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1호 미륵사지석탑..

2016년까지 본래 석재 그대로 보존처리해 ‘6층까지만 복원’...동탑은 9층

백제국의 서른 번째 왕위에 오른 사람은 익산시 금마면의 마룡지라는 연못가에서 태어나 마를 캐며 살던 소년 서동이었다. 재능과 도량이 헤아릴 수 없이 뛰어났다는 서동은 신라 진평왕(27대,579-632)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왕위에 오른 후, 백제의 중흥을 위해 익산경영의 기틀을 세우고 용화산(현 미륵산) 밑에 미륵사를 창건하기에 이른다. 삼국유사와 후대 기록에서도 동양최대사찰로 기록되어 있는 미륵사에는 그 규모답게 독창적이고 놀라운 탑이 세워진다. 가운데 목탑을 중심으로 동서로 들어선 웅장한 석탑은 그 양식과 기술적 면에서 한국 석탑의 시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중 천사백년의 역사 속에서 사찰이 사라지고 터만 남은 가운데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탑이 국보 11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서탑은 그동안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남아있는 소중한 유산으로 기억됨과 동시에 일제강점기의 아픈 상처를 상징하기도 했다. 탑의 절반이 시멘트로 발라진 충격적인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현재는 해체되어 보수·복원 중으로 2016년엔 시멘트를 벗은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고도 익산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질곡의 묵은 때를 벗고 어떤 모습으로 다시 서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최초이자 최대의 석탑

미륵사지 서탑의 나이는 몇 살일까. 그동안 서탑은 미륵사 창건과 함께 무왕대(600-641)에 세워졌을 것으로 막연히 추정되고 있었으나 2009년 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장엄구 봉안기(奉安記)가 발견되며 기해년(己亥年, 서기639년)이라는 정확한 건축연대가 확인됐다. 이는 삼국유사의 미륵사창건연기설화에 밑바탕을 둔 무왕의 미륵사 창건에 신뢰성을 더해주는 역사적인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탑의 나이가 1374살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으나 탑 건축과정 자체가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이었으므로 이견이 있기도 하다.

미륵사지의 서탑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고 독창적인 석탑이다. 동 시대 중국의 경우 목재에서 석재 탑으로 변모하는 가운데 주로 전탑(벽돌을 쌓아 세운 탑) 양식이 쓰인데 반해 백제는 목탑의 양식을 그대로 석탑에 반영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던 것이다. 석재라는 특성상 가공이 어려운데다 그 무게 때문에 큰 규모의 석탑을 세우기도 어려운데, 목재 탑의 아름다움까지 담는다는 것은 당시대에 있어서 가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지붕돌의 곡선미를 비롯해 전체적인 조화와 안정감을 이루는 서탑의 조형미는 이보다 뒤진 시대의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초의 시도이자 후대 석탑 조형의 모델이 됐다.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질 좋고 석재가 풍부한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돌을 다듬고 쌓는 기술이 축적되었던 결과로 보인다. 목조탑 역시 신라와 일본 등지에 전파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났던 백제는 석재를 이용한 탑의 축조 기술 역시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639년 미륵사의 서쪽 편에 들어선 탑이 석탑의 나라 한국을 만든 획기적인 이정표가 되었던 것이다.     

◇ 전쟁과 벼락을 이겨내고 남아

백제의 강성과 미륵사상을 기원하며 639년 세워진 서탑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을까?

삼국사기에 나타난 기록으로 살펴보면 신라 무열왕(김춘추, 654-661재위)이 661년 금마군을 점령할 당시 “6월에 대관사 우물이 피로 물들었고, 금마군 땅에는 5보 넓이로 피가 흘렀다”라는 기록이 있다. 짧은 기록이지만 그 당시 미륵사 주변에 대대적인 파괴와 살상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 후 문무왕(661-681재위)대에는 고규려 유민 안승에게 금마저(현재 금마면)를 거처로 제공했고(보덕국) 후에 신문왕 4년(684년) 안승의 친족인 대문(大文)이 모반을 일으키자 처형하고 성을 무너뜨리고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을 겪으며 미륵사를 비롯해 서탑에도 적잖은 훼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이어서 성덕왕 18년(730년)에 ‘가을 9월 금마 미륵사에 벼락(震)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현대에 와서 해석하기로는 벼락과 지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922년 미륵사탑을 개탑(開塔)했다는 기록이 혜거국사(惠居國師, 고려전기 승려)의 비문에 남아 전해지고 있는데 이때 이미 손상된 탑을 보수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양곡집(陽谷集, 문관 소세양이 쓴 문집)에서 서탑의 거대한 규모를 언급했으나 훼손에 대한 기록은 없어 이때까지 건재하게 남아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후 18세기 영조(英祖) 때의 문인 강후진이 쓴  와유록(臥遊錄)이라는 명승고적 감상문에 “미륵산 서쪽 기슭에 옛 미륵사 터가 있다. …밭두렁 가운데 대단히 크고 높은 7층 석탑이 있다. … 세간에서 동방 석탑 중 최고라 이름은 헛소리가 아니다. 100년 전에 벼락이 떨어져 그 절반이 허물어졌다…”라고 미륵사지와 석탑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그러니까 17세기 이전에 이미 서탑의 2차 붕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 1915년 일제강점기에 시멘트로 보수되고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몇 번의 전쟁과 자연재해 및 훼손을 거치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서탑은 2016년까지 복원될 예정이다.

