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의 꼬리 깃털 모습의 장식기와.. 화재를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와 건물 격식 높여

동양 최대 사찰 미륵사의 찬란함은 지붕 위에 섬세하게 조각된 치미 장식으로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동양 최대 사찰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백제의 미륵사. 고도 익산의 상징적 문화재로 자리매김한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으면서도 가장 큰 석탑으로 미륵사 가람의 웅장한 위용을 대변하고 있다. 그 밖에도 사역(寺域)만 1천3백만 평방미터가 넘는 미륵사지에는 당간지주(幢竿支柱)와 함께 각종 건물터가 조사돼 천사백년 전의 사찰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석탑과 당간지주 말고는 거의 터만 남아있는 미륵사지에서 거대가람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느껴보게끔 만드는 유물은 따로 있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용마루 장식기와인 치미가 바로 그것이다. 미륵사지 현장의 각종 주춧돌에서 건물의 기초를 바라본다면 출토된 각종 기와는 건물 전체의 아름다움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녹유연목와(綠釉椽木瓦)를 비롯한 각종 기와들 중 단연 시선을 끄는 치미는 미륵사 가람을 완성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닐까 싶다. 천사백년 전의 미륵사 지붕 위 용마루 끝에서 날개를 펴고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었을 치미에서 사라져버린 가람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고 이를 통해 백제인 들이 무엇을 기원했는지 알아보았다. 

◇ 지붕 위의 조각 작품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 들어서면 미륵사가람모형을 지나 전시실에서 맨 처음 만나는 유물이 바로 치미다. 대형 조각 작품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치미는 일단 딱 봐서는 기와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크기만 해도 높이 99cm 길이 86cm로 기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와라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일단 놀라게 되고 치미가 얹힌 지붕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만큼 거대하고 화려했던 미륵사지 가람을 가늠할 수 있다. 지붕 위 용마루 끝을 장식한 기와가 이렇게 크다면 그 전체 건물의 위용은 어떠했을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크기에 놀라고 난 다음은 치미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에서 감동을 느낀다. 곡선을 그리며 둥글게 말려 올라가면서 여러 깃털이 겹쳐진 모습으로 선과 굴곡으로 수려하게 장식된 치미는 새의 꼬리 깃 모양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기와가 아니라 백제의 단아하면서도 화려함이 묻어나는 예술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미륵사를 창건하면서 지붕에 녹색유리를 바른 기와를 썼던 백제인 들은 용마루 끝에 화려한 조각 작품을 얹어 아름다움을 더했던 것이다. 

◇ 조립식 대형기와

치미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 목조건축물 지붕의 용마루 양 끝에 놓이는 일종의 장식기와를 칭한다. 유심히 옛 건축물을 보았던 이들은 단번에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지만 지붕 위 장식물이라 자세히 바라보지 않는다면 지나치기 쉬울 수 있다. 지붕 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을 당시에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작아 보이지만 지상에서 치미만을 따로 놓고 보면 거대한 크기에 먼저 놀라고 화려한 문양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다.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치미는 부여의 서복사지에서 출토된 치미에 이어 거의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백제시기의 치미다. 이 치미는 미륵사지 동원 승방(僧房)지 발굴과정에서 출토됐는데 상단과 하단이 분리된 채로 발견돼 지붕 위에서 떨어지면서 상부와 하부가 분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복원된 치미를 보면 제작 당시부터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일단 그 크기가 크기 때문에 따로 제작해 조립하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종 문양으로 장식하기 위해 몸체와 등, 깃, 배면을 따로 만들어 부착했다. 접착면의 안쪽에는 접착력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점토를 덧댔으며 각 면은 폭 2-3cm 크기의 점토 띠를 두 겹씩 겹쳐서 만들었다.

◇ 지붕을 장식하는 다양한 형상

미륵사지의 치미는 그 형태상 명백하게 새의 깃털 모양으로 보인다. 그러나 치미의 시원(始原)을 찾아 더듬어 보면 치미의 의미와 성격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목조건물의 가장 큰 적은 화재(火災)였고 천사백년 전의 백제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각종 화재예방책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주술적 의미로 불의 기운을 누르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 했다.

