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왕바위, 항복돌, 맞은 돌 등 마한의 전설 고스란히 간직

마을 이름, 장수와 풍요의 상징인 거북이와 풍수설 연계된 듯

익산시 금마면은 지난날 마한의 중심지였다.

청동기 시대 이곳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조선 때 중국 은나라 출신 기자라는 사람이 들어와 기자조선을 세우고 마지막왕인 기준이 기원전 194년 기자조선을 침략해 정권을 얻은 위만에게 쫓겨 수천 명을 데리고 원래 마한 땅이었던 이곳 금마에 정착해 성(기준성)을 쌓고 다스리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망했고, 이후 마한지역의 맹주역할을 했다는 목지국의 도읍지였다는 설이 있다. 백제 때는 금마저로 불리며 무왕이 미륵사지를 세우고 천도를 계획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때는 보덕국과 금마군으로, 고려 때는 금마군과 익주로 불리다 조선 때는 익산군으로 바뀌었다.

현재 원광대학교 산학협력단과 대안문화연구소는 익산 각 읍면을 순회하며 옛 역사에 대해 구술을 받는 '구술사 정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는 금마면의 주요 마을들을 돌며 주민들의 얘기를 들었는데, 본지 기자가 동행해 취재했다.  <편집자 주>

구룡마을 전설을 들려주는 이우선(84)씨.

◇ 독 짓는 마을

미륵산 뒷자락에 있는 금마면 신용리 구룡마을은 과거 준왕이 쌓았다는 기준성이 있어 학계의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조선 후기 구룡(九龍·龜龍)마을에 처음으로 지금의 생활터전을 닦은 전주이씨 후손 이우선(84)씨는 이곳에 태어나서 자랐다.

전주 이(李) 씨였지만, 집안에서는 독진 이 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 영화촬영 장소로 유명한 대나무 숲에 집을 지어 이 마을에 처음 정착했다. 이후 홍주 홍씨가 들어와 마을 주변 상당수의 땅을 차지했다.

이우선씨는 독진 이 씨라는 말을 선대로부터 듣기만 했을 뿐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냥 어르신들이 들려준 풍월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마을 상단 왼쪽에 ‘독점리’, ‘독정이’라는 지명이 있고 이곳에서 가마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옹기나 그릇을 구웠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독점’이란 말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독진이씨는 ‘독을 짓는 곳이 있는’ 지역의 이씨, 또는 ‘독점리의 이씨'나 '옹기를 구어 생계를 이어갔던 이씨' 정도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결혼해 이곳으로 이주해온 소순주(75)씨. 이곳에는 원래 돌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곳에 독이 많아, 즉 돌이 많아 독점리라고 불렀다고 말한다.

‘독’은 ‘돌’의 사투리다. 때문에 '독점리'리는 돌이 많은 지역이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원광대 대안문화연구소 연구원들이 금마면 구룡마을 모정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마을 이름 유래 논란

구룡마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문제는 마을 이름이다.

이우선씨는 마을 뒷산(미륵산) 바위에 ‘구룡동천’(龜龍洞天)이라고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대적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아홉구(九)자를 쓴 구룡(九龍)마을이 됐다. 이는 마을 뒤에 깊게 파인 구렁이 많아 국골 즉 구곡(九曲)이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2006년 익산문화원에서 펴낸 ‘익산향토지’에는 구렁을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구룡이 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명칭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구곡’의 아홉 구(九) 자과 바위에 새겨진 구룡의 용(龍)자를 섞어서 구룡(九龍)으로 기록했을 수도 있고, 단순히 표기를 잘못해 아홉 구자를 썼을 가능성도 있다.

소순주(75)씨는 이곳에 원래 돌이 많고 ‘구렁이’가 많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구렁이를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구룡(龜龍)이라고 썼을 수 있다. 구렁이는 돌이 많고 습한 곳에 많이 산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에 용이라는 말을 많이 붙이는데, 지렁이를 토룡(土龍)이라고도 하며, 뱀이 오래 묵으면 용으로 승천한다는 말도 있다. 

또 다른 추측도 가능하다. 마을 뒤에는 원래 아홉 개의 신비한 돌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뜬바위, 말바위, 황새바위, 도깨비 바위, 거북이 바위 등 아홉 개의 보기 좋은 바위가 산에 흩어져 있었는데, 석산을 개발할 때 팔았다.

