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과 사랑한 선화공주는 실존했나’ 아직도 수수께끼

익산시 금마면·왕궁면 지역은 상고시대와 고대 마한, 백제의 흥망에 이르기까지 짙은 자취를 남겼기 때문에 늘 역사 연구의 수수께끼가 되어 왔다.

특히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미륵사를 누가 언제 왜 세웠느냐를 놓고, 고대 문헌이 부족한 가운데 추측성 연구결과가 너무 많이 나오고, 저마다 다른 주장을 하는 탓에 아직도 정리된 것이 없다.

다만 2009년 미륵사 서탑西塔 해체과정에서 나온 ‘사리장엄봉안기’로 인해 어느 정도 의문이 풀렸다. 그러나 이로 인해 ‘무왕의 비인 선화공주의 뜻에 따라 지었다’는 삼국유사의 서동선화 설화가 허무맹랑한 것이 됐기 때문에 설화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주장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고대 문헌에 대한 정리와 발간사업을 서둘러야 하고, 아울러 유물 발굴 및 고증작업을 더 활발히 펼쳐야 하는 과제를 후손들은 안고 있는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대 정권에서 제대로 된 역사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떨치기 힘들고, 오히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일제강점기 때보다 덜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미 옛 기억을 잃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양마을의 미륵사지 터를 보면서 이곳에 최초의 왕국이라고 할 만한 나라를 세운 마한의 기준왕 때부터의 자취를 순차적으로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을 구하고 대신 불에 타 죽은 ‘의견(義犬)’을 기리는 비석.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있다.

◇ 주인 구한 개, 금으로 만든 고양이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는 미륵사 터(미륵사지)가 있는 곳이다. 기양리에는 네 개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미륵사 터와 가장 가까운 마을이 노상路上마을이다.

주민들은 마을이 큰 길 옆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그 길은 금마면 소재지에서 노상마을과 미륵사 터를 거쳐 삼기·황등면까지 이어지는 2차선 도로다. 옛날부터 길이 나 있었다고 한다.

미륵사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전설만 내려온다. 탑에 신이 있어서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탑지검’이라고 하는데 ‘탑 지킴이’, 즉 탑을 지키는 신이 있어서 사람을 보호한다.

옛날에는 탑 지붕(옥개석)에서 사람들이 쉬기도 하고 자기도 했다. 자다가 떨어진 사람도 많았는데,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미륵사 터와 관련한 전설은 이것뿐이고, 다만 개와 쥐, 고양이에 대한 전설이 남아 있는 점이 특이하다.

주인을 살리고 죽은 개 이야기는 임실군 오수의견義犬과 똑 같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어느 날 마을 노인이 주막에서 술을 먹고 걸어오다가 마을 우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저앉아 담배를 물고 잠이 들었는데, 그사이 담뱃불이 번져 불이 났다고 한다. 그 때 주인을 따라왔던 개가 우물에서 꼬리에 물을 묻혀 불을 끄고 죽었다.

노인이 깨서 보니, 자기는 멀쩡한데 개는 옆에서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개를 묻어주고 비석을 세웠다. 이후 사람들은 이곳을 ‘갱이 모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비석은 현재 음습한 곳에 내버려져 있을 뿐이며, 글씨를 써놓은 흔적은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임실군 오수의견도 노상마을과 똑 같은 이야기인데, 오수의견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매년 ‘오수의견문화제’까지 개최하는 모습을 보면 이곳과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다.

노상마을에는 또 특이한 전설 하나가 전해오고 있다.

미륵사 서쪽 산기슭에 ‘괭이 모퉁이’(굉이 모퉁이)라는 곳이 있는데 미륵사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다.

미륵사가 워낙 크다 보니 스님들도 많고 큰스님들도 많았는데, 큰 스님들이 권세가 아주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간에는 스님들이 원래는 쥐였는데, 쥐가 환생해 스님이 돼서 권세를 부리고 있기 때문에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이곳에 금고양이(쇠로 만든 고양이)를 묻었다는 것이다. 쥐는 고양이 앞에서 꼼짝을 못하니 쇠나 금으로 고양이를 만들어 스님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묻었다는 것인데, 그 이후 미륵사가 망했다.

