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 무왕도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기도

 백제시대의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

태봉사는 미륵산 자락이 얕은 평야지대와 만나는 삼기면에 있다. 삼기면은 금마와 왕궁에서 부여로 통하는 길목이며 얕은 구릉과 평야가 고루 펼쳐져 있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춘 곳. 그렇기에 미륵사나 왕궁이 있던 일대가 세력의 중심지라면 삼기면은 그 외곽의 생활공간이었을 것이다.

높은 산 속도 아닌 마을 가까이에 사찰이 자리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삼기면에는 백제시대의 불상(佛像)을 간직하고 내려오는 석불사(石佛寺)와 태봉사가 있다. 석불사에는 석불좌상이, 태봉사에는 삼존석불이 백제 불교의 정신을 오늘에 잇고 있다. 미륵사나 제석사 같은 큰 사찰에도 불상이 나오지 않았던 만큼 흔치 않은 유산이다. 특히 태봉사의 삼존석불은 서산마애삼존불과 같은 부조 양식에서 한 단계 나아간 양식으로, 백제 후기의 불상의 양식과 불교의 전파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귀중한 보물이다.

이름에서부터 불상의 발견에까지 두루 전설을 품고 고도 익산의 향기를 널리 내뿜고 있는 태봉사 삼존석불에서 그 영험한 기운과 함께 오늘의 익산을 살펴봤다.

태봉사 경내. 작은 산 경사면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 작지만 큰. 얕지만 깊은 태봉사

태봉사는 삼기면 연동리(蓮洞里) 석불사 앞 사거리에서 망성면 방향으로 718번 지방도를 따라 약 7백 미터 정도 가면 왼쪽의 야트막한 야산에 위치해 있다.

연동리는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우측으로 만날 수 있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연방죽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미륵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정경 속에 들어선 따뜻한 느낌의 마을이다.

태봉사라고 쓰인 표지석에서 오솔길을 따라 150m정도 가면 경사면 반대편에 들어선 경내가 눈에 들어온다. 일주문도 없이 열려있는 사찰은 마을 가까이 있으면서도 깊은 산 속의 고찰(古刹)을 만나는 느낌을 준다. 숲을 배경으로 야트막한 경사에 종각과 대웅전, 삼성각 등이 모여 있어 아늑함과 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부도와 비석, 석탑과 석불입상 등이 성스러운 기운을 앞마당에 불어넣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태봉사에서 바라보는 전면은 마을과 논으로 이뤄진 평지이건만 뒤돌아서서 경내를 둘러보면 깊은 산 속 같다. 마치 성속의 경계에 서있는 느낌이다.

도저히 산이라고 부르기 힘든 언덕이 왜 태봉산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태봉사라는 절을 품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점이다.

태봉사 입구에서 바라본 가을의 미륵산.

◇ 준왕은 아들을 얻고

태봉사가 위치한 야트막한 야산을 태봉산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기원전 194년의 역사에서 시작한다. 익산이 한반도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고조선 준왕(準王)은 위만에게 패해 바다를 건너 익산에 다다른다. 익산을 새로운 도읍으로 나라를 세우고 한왕(韓王)이 된 준왕은 슬하에 아들이 없다는 게 큰 고민이었다. 그래서 그는 곳곳의 영험한 곳을 찾아 기원을 했으나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진 준왕은 꿈을 꾸게 되는데, 눈부신 봉황(鳳凰)이 갑자기 솟아올라 자신에게 다가왔다가 다시 날아올라 미륵산 너머 작은 산에 가서 앉는 것이었다. 꿈에서 깬 왕은 여간 상서롭지 않은 꿈임을 알고 봉황이 앉은 곳을 찾아 그곳에 석불을 세우고 기도에 정진했다.

기도를 시작한지 백일이 지나자 왕비가 임신을 했고 이후 왕은 세 아들을 얻게 된다. 이에 왕은 아들들의 태(胎)를 산의 봉우리에 묻은 후 이름을 태봉산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도 태봉사가 득남을 위한 도량으로서 유명해진 이유가 준왕에서부터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 무왕은 나라의 안녕을 빌고

태봉산과 관련된 일화는 백제의 무왕에게도 이어지게 된다. 준왕때부터 태봉산이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무왕은 이곳에 움집을 짓고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를 위해 태봉산에 오른 무왕은 비바람을 맞고 있는 삼존불상을 발견하고 즉시 이곳에 절을 짓게 한 후 태봉사라 일렀다는 얘기다.

