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송씨 제실 있는 유점마을은 유기를 구워 유점리

호월마을은 속이 빈 병이란 뜻의 호월.. 천호동굴 암시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는 신리, 신부, 외사, 호월, 유점 등 다섯 자연마을로 이뤄졌는데, 이중 외사·유점·호월마을에 얘깃거리가 많다.

천호산天壺山이 있어 호산리壺山里인데, 산자락이 워낙 강하게 뻗어 나온 곳에 있는 마을들이라 산과 관련한 일화가 많다.

또 천호산이라는 명산이 있기 때문에 절과 암자가 많았고, 따라서 일부 마을의 이름은 절과 깊숙이 연관돼 있다.

유점리는 여산 송씨 시조 묘와 제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번에는 호월마을 찾아 외사·유점 마을 및 주변 지명에 대해 주민들과 얘기를 나눴다.

이곳에 사는 전연순(73) 김종영(72) 배순이(72) 고춘아(61) 송영석(50)씨가 마을 내력에 대한 보따리를 풀었다. 

‘초분’이 이뤄졌던 호월마을 뒤 ‘최봉골’. 저수지 위 왼쪽이 초분터다.

◇ 초분 풍습

초분草墳은 시체를 땅에 묻지 않고 풀이나 짚으로 덮어두었다가 몇 년 뒤 살이 썩으면 뼈만 골라내 묻는 장례방식이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사람이 죽고 살이 없어지는 때, 즉 육탈한 뒤에 뼈를 묻어야 하지만, 모든 초분이 다 그런 것은 아니며 짚으로 엮은 가마니 같은 것에 시체를 담아 그냥 땅 속에 묻거나 외진 산기슭에 버리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다 양지쪽에 장례를 치를 형편은 안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호산리 호월마을에 초분 풍습이 있었다는 게 이번 구술사 탐방에서 확인됐다.

마을 뒤 산 기슭에 ‘최봉골’이라는 곳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여우가 많으니 사람이 들어갈 만한 물동이 같은 것에 시체를 넣어 땅속에 묻었다. 그래서 주변 논밭에는 가끔씩 흙을 파면 시체를 넣어 묻은 동이가 발견된다고 한다. 김종영씨는 “못자리를 파니 동이가 나왔는데, (무서워서) 얼른 도망 나왔다. 옛날에 묻어서 (시체는 없지만) 지금도 동이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동이는 옹관묘에서 발견되는 옹관이나 같은 것이다. 여기서 동이나 옹관을 썼던 이유는 여우같은 짐승들이 시체를 건드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은 ‘최봉골’을 ‘최변골’ 또는 ‘최분골’이라고 한다. 현재 마을 저수지가 있는 바로 위쪽이 최변골인데, 이곳에 초분이 많아서 인지 이곳에 가면 왠지 꺼림칙했다고 한다.

김씨에 따르면, 하루는 마을 아주머니가 최변골에서 비를 맞으며 밭을 매고 있었다. 비가 오니 바가지를 쓰고 밭을 매는데, 갑자기 사람 소리가 들렸다. “아가, 아가, 울지 마. 울지 마. 쪼금 있다 젖 주께. 쪼금 있다 젖 주께.” 그러면서 쿵덕 쿵덕 방아 찢는 소리가 들려 등골이 오싹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주변 분위기가 으슥한데다 바가지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환청이 들린 것 아닌가 한다.

초분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던 모양이다.

짚으로 시체를 싸서 뉘어놓고 돌을 수북이 올려놓기도 하고, 땅에 막대기나 작대기를 세우고 시체를 올려놓은 뒤 짚이나 풀로 덮어놓기도 하고, 동이에다 싸서 땅에 묻기도 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 뒤에 어떻게 했다는 말을 못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뼈를 골라 장례를 지내야 하건만 그냥 내버렸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천벌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전한다. 하루는 동네에서 말썽을 잘 부리는 사내가 초분을 흉내 내면서 작대기로 시체를 들고 다니는 듯한 흉내를 냈다고 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앓아누웠고, 사흘 동안 “나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는데, 마을 사람들은 “죄 받아서 그런다”고 수군댔다. 이 일화는 초분을 지내면서 속으로는 괴로웠던 주민들의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민들의 얘기로 보아 ‘최변골’이나 ‘최봉골’, ‘최분골’은 초분을 했던 골짜기 또는 초분을 했던 자리라는 뜻의 ‘초분골’이 한자를 모르는 주민들 사이에서 ‘최분’이나 ‘최변’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 예로부터 천호동굴 인식했다

천호산의 호壺자와 호산리의 호 자는 같은 것인데, 호壺는 병이나 단지를 뜻하는 한자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주변에서 견훤의 군대를 물리쳐 ‘하늘이 도왔다’는 뜻으로 원래 지명은 지킬 호護자를 써서 천호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병이라는 뜻의 호자를 쓴 것은 이곳 지리에 잘 들어맞는다.

