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20층 높이.. 고도로 발달된 목조건축기술의 결정체

익산에 남아있는 백제 문화의 정수 중에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고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문화재라면 미륵사지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미륵사가 창건된 시기는 백제 무왕(600-641)대로 알려지고 있으며 근 천년동안 내려오다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인해 조선 중기에 와서 폐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사찰의 모습은 역사 속에 사라지고 근래까지 석탑만이 홀로 남아 미륵사 터를 지키고 서있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의 석탑이며 한국 석탑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미륵사지석탑이 바로 그것이다. 동양최대의 사찰(寺刹)이었던 미륵사에 걸맞게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미륵사지석탑이 천사백년 전 찬란했던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미륵사지석탑은 일부일 뿐이다. 미륵사에는 현존하는 두 개의 석탑뿐만 아니라 목탑도 자리하고 있었다. 1992년 복원된 동탑과 현재 복원중인 서탑의 가운데에 목탑이 자리해야만 미륵사를 완성시킬 수 있다. 고도로 발달된 건축술과 예술성이 집약된 미륵사지의 세 탑을 상상하면서 미륵사 터를 밟았다.

◇ 미륵사엔 탑이 세개

미륵사지석탑은 당연히 미륵사라는 사찰 마당에 세워진 탑이다. 그러나 오래전 사찰이 무너지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사람들의 기억 속엔 외로운 석탑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석탑은 반쪽을 콘크리트로 지탱하고 힘겹게 서있던 모습이어서 바라보는 이들의 아쉬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1974년 시행된 원광대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기초발굴조사팀이 미륵사지석탑 동쪽에서 다른 석탑지를 발견함에 따라 미륵사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80년부터 1996년까지 미륵사지에 대한 대규모 발굴조사를 벌여 미륵사가 동탑과 서탑 사이에 목탑을 세우고 각 탑의 북쪽에 금당(金堂:대웅전과 같이 부처를 모신 건물)을 1개씩 둔 가람배치였음을 밝혀냈다. 또한 한 쌍의 금당과 석탑에는 각기 회랑(回廊:지붕이 있는 복도)이 둘러져 있어 탑과 금당을 1개의 절로 보면 마치 3개의 절이 모여 있는 듯한 삼원식(三院式)가람 구성임을 확인했다. 이런 ‘3탑 3금당’식 사찰은 당시 전형적인 ‘1탑 1금당’식 사찰과 확연히 다를뿐더러 그 규모에서도 동양최대의 크기로 당시 백제의 미륵사상에 대한 굳은 의지를 엿보게 해준다.

현재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 가면 당시 미륵사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을 감상할 수 있는데, 대규모 사찰의 위용에 걸맞게 동서 양쪽의 석탑의 규모도 놀라울뿐더러 가운데 목탑은 그 높이와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미륵사지가 1,338만 4699㎡(약 4백만 평)의 넓은 대지에 세워진 거대 가람이지만 목탑과 동·서 석탑의 위용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을 만큼 훌륭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해체 후 복원 중인 서탑의 쌍둥이인 동탑이 1992년에 실제로 복원돼 미륵사 터를 지키고 있는데 그 늠름한 모습에 감탄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미륵사지 발굴 조사 당시의 전경. 멀리 서탑이 홀로 서있다.

◇ 미륵사의 9층 목탑

미륵사지 한 가운데 있던 목탑은 안타깝게도 남아있지 않다. 언제 어떻게 소실됐는지 남아있는 기록도 없고 구조나 모양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목탑지 조사에서 발굴된 기단석(基壇石) 한 변의 길이가 약 19m 정도인 것으로 보아 그 크기와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으며 백제의 양식이 전해진 다른 유물들을 통해 예상해 볼 수 있다. 목탑의 높이는 석탑의 두 배가 넘는 50m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아파트 20층 정도의 어마어마한 높이다.

목탑이 위치했던 자리는 그만큼의 무게를 오래도록 견딜 수 있도록 정성들여 돌을 쌓고 다진 흔적이 발굴 조사에서 드러났다. 지반이 침하되어 탑이 기울거나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탑이 세워질 땅을 깊게 파낸 후, 잘게 쪼갠 돌을 촘촘히 깔고 그 위에 흙을 다져 넣고 다시 돌을 쌓는 방식으로 몇 겹에 걸쳐 이뤄졌다. 천사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지반의 침하가 없이 단단하게 정성들여 다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목탑지 주변에선 목탑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기와조각이 다수 출토됐다. 주로 백제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기와가 주로  출토됐으며 특히 8-9세기 이후의 기와가 출토되지 않음으로써 목탑의 소실 시기를 짐작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의 기와가 목탑지 기단의 북편 쪽에서 1-1.5m정도 떨어진 곳에서 동서로 일정한 선을 이루며 출토된 사실은 목탑이 그쪽 방향으로 쓰러지면서 남긴 자취로 추정할 수 있었다.

