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완전 복원.. 첨단 기술과 백제인들의 혼이 살아 있는 석탑

1. 석탑 주위에 발굴된 흔적을 통해 석탑을 쌓았던 방법을 추정할 수 있었다.
2. 7층 규모로 예상만 하던 동탑 부재에서 발견된 노반석. 최상층 지붕에 놓았던 돌, 다른 지붕돌과의 비율로 층 수를 알 수 있었다. 이로 인해 9층으로 복원이 됐다. 
3~4. 동탑을 복원하기 전, 발굴 조사 모습. 돌 하나도 소중히 다뤄 진행됐다.
5. 어두웠던 지난 시간, 인고의 세월을 거쳐 다시 세워진 미륵사지동탑의 위용.

백제시대의 전형적인 가람배치 양식은 하나의 탑과 금당(부처님 모신 건물)이 있고 주변 건물들로 이뤄진 ‘1탑 1금당’식이다. 그러나 미륵사는 유일하게 세 개의 탑과 세 개의 금당이 배치된 ‘3탑 3금당’식으로 마치 세 개의 사찰이 모인 듯한 3원(院)식 구성이다. 4백만 평이 넘는 가람의 중원엔 목탑이 우뚝 솟아 있고 서원엔 익히 알고 있는 국보 11호 미륵사지 서탑이, 동원엔 서탑과 같은 모양의 동탑이 들어섰다. 순서로 보자면 사찰 건립과 함께 목탑이 제일 먼저 세워지고 서탑 동탑 순으로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동탑은 1993년 완전 복원돼 현재 미륵사지유적을 찾는 사람들에게 천사백년 전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오래전 무너진 탓에 흔적만 남아 있다가 복원된 동탑은 미륵사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탑의 해체 복원, 나아가 동양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의 복원을 발원(發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익산시민의 숙원

미륵사지 동탑의 복원에는 깊은 사연이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 경주시의 문화재 보수 및 복원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자 익산시에서도 미륵사지석탑의 복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났다. 당시 국보 11호 서탑은 200톤이 넘는 콘크리트로 발라진 채여서 흉물스럽고 붕괴위험까지 안고 있었기 때문에 복원이 시급했다. 그래서 1972년부터 일부 뜻있는 인사들이 국가에 미륵사지석탑의 복원에 대한 청원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문화재관리국의 답변은 예산과 기술적 문제로 어려우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던 중 1974년과 1975년에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미륵사지를 발굴 조사하여 동탑지를 확인하고 서탑과 동일한 규모의 석탑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 성과로 1980년부터 본격적인 미륵사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지만 석탑의 복원은 요원하기만 해 익산시의 숙원사업이 됐다. 그런 익산시민들의 염원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1988년 당선된 노태우 전대통령이 공약으로 미륵사지석탑의 복원을 약속한 것이다.

정치적 이유에서였더라도 미륵사지석탑의 복원 결정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서탑의 복원은 기술적 한계와 경험 부족 등의 문제로 복원과정에서 문화재를 훼손할 염려가 제기됐다. 그래서 차라리 거의 남아있지 않은 동탑을 복원함으로써 서탑을 해체·복원하는데 연습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모아짐에 따라 동탑의 복원으로 결정됐다. 탑의 기단부만 겨우 남아있던 동탑을 복원하면서 같은 모양인 서탑을 참고할 수 있다는 것도 동탑이 먼저 복원된 이유가 됐다. 

◇ 백제의 놀라운 석조건축기술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된 동탑은 약 2년 후 완공됐다. 화강암 석재 2700톤, 연인원 4만 5천명이 동원됐으며 총 공사비는 29억 원이 소요됐다. 높이는 탑의 상륜부(相輪部:탑의 꼭대기에 설치한 금속제 장식)까지 27m가 넘는 거대하고 웅장한 탑으로써 바라보는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하다.

복원할 땐 공사기간만 약 2년 만에 완료됐지만 처음 세워질 당시를 생각하면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하나의 무게만 해도 1톤이 넘는 석재를 사용해 이런 규모의 석탑을 세울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탑의 주변에서 찾았다. 백제인들의 놀라운 기술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다.

고인돌이나 피라미드 같은 경우 높이 올라갈수록 구조물에 닿도록 주변에 흙을 쌓아 돌을 높이 올리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미륵사지석탑의 경우엔 그렇게 흙을 쌓은 흔적이 없을뿐더러 탑의 경사가 70도가 넘고, 또한 조성 장소가 좁기 때문에 유용한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백제인들은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탑지 주변의 발굴과정에서 탑의 정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H자를 그리며 늘어선 동그란 석재 받침이 발견됐다. 그리고 석탑의 정면에서 멀리 떨어진 문지에서 세 개의 굵은 기둥이 묻혀있었고 석탑의 우측에도 하나의 나무기둥이 발견됐다. 이 기둥들은 땅을 파고 깊이 묻었는데 단단한 지지를 위해 기둥 주변을 돌로 지탱했다. 이런 구조물들을 분석한 결과 일정한 구조의 ‘거중기’같은 장치가 쓰였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단단한 석재 받침 위에 목조 구조물을 세워 축을 만들고 긴 목재를 축에 연결한 다음, 밧줄을 연결해 멀리 떨어진 기둥에서 회롱기(수평으로 기둥을 회전시켜 밧줄을 감고 푸는 기구)를 이용해 들어 올리는 것이다. 문 앞의 회롱기가 밧줄을 감아 석재를 높이 들어 올리면 우측의 회롱기는 수평 이동시켜 원하는 위치에 놓을 수 있는 크레인이 쓰인 것이다.