◇ 시멘트 옷을 벗겨내고

미륵사지석탑의 해체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당시 서탑과 같은 규모의 문화재를 해체해본 경험도 없을뿐더러 훼손 가능성이 커서 누구도 엄두를 못내는 상황이었다.

미륵사지 발굴조사와 함께 1992년 미륵사지 동탑이 복원된 후, 석탑의 안전성 문제와 해체조사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어 1998년 정밀 구조안전진단을 실시하고 다음해 몇차례 심의를 통해 해체보수가 결정됐다. 그 후 가설 덧집 설치 등 준비작업을 거쳐 2002년부터 본격적인 해체에 들어가게 된다.

석탑의 해체는 최신 설비가 동원되어 과학적인 고증과 함께 진행됐다. 남아있는 6층까지 비계(飛階, 높은 곳에서 공사할 수 있도록 설치한 임시 가설물)를 설치해 구조 안정성을 더한 다음 최상층부터 신중하게 해체와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멘트로 보강된 부분이었다. 시멘트로 보강된 부분은 일일이 정(丁)으로 떨어내는 수고를 들였다. 기계를 사용할 경우 탑 부재에 충격이 가해져 손상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층별로 하나씩 신중하게 돌을 들어내고 시멘트를 떨어내는 과정만 10년이 걸린 대 작업이었다. 본디 2007년까지 해체와 복원을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계속해서 미뤄져 현재는 기단부 까지 해체가 완료된 상태로 2016년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옛 모습을 간직한 모습으로

그렇다면 서탑은 어떤 모습으로 복원될까. 현재까지 논의된 바로는 2016년까지 원래 남아있던 6층 모습대로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9층의 완형 복원을 원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만약 9층으로 복원할 경우 3분의 2이상의 신 석재가 들어가야 함에 따라 미(美)적 가치를 손상시킬 염려도 있을뿐더러 새 부재와 구 부재의 강도 차이가 현저함에 따라 이들을 섞어 세운다 해도 구 부재에 압력이 가해져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탑이 가지고 있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함을 원칙으로 하고 후대에 전해 완전복원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2016년 복원된 후의 미륵사지 서탑의 모습을 그리면 이렇다.

원래 사용됐던 돌들을 그대로 사용해 다시 쌓되 파손된 석재는 접착제를 사용해 붙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옛 돌을 사용한다. 그리고 탑의 서측면의 무너진 부분은 시멘트를 걷어냈으므로 주변에서 출토된 옛 석재들을 사용해 성벽을 쌓듯 계단식으로 처리하여 최대한 예스러움을 살리고 어색하지 않도록 만들 계획이다. 아쉽게도 일단은 동측면의 아름다움만이 다시 선을 보이고 서측면의 모양은 피라미드 같은 모습으로 복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 석탑의 나라 한국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면 한국은 석탑의 나라로 불리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석조 예술과 문화가 발달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한국 석탑의 시원인 미륵사지석탑은 익산시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고도(古都) 익산을 상징하고 있다. 백제역사의 풍부한 문화재 가운데 그 대표의 위치에 있으며 석조 문화를 이끈 기술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미륵사지 석탑을 시작으로 신라와 그 후대에 까지 이어진 한국 석탑의 아름다움은 경이롭다. 목탑의 유려한 곡선의 미를 살리고 석재가 가지는 장점을 살린 서탑은 우리나라의 석탑의 시원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 최대의 탑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데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고 있다. 동탑 복원에서 얻은 경험과 현재 기술로도 완형 복원이 어렵다는 것은 아쉽지만 이대로 보존해 후대에 전해진다면 언젠가는 완전한 복원이 가능할 것이다. 서탑이 꿋꿋이 버텨 지금에 전해진 것처럼 소중히 보존해 미래에 전해주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