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익산의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라면? 왕궁터와 미륵사지라고 답한다면 반만 맞춘 셈이다. 금마면과 왕궁면 지역에 집중적으로 산재한 풍부한 유적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게 되지만 앞의 두 유적 말고도 익산이 백제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외치고 있는 유적이 있다.

웅포면의 입점리 고분이 바로 그것인데 왕궁이나 미륵사보다 무려 200여 년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도 익산의 대표 유적이다. 그러나 입점리 고분은 익산시민들에게조차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왕궁과 미륵사에 비해 화려함이 덜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해 내려오는 애틋한 이야기라든지 전설이 부족했던 탓일까. 아니 둘 다 잘못 짚었다. 백제 말기의 화려했던 익산경영이 보다 앞선 시기에 익산을 경영했던 강력한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과 그만큼 익산이라는 지역이 고대 국가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이미 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 이전의 백제 역사를 품고 있는 입점리 고분을 다시 보게 되고 고도 익산이라는 지역적 의미가 한층 풍부하게 여겨질 것이다.

◇ 칡뿌리 캐다가, 밤 주우려다 발견

입점리 고분은 천육백 여년의 세월 동안 조용히 땅 속에서 잠자다 1986년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86년 2월 2일 당시 전북기계공고 1학년에 다녔던 임성수 군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눈이 그치고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뒷산에 올라가 칡뿌리를 캘 요량이었다. 복장을 단단히 한 임군은 기세 좋게 산으로 올라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칡을 찾기 시작했다.

능선을 따라 뒷산을 헤매던 중 임군은 눈이 녹아 있는 양지바른 곳에서 토끼 구멍을 발견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임군은 재빨리 근처의 나뭇가지를 꺾어 구멍 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토끼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토끼굴 치고는 내부가 너무 넓었고 뭔가 딱딱한 것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호기심에 그것들을 끄집어냈다.

꺼내놓고 보니 척 봐도 예사 물건이 아녔다. 오래돼 보이는 금관이랑 금으로 만든 신발 같은 것이 나온 것이다. 또 뭐가 나올지 궁금해진 임군은 입구를 더 넓히고 아예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무덤 안은 일어서 있어도 머리가 닿지 않을 만큼 넓었으며 그릇들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전리품을 가지고 마을로 내려온 임군은 주민들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고 2월 6일 당시 익산군청 공보실에 신고했다.

또 같은 해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도 우연히 고분이 발견됐다. 9월 21일 당시 웅포중 3학년이었던 임낙동 군이 마을 뒷산에 밤을 주우러 갔다가 수북이 쌓인 나뭇잎을 발로 차며 떨어진 밤을 찾던 중 단단한 것이 발부리에 걸려 툭 튀어나왔다. 오래된 토기라는 것을 발견한 임 군은 부근을 파헤쳐 토기 6점을 수습하고 익산군청에 신고했다.

문화재청은 보물급 유물들이 발견되자 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2월 27일부터 4월 30일까지 1차 긴급 발굴조사, 10월 15일부터 10월 24일 까지 2차 조사를 실시했다. 유물 수습과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고분 외에도 주변에 7기의 고분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 천혜의 요새 속 고분

입점리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웅포면 입점리 산 174번지 일대로, 우연한 계기로 두 차례에 걸쳐 발견된 고분 8기에 의해 1991년 사적 제347호로 지정됐다. 그 후 1998년에는 사적에 대한 정비를 위한 조사과정에서 13기의 고분이 더 발견돼 총 21기의 고분군이 확인됐다.

