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동탑지 출토.. 백제 풍탁 중 유일하게 원형그대로 남은 백제의 종(鐘)

1974년 미륵사지 동탑지의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 의미 있는 유물이 출토됐다. 건물의 처마 끝이나 탑의 네 귀퉁이에 매달았던 풍탁이 그것인데, 백제시대의 풍탁으로는 유일하게 거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완벽한 작품이다.

풍탁은 사찰의 목조건물이나 석탑, 누각 등의 처마 끝에 매달아 소리가 나도록 한 종(鐘)의 일종으로 풍령(風鈴) 또는 첨마라고도 하며 우리가 흔히 풍경(風磬)이라고 부르는 것을 말한다.

왕궁리5층석탑이나 미륵사지석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지붕의 네 모서리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역시 건물들의 처마와 마찬가지로 풍탁을 걸었던 흔적이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풍탁을 통해 백제의 풍탁 양식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또 미륵사지 금동풍탁의 출토의 의미가 큰 것 중 하나는 그 생김새가 우리나라 범종(梵鐘) 특유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너무나 잘 알려진 신라의 범종인 에밀레종과 닮아 있어 현존하지 않는 백제의 범종을 그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한국 범종의 시원(始原)격 가치를 지니는 유물이다.

◇ 한국 종의 탄생

우리나라의 범종(梵鐘)은 세계적으로 그 은은한 소리와 아름다운 조형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한국 종’이라는 분류로 나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범종이 불교와 관련된 사찰(寺刹) 물건이라는 점과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파됐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한국 종의 위상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종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종인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동종(銅鐘)이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으며 그 외 총 11구의 신라 범종이 국내외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불교가 고구려에 전래된 때가 372년, 백제는 384년 이었으며, 527년에야 신라에 전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신라의 종이 있기 전에 고구려와 백제에도 범종이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고구려와 백제의 범종은 남아있지 않고 신라의 종이 한국의 종의 대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와중에 1974년 미륵사지 동탑지의 발굴조사 중 백제시대의 풍탁이 출토됐다. 작은 크기의 풍탁이지만 그 조형적 양식이 흡사 익숙한 범종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 범종이 가지고 있는 양식을 그대로 품고 있기에 백제의 범종과 한국 종의 기원을 백제시대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 멀리 심야에 종소리 울리는 백제

삼국유사의 기사 중에 “천가(天嘉) 6년에 진(陳)나라 사신 유사(劉思)와 승려 명관(明觀)이 내경(內經)을 받들고 오니 절들은 별처럼 벌려 있고 탑들은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다. 이에 법당을 세우고 범종을 달자…”라는 기록으로 우리나라의 범종이 최초로 등장한다.

여기서 ‘천가6년’은 중국 남북조시대 진의 연호로서 신라 진흥왕 26년(565)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당시 일어난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진태건7년명종(575)보다 10년이나 앞선다. 이로써 6세기 중반 무렵, 이미 신라 영토에 범종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륵사지 동탑 근처에서 출토된 풍탁.

금이 도금된 풍탁은 우리나라 범종의 모습과 닮아있다.

또한 백제에도 범종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7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여 정림사지 5층탑 탑신에 새겨진 명문인 ‘대당평백제비명’에서 인데,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그 내용을 적은 것으로, 그 내용 가운데 “멀리 심야에 종소리 울려, 맑은 새벽까지 두루 미치다”라는 대목이 있어 백제 범종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기록에서 한국 범종의 기원은 불교가 전래된 시기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으며 이미 4세기에 불교를 받아들인 백제의 범종이 한국 범종의 시원일 가능성도 열어둘 여지가 생긴다. 항해술을 비롯해 건축술과 공예품까지 일본과 신라에 영향을 미친 백제를 염두에 둔다면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미륵사지의 풍탁에서 한국 범종의 시원을 찾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 풍탁이 보여주는 한국 종의 특징

풍탁의 소리는 내는 혀[舌]는 나뭇잎 모양 등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범종의 구조는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몸체인 종신(鐘身)으로 나뉘고 다시 종신은 상대와 하대, 당좌(撞座), 유곽(乳廓)과 유두(乳頭), 종구(鐘口) 등의 세부로 나뉜다.