뒷산은 이 씨 종중의 땅이었는데, 이선우씨는 "71년도 석산 개발할 때 돌을 많이 깨먹었다. 내가 ‘뜬 바위’만은 깨서는 안 된다고 해서 손을 못 대게 했다. 그때는 먹고살기 위해 돌을 깨 부셨는데, 지금은 후회한다. 그러지 않았어도 그때보다는 지금 더 낫게 살 수 있었을 턴데 하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참고할 때 아홉 개의 신성한 바위를 용(龍)으로 표현하고, 그 중에서 장수, 건강, 부귀영화, 복을 의미하는 ‘거북이 바위’를 상징으로 삼아 거북 구(龜) 자를 써서 '구룡동천’(龜龍洞天)이라는 말이 나왔을 가능성을 제기해본다.

아울러 풍수지리설에서는 나쁜 기운을 거북이가 막아준다고 했고, 고려 말 조선 초에 급속히 퍼지기 시작한 감여사상(풍수설)이 합쳐져 나쁜 기운을 없애고 복을 비는 목적으로 ‘구룡동천’(龜龍洞天)이라는 표현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

◇ 항복바위, 기준왕이 항복한 자리

이번 구술사 정리사업에서 새로 확인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연나라 위만이 고조선을 침략했을때 쫓겨온 기준왕에 관한 것이다.

기자조선설의 주인공인 기자의 41대손인 기준은 위만 왕에게 쫓겨 금마로 왔다고 하는데, 미륵산(옛 이름 용화산) 주변에 성을 쌓고 마한땅의 부족연명체를 아우르며 스스로를 한왕(韓王)이라고 부르면서 이곳을 다스리고 있었다.

기준왕은 산성을 쌓을 때 미륵산 자락 장군봉 밑 바위가 있는 곳은 비워놓았는데, 적들이 이곳을 통해 쳐들어와 싸움에서 졌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고 이우선 씨는 말했다. 

이 씨는 또 현재 물이 차 있는 금마저수지 안에 ‘준암바위’가 있고, ‘항복바위’ 또는 ‘항복돌’, ‘맞은 바위’ 또는 ‘맞은 돌’도 있다고 말했다.

준암바위는 준왕바위로 해석되고 항복바위는 여기서 준왕이 항복했다 해서 그렇게 불렀고, 맞은 바위는 이곳에서 준왕의 군사들이 붙잡혀 얻어맞고 주리를 틀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또 산성 주변에는 ‘징골’과 ‘망실’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군사들이 징을 쳤다고 해서 징골, 망을 봤다고 해서 망실이라고도 부르고, 이곳에 깃대를 꽃아다고 해서 ‘기꽂은 골’로 불린다고 했다.

사서에는 준왕이 죽은 후 후손이 끊겼다고 되어 있는데, 마을 주민들은 준왕이 적들에게 사로잡혀 항복했고, 그의 군사들이 이곳에서 맞아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준왕과 준왕을 위시한 집단의 흥망성쇠는 사서에도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말이 사실인지, 나중에 지어낸 말인지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 뜬 바위 밑에 있는 돌

이우선씨가 지켜낸 ‘뜬 바위’ 또는 ‘뜬 돌’ 바위 아래에는 작은 바위가 또 하나 있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바위 밑에 '은 복죽께'(은으로 만든 밥그릇 뚜껑)가 있었다고 해서 어떤 사람이 그걸 캐내기 위해 맑은 날 바위 밑을 팠는데, 갑자기 바위에 벼락이 내리치면서 돌 일부가 떨어져 나와 박힌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이곳의 바위들을 쪼개고 캐내는 과정에서 흙에 묻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뜬 바위를 가 보면, 아랫돌과 윗돌만 드러나 있다. 바위 아래쪽을 탐사해 주민이 말한 또 다른 돌이 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은 자치단체가 할 일이다.   

◇ 계룡산 맥 있는 미륵산

미륵산의 옛 지명은 용화산인데, 왜 미륵산으로 바뀌었느냐고 물었더니 마을 주민 정봉수(71)씨는 계룡산에서 큰물이 져 산이 떠내려 오다 도중에 용화산 옆으로 밀어부쳐 생긴산이기 때문에 미륵산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미륵산은 산이 적은데도 바위가 많아 악산(惡山)이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미륵산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있는데, 미륵산 산신령이 아닌 용화산(미륵산 왼쪽에 있는 산 이름) 산신령에게 제를 지낸다.

따라서 미륵산은 현대 들어 미륵사지가 유명해지면서 미륵사가 있었던 산이라고 해서 미륵산으로 바뀐 것은 아닌지 추측해볼 뿐이다.

주민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공식기록에는 없는 새로운 것들을 다소 얻을 수 있었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