고분군이 밀집해 있는 곳은 황등에서 웅포로 이어지는 722번 지방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새터마을 뒷산 경사면으로 인근에 어래산성(御來山城)과 도청산성이 남북으로 가까운 거리에 마주하고 있어 고대에 어느 세력이 위치해 있던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래산성은 함라산 서쪽 방면에 있는 어래산에 있는 토성(土城)으로 군산시 나포면과 익산시 웅포면의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다. 금강 연안에 맞닿아 있는 어래산은 해발 132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산의 정상에서는 금강이 한 눈에 드러나 보이는 이점으로 군사적 방어목적에 합당하다. 이를 두고 옛 문헌에서는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할 때 쌓은 보루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신빙성이 적고 수습되는 유물 등을 분석한 결과 백제시대에 금강연안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입점리라는 이름에서도 지역적 중요성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새터마을의 건너편마을이 갓점마을인데 입점의 옛 지명이 갓점이었으며 한자음 표기 과정에서 갓 립(笠)자를 써서 입점으로 바뀐 것이다. 갓점을 말 그대로 갓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이 살았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이 지역에 갓을 만들기 위한 말과 관련된 시설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즉 언제부터 갓점이라고 불렸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지역이 예로부터 중요한 군사적 기능을 담당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입점리 고분과 그 주변을 살펴보면 그 지역에서 백제시대의 강대한 세력이 산성을 세우고 위치해 있음을 도출해낼 수 있다. 또한 고분군이 밀집해 수십 기가 넘고 근처의 웅포리고분군을 감안한다면 그 세력이 보통 이상으로 강력했고 오래도록 융성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해상왕국이었던 백제의 요충지로써의 익산을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 금관을 쓰던 이는 누구일까

21기의 입점리고분은 발굴조사 결과 상당수가 이미 파손되거나 도굴된 상태였다. 산성의 위치상 경사면에 무덤을 조성했고 그 결과 세월이 지나면서 풍화되거나 깎여나가 봉분(封墳)을 알아볼 수 없고 상당수가 지면으로 드러나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가장 양호한 상태로 발견된 98-1호분은 수혈식석곽묘(위에서 밑으로 시신을 넣게 되어 있고 돌로 널방을 만든 무덤)로서 유일하게 배수로가 설치돼 있으며 신고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무덤은 굴식돌방무덤(통로를 통해 석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으로 무덤양식의 시대적 변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입점리 고분에서는 금동관모(金銅冠帽)와 금제신발, 금제 장신구, 중국 청자, 말 장신구류 등이 수습됐는데 이로써 이 묘역의 주체가 누군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모름지기 금관(金冠)은 왕의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신라의 금관을 제외하면 나주 신촌리 금동관이 백제시대의 것으로서는 유일했기 때문이다. 매장자가 확실한 무령왕릉에서도 금관의 장식만 출토됐고 금관 자체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유물이 나온 것은 확실한 백제왕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그만큼 강성한 세력을 누렸던 지방 귀족이었을 것이라는 의견과 토착세력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허나 입점리 고분에서 출토된 고깔모양의 금관은 나주의 금관과 일본의 후나야마고분 금관과 매우 비슷한데다 웅포와 나주, 일본의 후나야마고분이 있는 구마모토현이 백제의 22담로(백제의 행정구역)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어서 백제의 일본에 대한 문화 전파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 마한의 중심지 익산의 웅비

익산시는 예로부터 감해국, 건마국, 여래비리국, 아림국 등의 국가가 자리를 잡고 경영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던 중심지였다. 백제로 통합되기 전 마한의 54개 소국 중 감해국은 웅포(감해-감계-곰계-웅포)지역을, 건마국은 금마지역, 여래비리국은 여산지역, 아림국은 낭산지역을 그 무대로 비정(比定)하고 있다. 이런 국가들이 4세기 초 백제에 병합되면서 중앙세력권에 흡수 편제되었다고 본다면 그만큼 익산지역의 세력이 백제시대에도 강성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입점리고분은 백제사뿐만 아니라 익산지역의 고대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전설처럼 고도 익산을 증명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증거다.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보다 2백년 앞선 5세기에도 익산이 백제의 중심지로서 활약했음을 상기하면 입점리고분에 대한 의미도 새로워질 것이다.

정완창 기자

입점리 고분에서 나온 금동 신발.

전시관에는 송산리 고분 모형도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