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과 미륵사 서까래에 빛나던 기와.. 화려함과 실용성을 갖춘 백제의 미(美)

궁궐 건축물 중 유일하게 청기와를 덮고 있는 창덕궁 선정전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정부의 상징이기도 한 청와대의 푸른 기와는 보통 기와와 달리 도자기를 굽듯이 만들어졌다.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리고 보는 위치에 따라 약간씩 색이 달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완공되기까지 총 15만장 가량이 들어간 청와대의 기와는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장인(匠人)에 의해 특별히 만들어졌으며, 100년이 넘도록 푸른빛을 잃지 않는 내구성을 자랑한다. 예로부터 중요한 건물이나 왕의 집무실에만 특별히 청기와를 얹어 아름다움과 위엄을 자랑했던 전통을 청와대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통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지에서 발굴된 녹유연목와(綠釉椽木瓦: 녹색 빛의 유약을 바른 서까래 기와)에서 청기와의 시원(始原)을 찾을 수 있다. 천사백년 전의 익산에서 푸른빛을 내며 반짝이는 지붕을 얹은 아름다운 백제의 건축물을 만나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백제 무왕(武王)이 익산에 세운 궁궐과 미륵사 전각(殿閣)들에 청기와가 쓰였다는 것은 강성한 백제의 국력과 수준 높은 기술력을 동시에 나타낸다. 유리가 사리병(舍利甁)과 장신구 등을 만들 때나 쓰이는 귀한 재료였으며 금보다 더 대접을 받던 당시를 생각하면 상상 이상으로 발달하고 화려했던 백제의 건축문화를 깨닫게 된다.

◇ 기와에 유리를 바르다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에서 다수의 기와들이 출토됐다. 당시 건축 양식을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로, 그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물이 있다. 푸른빛이 감도는 기와인 ‘녹유연목와’가 그것인데, 그 아름다운 문양과 유리를 바른 기법은 고도(古都) 익산에서 꽃피운 백제 건축문화의 정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녹유(綠釉)는 도자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녹색 빛의 유약(釉藥)이나 그 기법을 뜻하고 연목와(椽木瓦)는 처마를 받치는 목재의 끝부분을 막아 부식을 예방하는 서까래기와를 말한다. 

무왕(武王)의 특별 지시라도 있었을까. 건물 처마의 서까래를 막는 기와에 금보다 귀했던 유리를 바른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무왕대에 이르러 백제의 국력이 강성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 당시에 이미 유리를 다루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음을 시사해주기도 한다. 전문적인 공방을 두고 공예품들을 제작하게 했던 흔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백제시대 전각들의 지붕에 푸른빛의 기와가 일부분이라도 쓰였다는 것은 오늘날 청와대로 이어진 전통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왕(武王)의 익산경영 핵심인 왕궁리유적과 동양최대 사찰 미륵사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곳에서 출토된 녹유연목와가 고스란히 그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다.

왕궁리유적(위)과 미륵사지(아래)에서 유리를 제조했던 도구인 도가니가 출토됐다.

공방터에서 유리조각과 구슬, 유리제조 재료가 나왔다.

◇ 녹유기와 만들기

녹유는 보통의 유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토기의 표면에 유리질 막을 입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유리막을 형성하는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만들면 유리가 되는 것이므로 유리공예와 뗄 수 없는 관계다.

녹유의 제조는 잿물이나 규산(硅酸), 납을 첨가한 후 주로 동(銅)을 섞어 사용하는데 동이 산화하면 비취색과 비슷한 푸른색을 띠게 된다. 비교적 낮은 온도인 섭씨 7백-8백도에서 구워지므로 높은 온도를 내기 힘든 당시에 주로 사용됐다가, 고려시대에 이르러 섭씨 1천 2백도가 넘는 온도에서 구워지는 청자가 발달하면서 자취를 감춘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찻잔이나 그릇 공예에 녹유가 이용되기도 한다.

녹유연목와는 정확한 제작 기법이 밝혀진 바 없지만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 아니라 도가니에서 녹은 유리를 긁어 기와에 바르는 기법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에는 공방 터가 남아 있다. 이들 공방에서 백제의 장인들은 궁궐과 사찰에서 필요한 공예품이나 기와 따위를 전문적으로 만들었다. 금붙이나 유리구슬 같은 장신구류를 직접 제작했다는 증거로 도가니와 유리제품들이 다량 출토됐다.