한국 범종의 기본 형태로 삼고 있는 상원사 동종을 통해 한국 범종의 형태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항아리를 거꾸로 매달아놓은 모양이며 용뉴는 하나의 용이 뒤집어진 U자형으로 구부러져 있다. 종의 상부에는 사방에 4개의 사각의 칸(유곽)이 둘러져 있고 그 안에 튀어나온 돌기 장식이(유두) 각 칸마다 9개씩 36개가 들어간다. 중앙에 가장 볼록한 부분을 종복(鐘腹)이라고 하는데 그 곳에 종의 타격부인 당좌와 비천상(飛天像)이 장식된다. 특히 한국 종에만 있는 특징으로 용뉴 옆에 음통(音筒)이라는 특수한 요소가 있는데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전설을 품고 있는 독창적인 요소로서 현재도 그 기능에 관련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종의 형태는 중국과 일본의 종이 상당수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해 매우 독창적인 특징이며 미륵사지 풍탁에서도 그러한 조형미를 찾을 수 있다.

미륵사지의 풍탁은 높이 14cm, 좌우 8.5cm, 전후 폭 4.5cm로 작은 크기의 납작한 범종의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한국 종의 특징인 유곽과 유두, 연화문으로 장식된 당좌문양이 섬세하게 세공되어 있다. 이 백제양식의 8엽(葉) 연화문양은 풍탁의 용도에 있어 소용이 없는 장식인데 아마도 백제 범종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심금을 울리는 종소리 ‘에밀레~’

무엇보다 종의 가치는 그 종이 내는 소리에 달렸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종이 지금처럼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도 어느 나라의 종도 따라올 수 없는 한국 종만의 깊고 그윽한 소리 때문이다.

일단 우리나라의 종은 그 재료부터 다르다. 중국과 일본의 종과 달리 한국의 종은 청동이 주 재료이며 구리와 주석과 납을 주 재료로 만드는 청동에 아연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은 자유자재로 합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중국과 일본보다 우수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한국 종이 가지는 위대함은 맥놀이 현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맥놀이는 타종했을 때 두 개의 파동이 간섭에 의해 새로운 합성파로 만들어지는 현상으로 종소리가 울리며 널리 퍼져나가게끔 만든다. 타종 후 얼마 후에 들리는 웅~웅~웅~하는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에밀레종이라고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771)의 경우 약 3초에 한번 씩 여운에 울림이 생기면서 퍼져나간다.

조규동 박사는 ‘한국의 범종’에서 에밀레종의 소리를 “태산이 무너질 듯 장중하며 호연히 천지에 후(吼)하듯 굵고 낮은 매듭 속에, 또한 못내 자비로운 높은 여운은 그칠 줄 모르고 또 깊게 사바 속으로 스며들기만 한다. 실로 이 세계적 거종의 생명은 그 종소리와 더불어 영원하기만 하다”라고 평했다.

◇ 1400년 전 백제의 소리

사찰의 경내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청아하게 울리는 풍경소리를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새벽 산사(山寺)에서 예불(禮佛)을 알리는 장엄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는 범종의 울림은 순간이나마 우리를 피안(彼岸)의 세계에 이르게 하는 마법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깊고 그윽한 소리를 오직 한국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범종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동풍탁을 통해서 현재 남아있는 신라와 고려 조선의 범종이 백제의 범종과 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할 뿐이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재현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소리가 역사를 거슬러 천사백년 전 백제의 풍탁에까지 닿은 것이다. 고도 익산의 미륵사지에서 옛적의 맑고 그윽한 울림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