그러나 무왕이 아들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는 점과 움집을 짓고 기도를 올렸다는 얘기에서 볼 때 상식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로 보인다. 또한 준왕이 세운 석불이 무왕이 발견한 삼존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단지 영험한 산으로서 태봉산이라는 이름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과 삼존석불과 함께 백제시대의 유물이 절 주변에서 아직도 나오고 있다는 것으로 사찰이 존재했음은 분명한 듯 보인다.

◇ 현몽을 통해 다시 발견되다

태봉사의 창건과 삼존석불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본래 태봉산에 전해내려 오기를, 옛날에 한 여자가 삼대독자인 아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산신기도를 하다가 산신의 현몽으로 아미타삼존불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지금의 사찰을 세웠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절도 사라지고 불상도 흔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1931년경 청송심씨 묘연화라는 여인이 삼기면 연동리 본가에서 삼대독자인 아들의 수명장수(壽命長壽)를 위해 기도를 드리다 산신의 현몽으로 안내를 받아 태봉산에 가봤더니 삼존석불이 있어 그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심씨는 현재 태봉사의 창건주로 기록돼 있으며 절 안에는 그녀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백제시대의 삼존석불은 대웅전에 다른 불상과 함께 모셔져 있다.

◇ 성형 수술한 삼존석불

천사백년 이상 발견되고 묻히길 반복한 삼존석불은 청송심씨(靑松沈氏) 묘연화(妙蓮華) 여인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 후 본당에 모셔지다 1957년 대웅전을 건립하며 현 위치에 옮겨지게 되는데 그 전후로 수차례 고쳐져 지금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삼존석불이 발견됐을 당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그래서 호분(胡粉:흰색 안료)을 발라 보수했는데 패인 부분만 석고로 채운 상태여서 희미한 외형만 남아 있을 뿐이었고 이목구비 등 세세한 모습은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주지스님과 친분이 있던 봉래(蓬萊)스님이 다시 개작(改作)하기에 이른다.

먼저 가운데 본존불의 불두(佛頭) 윤곽, 옷자락 등을 뚜렷하게 만들고, 좌우 협시불(挾侍佛:본존불을 모시는 부처)의 옷자락과 머리카락 다발, 관 등도 마찬가지로 다듬었다. 대좌(臺座:부처가 앉는 자리)는 상중하 3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장 상단만 고쳤으며 중대와 하대는 원형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좌우 협시불의 발은 원형대로 남겨뒀다.

현재 삼존석불을 바라보면 하얗게 보이는 대부분이 그러한 개작 때문이다. 본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광배(光背:부처의 후광을 표현하는 대)와 불상이 모두 2m가 넘는 1장의 판석에 부조 형식으로 새겨져 있어 인근의 연동리 석불좌상과 시대는 비슷하지만 다른 양식을 보여준다. 머리 부분을 새로 만들어 달아놓은 연동리 석불좌상과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보수되며 본래의 모습을 쉽게 유추하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 지극한 염원이 이뤄지기를

삼존석불을 제작할 당시 원석을 어디에서 운반해 왔는가에 대한 조사에서 한 가지 단서가 발견된다. 멀리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태봉사 입구 오솔길 중간쯤의 오른쪽 냇가 부근에 한쪽 면이 예리하게 절단된 암석을 발견한 것이다. 원시적 암석 절단방법인 짬(일종의 쐐기)을 박았던 흔적이 절단면 상부를 가로질러 남아 있어 그 암석을 사용했다고 추정된다.

문득 준왕이나 무왕, 심 씨의 기도뿐이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백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원이 모아졌을 것이다. 바위를 자르고 암석을 깎아 불상을 만들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태봉산 자락에는 지극한 정성이 끊이지 않고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존석불의 주인공인 아미타여래는 우리가 흔히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을 읊을 때 부르는 이름이다. 극락에 있으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아미타여래가 발원한 서원(誓願) 중에 “불국토에 태어난 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염(念)하면 왕생(往生)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데에 따른 것이다.

무엇인가를 바라며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백제인의 마음과 오늘의 익산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태봉사 삼존석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