이런 백제시대의 첨단기술이 적용돼 미륵사지에 석탑이 세워졌다. 그럼에도 동탑까지 완공되는 데는 무왕대(600-641)에 시작해 의자왕대(641-660)에 이르는 시간이 소요됐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세워진 동탑 앞에서 천사백년 전 탑을 세웠던 석공의 혼을 뜨겁게 되새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미륵사지석탑은 9층탑

동탑의 복원은 철저한 석탑부재(석탑에 쓰인 돌)의 조사에서부터 시작됐다. 동탑지 주변에서 모두 1,200여점의 석탑부재가 발굴됐는데 이들을 조사한 결과 서탑과 거의 동일한 구조임이 밝혀졌다. 석탑 구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노반석(露盤石: 꼭대기 장식을 받치는 돌), 옥개석(屋蓋石:지붕돌), 옥신석(屋身石:탑의 몸체를 이루는 돌) 등이 출토됐는데 특히 노반석은 탑의 층수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노반석은 최상층 지붕돌 위에 놓여 상륜부를 받치는 돌인데 그 크기를 분석해 최상층 지붕돌의 크기 또한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출토된 여타 지붕돌들과의 비율을 통해 탑의 층수를 알 수 있다. 그동안 무너져 내려 6층까지 남아있던 서탑의 경우 본디 7층이었을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동탑 또한 7층 규모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탑 부재에서 노반석이 발견되어 9층으로 복원될 수 있었다.

◇ 사랑받고 싶은 동탑

미륵사지 동탑은 복원계획 당시부터 학계의 논란이 있었고 복원된 후에는 비판여론이 크게 일어났다. 문제는 석탑을 복원하는데 문화재 보존원칙과 고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안하느니만 못할 것이라는 의견과, 공사기간이 짧고 예산이 부족해 졸속으로 복원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먼저 동탑의 복원 위치에 대한 논란이다. 복원계획 당시 다수의 학자들은 동탑의 복원을 원래 있었던 위치가 아닌 별도의 곳에 복원하자는 의견을 내세웠다. 그 이유는 동탑지의 문화재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미륵사지의 성격도 그렇고 서탑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동탑을 원래 위치가 아닌 곳에 세운다는 것은 미륵사지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사학자 김삼룡 박사(전 원광대학교 총장)를 비롯한 역사학자들이 본래 위치 복원을 주장하여 그 뜻을 관철시켰다. 만약 현재 유물전시관이 있는 자리에 동탑이 들어섰다면 어땠을까. 서탑과의 높이 차이도 있을 뿐더러 한쪽으로 석탑들이 치우쳐져 미륵사지 전체의 규모나 균형 등을 해쳤을 것이다.

복원이 완료된 후 미륵사지 동탑은 졸속복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대통령 공약이라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임기 내에 완료하려고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필요 예산도 거의 반 토막 수준으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당시 동탑 복원에 필요한 예산은 약 60억 원 가량이었는데 최초 책정된 예산은 23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부족하여 추가된 후 총 29억여 원이 소요됐다.

부족한 예산으로 공사기일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없이 동탑의 복원은 석재를 기계로 깎아 사용했다.

본디 일일이 수작업으로 깎아 본래의 부드러운 모습으로 복원할 계획이었으나 기계로 깎은 탓에 날카로운 느낌이 난다. 유홍준 교수(명지대)는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2004년에 서탑의 해체보고회 자리에서 동탑에 대해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겁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리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다시 천년이 지나면

동탑을 이루는 수천 개의 석재 중 35개는 원래 사용됐던 돌이다. 동탑을 가까이에서 꼼꼼히 들여다보면 약간 색이 다른 돌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들이 바로 천사백년 전 동탑의 재료들이다. 탑이 무너져버리고 말아 흩어져 있던 돌들이 다시 태어난 석탑의 일부로 쓰여 다시 천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배우 배용준 씨가 2009년 4월 미륵사지를 다녀갔다. 그는 미륵사지석탑 앞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한 마음이 앞섰다”고 전하며 동탑에 대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받지 못하던 이 탑에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진다면, 또 다시 천년 후에 가장 사랑받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설령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복원됐다 하더라도 탑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미륵사지에 방문해 탑을 감상하며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고 돌아가기보단 천년을 이어갈 온기를 남기는 것이 나은 일일 것이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