특히 유리를 제조했던 도가니가 왕궁리유적 공방 터에서 다수 출토됐고 미륵사지에서도 같은 종류의 도가니가 발굴됐는데 이는 왕궁의 공방에서 유리를 만들던 장인을 미륵사 창건에 동원한 게 아닐까 싶게 만든다. 익산에 천도한 무왕이 선화공주의 청에 의해 미륵사를 창건하며 궁중에 있던 공방의 장인들을 동원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미륵사 출토 유리도가니와 왕궁리유적 출토 유리도가니에 남아있는 흔적이 동일한 재료로 쓰였다는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 백제의 예술혼이 집적된 기와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녹유연목와는 7엽(葉)의 연화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완전한 형태로 출토되어 그 의미가 크다. 표면에는 녹유가 발라져 있는데 녹유의 두께와 굽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을 보이고 있어 다채롭기까지 하며 백제의 미(美)를 한 장의 기와에 담은 듯 아름답다.

7엽의 연꽃무늬는 너비 5cm, 길이 3cm 정도로 길이에 비해 폭이 넓어 포근한 느낌을 주며 적당히 도톰하게 도드라져 볼륨감이 살아있다. 연꽃 중앙에는 5엽으로 된 인동문(忍冬文)을 장식하였는데 가운데 잎을 중심으로 좌우 2개씩 잎을 배치했다. 사찰에 쓰였던 기와인 만큼 백제의 불교문화를 반영해 연꽃무늬를 많이 사용했다.

중앙에는 가로세로 1.2cm정도의 네모난 못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구멍은 기와를 서까래 목재에 부착하는데 쓰인다. 구멍의 주위에는 7개의 연밥이 둥글게 둘러서 있는 모양으로 장식성을 높였다.

미륵사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녹유연목와.

◇ 녹유기와는 백제에서 신라로

우리나라에 유리와 기와가 전래한 시기는 언제쯤일까?

고대 동양건축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인 기와의 기원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중국 문헌인 고사고(古史考)에 “하나라 때 곤오씨가 기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기원전 1,600년 이전부터 기와가 쓰였음을 추정하고 있다. 이후 한(漢)대에 이르러 널리 기와가 쓰이게 되는데 우리나라에도 1세기에 이르러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유리 또한 언제부터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단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최초로 사용했으며 그 후 발달을 거듭한 유리 제작기술이 로마제국 시대에 이르러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전해지고 역시 한(漢)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비슷한 시기에 전해진 기와와 유리는 3세기 말 이후로 한국적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삼국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한국형 기와와 유리공예가 발달한 것인데 그 선두에 백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청기와는 추위와 습기에 강했으나 사치품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일찍이 해상왕국으로 중국의 남북조(南北朝)를 비롯해 서역(西域)까지 교역을 넓힌 백제는 문물을 교류하면서 독창적인 문화와 기술의 진보를 이뤘다. 그러한 백제의 선진 문물이 신라와 일본에 영향을 줬는데 녹유기와와 유리공예기술 역시 전승된다.

신라의 고분군에는 서역에서 수입된 유리제품 외에 녹유로 된 벽돌, 기와, 치미(처마끝 장식) 등이 다수 출토되어 한동안 우리나라 고대 유리문화의 중심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이는 백제의 유리 문물을 받아들여 전승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반짝이는 처마 끝을 바라보며

백제의 녹유기와는 신라에 전해져 여러 가지 형태로 응용되고 발전되어 명맥을 이어가다 고려시대에 청자기술의 발전으로 자취를 감춘다. 청자는 중국 송(宋)나라의 영향을 받았다곤 하나 그 독창적인 색감과 아름다움은 백제의 녹유기술에서부터 이어진 오랜 경험이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궁중 중요 건물에 청기와가 쓰였다. 주로 임진왜란 이전에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광해군이 인경궁을 창건하면서 청기와를 얹은 것을 제외하고는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인해 사용되지 않았다.

성종대왕실록에는 정창손(조선전기의 문신)의 아들 정괄(鄭适)이 임금에게 “경복궁의 근정문, 홍례문, 광화문에 청기와를 덮기 위해 백성을 시켜 구워 만들게 하니 그 공력이 갑절 내지 다섯 갑절이나 듭니다. 임금은 마땅히 검소한 행실과 덕을 숭상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정사(政事)에 있어서겠습니까”라고 말한 기록이 나온다. 그 후 성종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모른다. 다만 현존하는 궁궐 건축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창덕궁의 선정전이 청기와를 덮고 남아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