. 어땠어요? 심정이.

아, 내가 제일 중요한 시합에서 한 건 하는구나.(웃음) 이런 생각 들더라구요. 눈물은 안 나고, 그냥 현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 남녀 통산 두 번째 금메달, 여자 펜싱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평가가 나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여자 중에서 첫 금메달이라는 기록이 역사에 남을 거잖아요. 앞으로 그런 것이 뿌듯함으로 느껴질 것 같습니다. 

△ 미녀검객이라는 별명이 생겼는데, 솔직히 자신이 미녀라고 생각하세요?

아뇨.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는데요.

△ 신체 부위 중 어디가 제일 맘에 들어요?

코요. (기자는 눈이 더 예쁘다고 말했다.)

△ 성형했다는 말도 나왔는데요.

그런 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인터넷에 떴다고 하더라구요. 성형했다고. 눈이랑 코를 했다고. 그런 소리 처음 들어요.

△ 내가 보기에도 성형은 안 한 것 같네요. 그런데 궁금하게 있었어요. 경기할 때 화장을 하고 나가나요?

화장은 안 해요. 립스틱도 안 바르고. 땀을 흘리니까 (화장을) 할 수가 없어요. 밖에서 운동할 때는 선크림만 발라요.

△ 금메달을 땄는데, 이제는 거꾸로 ‘내가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추락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두려움도 생길 것 같은데요.

추락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앞으론 보는 눈들이 많아지니까 ‘행동을 잘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랑, 시합도 이제 무섭더라구요. 시합하면 다들 저를 이겨보려고 할 거고 저랑 시합할 때는 다른 선수들이 더 악착같이 뛸 거구요, 그런 생각 하니까 무섭기도 하지만, (추락에 대해) 두렵거나 그러진 않아요.

△ 앞으로의 계획과 각오도 좀 말해주세요.

올해 들어서 한 건도 국내 대회를 뛴 적이 없어요. 올림픽 준비한다고. 그래서 일단은 국내대회에만 충실히 하고 싶고요, 2014년도 아시안게임 그리고 2016년도 브라질 올림픽까지 나갈 생각이라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 남자친구 있어요?

아니오.

△ 가끔 남자친구 사귀고 싶지 않나요?

올림픽 끝났으니까 생길 거라 생각을 했는데요, 생길 생각을 안 하네요.(웃음)

△ 익산시민들이 김지연 선수를 많이 좋아해요. 마지막으로 시민들께 인사말씀 좀 해주세요. 

응원 많이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 계속 시합이 있으니까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항상 건강하세요.

(인터뷰가 끝난 후 김지연 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이상기 감독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담=김경선 기자·사진=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