천호산에 천호동굴이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원래 호월마을이 병 호壺자, 달 월月자를 써서 호월이라고 했다고 말한다. 병의 속이 비었다는 의미에서 동굴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어렸을 때 외부에서 사람들이 와서 천호동굴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면, 몇 십 원씩 받은 뒤 양초를 종이에 말아 불을 키고 동굴 안으로 안내했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순수한 마음에서 그랬지만, 불청객들은 석순이나 종유석을 많이 도굴했다.

아직도 이곳에는 석회암 동굴인 천호동굴이 숨 쉬고 있고, 동굴 안에서는 물이 흘러나온다.

익산시는 내년부터 동굴정비를 시작한다.

◇ 중이 많아 중말 

호월마을은 중말, 죽말이라고도 불린다.

“여기가 옛날에는 중말이라고 했답디다. 왜냐면 오방난장이라고 해서 옛날부터 굉장히 절터가 많았대요. 지금도 산에 올라가면 절터가 있어요. 인자 터만 남았지만.”

천호산이라는 명산 때문에 절이나 암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익산향토지에는 “호월은 죽말이라고도 불렸다. 익산 군지에는 중간마을, 즉 중촌中村을 의미한다고 해설했다. 또 다른 곳에는 천호산에 올라 달맞이를 한다고 해서 호월이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적혀 있다.

이어 “옛날 불교가 성행했을 때는 연등회다 뭐다 해서 절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민간인들이 구름처럼 절로 모였다. 이런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사하촌寺下村이니 승촌僧村이니 하는 마을이 생겼다. 여기도 불사 참배자들을 위한 마을일 것이다. 따라서 중의 마을 즉 중말僧村(승촌)로 본다. (주민들은)중말을 죽말로 발음한 것이다”고 추정했다.

이 대목은 향토지의 해석이 맞는다고 본다.

지금도 이 주변에는 문수사, 백운사, 백련암, 천일사 등의 절이 있다.

주민들이 말한 오방난장이라는 것은 사전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오방이라는 말은 탈춤의 하나인 오방신장무五方神裝舞일 가능성이 높고 난장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몰려오니 자연스럽게 장이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절에 오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벌고자 하는 장사치나 광대들이 난장에서 요란하게 떠들고 굿을 하고 춤을 추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니 장사가 잘 됐을 것이고, 주민들이 돈을 많이 버니 이 마을은 옛날부터 부자가 많이 났다고 자랑한다. “여기가 여산면에서 제일 부자였어요. 여기 사람이 나가야 여산장이 돼요. 돈이 많았어요.”

호월 마을 주변에 있는 외사外沙마을은 원래 ‘삿골’이었다. 익산향토지에 따르면 유점리와 호월마을 사이에 있어 ‘삿골’이라는 말도 있고, 절이 많은 골짜기라 ‘사(寺)골’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향토지는 원래 절 밖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외사外寺인데, 조선 때 절을 기피하는 풍습 때문에 현재 이름으로 바꿨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런 주장도 설득력 있다. 외사마을은 이곳에서 유명한 문수사 등 사찰과 암자가 있는 산기슭 입구에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삿골이 아니라 ‘삭골’이라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옛날에 마을 원님이 이 마을 처녀를 좋아해 수청을 들라 했는데, 처녀는 이것이 싫어 원님에게 저수지 쪽에 가서 소 울음소리를 세 번 내고 돌아오면 수청을 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원님이 와 보니 처녀가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이후 나라에서 고을 이름을 없앴는데, 즉 삭제됐다는 의미에서 삭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설은 단순히 춘향이와 이도령 이야기를 이곳에 맞게 꾸민 것이라 추정되며, 이와 연관된 마을 내력을 찾을 수 없다.

유점마을 여산송씨 시조 묘.

◇ 여산 송宋씨 시조 묘 있는 유점리

호산리에는 유점리가 있는데, 주민들은 이곳이 그릇, 즉 유기를 구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여산 송宋씨 시조인 고려 말의 진사(進士) 송유익宋惟翊의 묘가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천호산 주봉에서 뻗어 나온 산자락이 명당을 만들어 기운을 뭉쳤는데, 답사한 사람이라면 상서로운 기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 풍수사들의 답사코스로도 인기다.

조선 태종 때는 송유익 가문이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외갓집이 된다 하여 숭상했고,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송씨 가문의 출신이며, 대대로 높은 벼슬아치가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다. 다만 돌을 채굴한다며 산자락을 심하게 훼손한 것이 흠이다.                   

김경선 기자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 호월마을. 천호산 자락의 기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