◇ 목탑의 원형을 찾아서 - 미륵사지석탑

목탑의 모습은 전해지거나 기록된 사실이 없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미륵사지석탑(서탑)의 형상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과 신라의 황룡사 9층목탑, 일본 법륭사 오중목탑을 통해 거꾸로 되짚어 볼 수 있다. 그것은 미륵사지의 목탑 양식이 그대로 미륵사지석탑에 반영되고 신라와 일본에 전해졌다는 신빙성 있는 근거가 있다.

미륵사지석탑이 한국 석탑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것은 가장 오래됐기 때문만이 아니라 목탑 양식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륵사가 창건될 당시는 목탑에서 석탑의 시대로 변모하는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운데 목탑과 함께 두 석탑을 세우면서 목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륵사지석탑을 바라보면 재료만 화강암일 뿐 목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목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지붕돌의 곡선과 지붕돌을 이고 있는 삼단 받침 등이 바로 그것이며 석탑 내부로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목탑의 양식이다. 이런 부분이 미륵사 중원의 목탑을 모델로 하여 돌을 다듬고 깎아 석탑을 세웠다고 보는 이유다. 현존하는 미륵사지석탑이 미륵사 9층목탑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목재처럼 다듬고 깎아 대규모의 탑을 세운다는 것은 무척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당시 백제의 목조건축기술과 함께 석조건축기술 또한 상상이상의 최첨단임을 알려주고 있다. 

◇ 황룡사 9층목탑

신라의 삼보(三寶)중 하나인 황룡사 9층 목탑 역시 백제의 건축기술이 전해진 결과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은 목탑을 세우기 위해 백제의 명장 아비지(阿非知)를 비단과 보물을 보내 초청한다. 목탑을 세우기 위해 첫 기둥을 세우기 전날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고 이상하게 여긴 아비지는 탑을 짓지 않고 돌아가려 한다.

그때 기이한 일이 일어나 노승과 역사(力士)가 금당에서 나타나 기둥을 세우고 홀연히 사라진다. 놀란 아비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황룡사 9층목탑을 세우게 된다. 목탑의 높이는 장장 225척에 이르는데 환산하면 80m에 달하는 아비지 일생일대의 역작이 됐다.

황룡사 9층목탑은 그 후 고려시대에 몽골에 의해 황룡사가 불타면서 소실되기까지 웅장함을 자랑했다.

자연재해가 아닌 전쟁으로 소실됐다는 사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경주시는 세계문화엑스포를 치르면서 황룡사 9층목탑을 본뜬 모습으로 82m 높이의 경주타워를 세워 명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 2035년까지 황룡사와 9층목탑 등을 복원한다는 계획이 있다. 특히 목탑의 경우 못하나 쓰지 않고 복원한다는 계획이어서 관심이 모이고 있다. 황룡사 9층목탑에서 미륵사지 목탑의 원형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일본 나리현 법륭사 오중탑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백제인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 법륭사 오중탑

미륵사지석탑은 석탑이라는 한계가 있어 목조탑의 원형을 예상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고 황룡사지9층목탑은 역시 소실되고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미륵사에 있던 9층목탑의 원형을 유추해 보기 어렵다. 그러나 백제의 장인이 일본에 건너가 세운 목탑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면 어떨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탑인 일본의 호류사(法隆寺:법륭사) 오중탑(五重塔)이야말로 미륵사지 목탑의 모습을 가장 근접하게 유추해 볼 수 있는 근거로 남아있다.

서기 587년 일본 쇼토쿠태자(聖德太子)는 백제의 장인 금강(金剛)을 초청해 일본 최초의 사찰 사천왕사를 짓는다. 그 후 금강은 일본에 살면서 여러 사찰과 성곽 등을 짓게 되는데 법륭사 오중탑도 금강의 손으로 세워졌다. 특히 오중탑은 천사백년 전 준공된 이후 두 번에 걸쳐 약간의 수리가 됐을 뿐 여전히 완벽하게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어 백제의 가람과 탑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륵사지의 목탑과 황룡사지의 목탑이 소실된 것과 비교해 법륭사 오중탑이 남아있는 것은 지금에 와서 부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랑스러운 일도 될 것이고 백제의 목탑 양식을 직접 볼 수 있는 행운이기도 할 것이다.

◇ 즐거운 상상

황룡사 9층목탑을 세운 아비지와 불국사 석가탑을 세운 아사달, 법륭사 오중탑을 세운 금강은 모두 백제의 장인(匠人)이었다. 이는 그만큼 백제의 건축 기술이 뛰어났으며 여러 나라에 전파하여 영향을 줄만큼 백제가 선진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백제의 찬란한 유산은 제 땅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한때는 미륵사를 가득 채웠을 건물과 탑 등도 이제는 빈 공간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 빈 공간에 무엇인가 채우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미륵사 목탑지에서 9층목탑이 만드는 거대한 그림자를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