일제강점기 때 금고양이를 캐려고 ‘괭이 모퉁이’를 팠는데 그곳에서 숯이 나왔으며, 계속 파들어 가자 갑자기 벼락이 쳐서 그만뒀다고 했다.

아마도 개 비석이 있는 장소인 ‘갱이 모퉁이’는 금고양이를 묻은 ‘괭이 모퉁이’를 잘못 부른 것으로 보인다.

또 스님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한 전설은 노상마을이 옛날 미륵사에 딸린 소작지였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찰의 재산은 삼국시대부터 크게 늘어나 특히 고려 때 더욱 확장됐고 절이 갖고 있는 농지가 매우 넓어 농사를 짓는 천민들을 따로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말에는 절 소유지가 늘어나 전국 토지의 6분의1을 차지, 국가 재정이 위태로울 지경이어서 유학자들은 불교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스님을 쥐로 표현한 것은 정부 재정과 백성들의 창고에 있어야 할 식량을 좀 먹는다는 의미의 적대적 감정이 표현된 것이고, 금 고양이를 묻은 후 절이 망했다는 것은 미륵사가 없어진 이후에도 적대감은 계속 남아 있었던 결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이런 적대감은 불교를 싫어하고 억압했던 조선 사대부들의 심리도 반영됐을 것이다.

불교를 비난하면서 절을 없앴던 사대부들은 나중에 양반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서원을 너무 많이 세운 나머지 흥선대원군 때 대대적인 철폐가 이뤄진다.

◇ 설화는 가고, 정사만 남아

그동안 학계에서는 미륵사를 누가 언제 왜 지었는지 몹시도 궁금해 했다.

왜냐면, 고려 중기 일연(1206~1289) 선사가 서기 1,285년 79세 때 지은 삼국유사의 기록 때문이다.

여기에는 백제 30대 왕인 ‘무왕’이 왕비였던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의 뜻에 따라 미륵사를 세웠다는 전설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황당한 것이라 학계에서는 설화로서만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한편으로는 어차피 기록이 이것밖에는 없고, 설화에 나오는 장소들이 익산시 금마면 지역에 있으니 사실일 수 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무왕이 서기 600년대의 인물이었으니, 일연선사가 책을 쓴 시기는 무려 600년이나 흐른 뒤였다. 때문에 내용이 설화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무왕을 설명한 대목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무왕은 어렸을 때 마를 캐서 팔아 생계를 꾸려갔기 때문에 서동薯童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백제의) 서울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던 과부였는데, 연못의 용과 관계를 맺어 서동을 낳았다고 했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서울(백제의 서울인지, 신라의 서울인지는 기록하지 않았다.)로 올라가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며 노래를 따라 부르게 했다. 이게 대표적인 향가로 꼽히는 ‘서동요’인데, 선화공주가 밤만 되면 남몰래 서동을 만나 안고 잔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가 (신라) 왕궁에까지 퍼져 공주가 귀양을 가게 됐는데, 도중에 서동이 나와 절을 올리며 모시고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서동을 몰랐지만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것을 기뻐해 서동을 따라가다가 정을 통했다. 백제에 온 선화공주는 어머니가 싸준 금 한 말로 살림살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서동이 웃으면서 이게 뭐냐고 물었고, 공주는 이게 황금이라는 것인데 이것으로 백년해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서동이 웃으며 ‘이것은 내가 마를 캐던 곳에 진흙처럼 쌓여있다’고 말했고, 공주는 즉시 금을 신라왕궁으로 보내자고 했다.

금을 캔 부부는 언덕에 쌓아놓고 용화산(지금의 미륵산) 사자사라는 절에 있는 지명법사에게 어떻게 옮길 것인가를 물어봤는데, 법사는 금을 신통력으로 보내주겠다고 장담했고, 공주는 사연을 적은 편지와 함께 황금을 사자사 앞에 갖다 놨는데, 정말 하룻밤 사이에 궁중으로 보내졌다. 그러자 진평왕은 지명법사를 더욱 존경하게 됐고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이에 서동이 민심을 얻어 왕에 올랐다.                                              

 김경선 기자       

노상마을의 미륵사지 전경. 우측에 보이는 것이 동탑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