치미는 일반적으로 기와 건축 양식과 함께 고대 중국으로부터 전래됐다. 치미와 같은 용마루 장식기와를 일컬어 한나라 때는 반우(反羽), 진나라 때는 치미, 당나라 때는 치문 등으로 칭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누미(樓尾)라고 불렀다.

이 밖에도 치미를 칭하는 다양한 말들로 취두(鷲頭:수리의 머리), 용두(龍頭:용의 머리) 등이 있는데 이는 명칭과 모양이 변화를 거치면서 다르게 불려진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반우는 날개 형상, 치미는 솔개의 꼬리, 치문은 솔개의 주둥이[吻], 누미는 말 그대로 집의 지붕 꼬리를 칭하고 있다.

고구려의 치미는 4-5세기 고분벽화에 나타난 궁궐 건물에서 이미 그 흔적이 나타나고 있고 평양부근 궁궐터에서 치미편이 소수 출토되고 있다. 백제의 치미는 부여에 천도한 이후부터 많은 수량이 제작되기 시작하여 유행하게 되어 일본의 아스카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소산의 서복사지(西復寺址)에서 출토된 치미와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치미가 있다. 신라의 치미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것이 대표적인데 높이만 186cm 너비가 80cm인 동양 최대의 대형 치미로 화려하게 장식돼있다.

◇ 아홉 이무기 전설

목조 건축물의 화재 예방을 위한 주술적 의미로 치미를 바라보면 용(龍)과 관련한 전설이 나온다. 본디 고대 중국에서 치미를 세웠던 것은 상상속의 동물인 용의 힘으로 목조 건물의 화재를 예방하려고 한데부터 시작됐는데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한 어룡(魚龍)형 치미가 이에 해당한다. 일본의 오사카성 천수각의 치미는 물고기형인데 이 또한 화재예방의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주술적 기원은 용생구자(龍生九子)의 전설에서 그 시원을 찾아볼 수 있다. 치미가 상징화하고 있는 것은 상상의 동물인 뿔 없는 용(어규:우리나라의 이무기)의 모양에서 유래하며 그 꼬리치는 모습이 솔개와 유사해 이를 치미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용생구자 중 첫째 비희는 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며 이빨이 있고 힘이 세 무거운 것을 짊어지는 것을 좋아해서 보통 비석의 아래 거북이 형상으로 만들었다. 둘째가 치문인데 치미라고도 부르며 목구멍이 젖어있고 토하기를 잘해 지붕위에 새겨놓으면 화재를 진압한다고 한다. 셋째는 포뢰(蒲牢)라고 하는데 고래를 보면 무서워서 큰소리로 울기 때문에 종두(鐘頭)에 만들어 놓는다. 종소리가 더 멀리 전해지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종을 치는 당(撞)을 고래모양으로 하면 종소리가 더 커진다고 전해진다. 넷째 폐안은 호랑이를 닮았고 소송하는 것을 좋아해 감옥 문이나 관아에 만들어 놓았다. 다섯째 도철은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해 솥뚜껑이나 제기에 그려놓았고 여섯째 공복은 물에서만 왕이어서 물 밖에 나가면 개미에게도 놀림을 받는다고 해 다리기둥에 새겨 넣었다. 일곱째 애자는 용의 몸에 승냥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성격이 광폭하고 죽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여 칼자루에 새겼으며 여덟째 산예는 사자를 닮았으며 연기를 좋아하고 후광이 밝아 향로에 조각한다. 아홉째 초도(椒圖)는 문을 닫는 것을 좋아해 대문을 지키는 신수(神獸)로 활약, 문고리 등의 장식에 쓰였다.

◇ 다시 용마루에 올라선 치미

최근 부여에 백제문화단지가 완공돼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사비성을 비롯해 백제역사문화관 등에서 백제인의 생활양식과 더불어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그 중 복원된 사비성 건물들의 지붕을 자세히 보면 치미로 장식돼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치미가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치미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미륵사가 아닌 사비성의 지붕에 올라 있지만 치미는 역시 지붕 위에 있을 때 그 진정한 매력을 뽐내는 것 같다. 만약 미륵사가 복원된다면 그 지붕에 올라갈 치미가 주는 아름다움이 더하지 않을까? 미륵사 복원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