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바우모퉁이’ ‘조개배미’ ‘배다리’ 등 지명 남아

백제·신라, 견훤과 왕건의 싸움터였다는 전설도 

여산면 두여리는 충남과 가까워 익산시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마을 앞에 형성된 넓은 평야와 이곳을 흐르는 여산천은 하류에 이르러 강경천이 된다.

두여리 사람들은 여산천이라고 하지만, 국가하천을 관리하는 익산국토관리청은 강경천이라고 부른다. 여산천은 금강을 만나 서해로 흐르고, 넓은 들판은 충남 논산의 연무대 경계까지 펼쳐진다. 여산천은 금강으로부터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두여리 쪽에는 이와 관련한 지명이 여럿 있다. 한편으로 이곳은 충남과 전북의 경계지역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군사적 요충지였고, 그래서 군대와 관련된 일화가 전해온다.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여산면 두여리斗余里 사람들의 얼굴에는 넉넉함이 배어나온다.

두여리에는 자연마을이 상당히 많은데, 월곡 금곡 용기 수은 원두 신기 가재 진기 등 여덟 개나 된다. 두여리는 말 두斗, 남을 여余를 쓰는데, 말은 크다의 의미를, 여는 ‘내미’, 즉 냇가가 있는 마을 이라는 뜻이므로, 두여리는 큰 냇가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말’을 ‘말미’라고 보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중에서도 용기 수은 가재 진기마을은 흥미로운 얘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가재마을에서는 김덕수(71) 정재순(69) 오인숙(61)씨, 용기마을에서 이건진(78)씨, 수은마을에서 이철용(80) 송하정(78) 정인환(62) 씨를 만났다.

◇굴바우모퉁이, 조기배미

강경천으로 이어지는 여산천은 바닷물이 들어왔고, 배가 들락거렸다. 지금은 하천공사가 이뤄져 너비도 줄어들고, 하류에 둑이 생기면서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옛날에는 바닷물과 함께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다.

두여리를 가득 채운 넓은 들판도 옛날에는 바닷물이 넘쳐 개펄이 형성되고, 비가 많이 올 때는 홍수가 나는 지역인데, 나중에 수리시설을 설치하고 농지를 정비하면서 지금의 평야가 된 것이다. 아직도 땅을 파면 개펄 층이 나오는데, 주민들은 이를 ‘뻘흙’이라고 부른다. 

주민들은 조상들로부터 들었던 얘기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두여리 가재마을에서 진기마을로 가는 2차선 도로를 가다보면 산자락이 도로 가까지 이어지는 곳을 지나게 되는데, 주민들은 이곳을 '굴바우모퉁이'라고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었더니, 옛날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와 이 바위에서 굴을 땄다는 것이다.

시커먼 바위가 있었는데, 도로를 넓히면서 없어졌지만 수십 년 전만해도 바위가 지키고 있었다. 마을 주변에는 또 ‘배다리’가 있다. 배가 들어왔던 곳이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가재골 마을과 용기마을 사이에는 '조기배미'라는 논이 있는데, 주민들은 여기서 바닷물이 들어올 때 조기를 잡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주민들이 잡아 먹었다는 것이다.

한편, 수은마을은 여산평야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바로 옆으로 여산천이 흐르는데, 원래 이름은 들판의 가운데 있다는 뜻의 '들말'이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홍수가 나 마을이 쓸려나갔다. 이 때 여산면장이던 김수한씨가 마을 터를 옮겨 지금에 이르렀는데, 김수한씨의 수 秀, 은혜를 뜻하는 은(恩)을 써서 수은이라고 지었다. 

◇삼국시대에 관한 전설들

특이하게도 이곳은 삼국시대와 후삼국 시대의 전설이 전해온다.

백제와 신라, 견훤과 왕건의 싸움터였다는 것이다.

진기 마을에 가면 '갑옷 터'가 있다. 백제 때 갑옷을 묻은 자리라는 게 주민의 말이다.

또 다른 주민은 이곳에서 묵은 갑옷과 화살촉이 나왔다고 했다.

진기마을은 '진터'라고도 불리며, 마을 뒷산을 마산馬山이라고 부르는데, 주민들은 이곳에서 후백제 왕 견훤의 군대가 머물며 왕건의 군대와 싸웠던 자리라고 했다.

마산은 말을 길렀던 곳인데, 진기마을 맞은편으로 멀리 보이는 충남 논산의 연무대 주변에도 마산이 있고, 전라도 마산의 장수와 충청도 마산의 장수가 싸워 전라도 장수가 졌다는 말도 전해 온다. 아마도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태조 왕건과 싸워 패했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익산향토지에는 진터, 즉 진기마을이 옛날 백제 멸망 때 황산벌 싸움 중의 하나인 나백전(羅百戰)의 싸움터였다는 설이 있다고 적었다. 향토지는 또 지금도 이 근처에서 돌화살촉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작전상 중요한 자리였으리라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유는 서해로 들어온 적군이 금강을 통해 이곳으로 깊숙이 들어와 위로는 충청도, 아래로는 전라도 지역을 넘볼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견훤과 왕건이 대치하고 있었던 금마-여산 경계지점이 탄현(炭峴)이고, 백제 말 충신 성충이 신라군에게 탄현을 넘게 하지 말라고 말한 곳도 여산 탄현이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 익산향토지는 "조선 때 이곳을 다스리던 여산부사(礪山府使)가 농한기 때 장정들을 소집해 군사훈련을 실시하던 진지였다고 한다"고 썼다. 시대는 변했어도 군사적 필요성은 변치 않았던 것이다.

한편, 수은마을 모정 주변은 '굽말동', '구마동'으로 불리는데, 마을 주민들은 이곳이 말 아홉 마리 또는 말과 관련된 명당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명당이라기보다는 진터와 함께 이곳도 군사훈련 때 말을 묶어놓거나 전쟁을 대비해 말을 길렀던 동네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풍수와 관련된 일화들

두여리는 풍수와 관련된 일화들이 많다.

주민들에 따르면, 가재골 마을은 소의 형상을 닮았는데, 마을 앞이 명당자리의 좌청룡이 된다고 해서 '청룡뿌리'라고 부른다. 가재가 많이 살아 가재골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만한 언급은 없었다. 아마도 풍수지리 용어인 가혈(假穴: 명당처럼 보이나 명당이 아닌 곳)에서 나온 말이거나 군사용어와 관련된 말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익산향토지는 진터와 가까운 골이라는 뜻의 '가직골'이 나중에 가재골로 바뀐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두여정보화마을로 지정된 용기마을은 작게는 상룡 중룡 하룡마을로 구분돼 있는데, 용이 올라가는 명당이라고 해서 비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비석을 세우면 승천하려는 용을 누른다는 것이다. 용기마을 바로 옆 수은마을도 용 명당자리라는 신념이 강하다. 풍수설로 인해 수은마을의 기반을 만들어줬던 김수한 면장의 공덕비를 세웠다가 철거했다. 마을 모정 근처에 비석을 세웠는데, 이장도 이 일을 끝내고 죽었다고 하며, 젊은 사람들이 여럿 죽는 일이 생기자 주민들은 이게 다 비석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나중에 없애버렸다. 일부 주민들은 복원시키길 원했지만 주민 대다수가 꺼림칙하게 생각했고, 결국 누군가 마을 주변 공사 때 비석을 묻어버렸다. 그래서 용기·수은마을에는 지금도 비석이 없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