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 백제사에 숨을 불어넣어 풍부한 연구 이어져
무왕 익산경영의 증거.. 선화공주의 발원인 미륵사 창건설화 신빙성 논란

2009년 익산 미륵사지석탑의 해체 복원 공사 중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백제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줬다. 사리호 외벽의 화려한 무늬는 백제 전통의 연화문과 인동문이다.

지난 2009년 1월 14일 오후 4시, 익산 미륵사지석탑 해체 현장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작업자들을 비롯해 함께한 연구진과 취재진은 한겨울의 추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발견을 목도했다.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구의 발견이 바로 그것인데 7년여 간의 석탑 해체 과정 중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었으며 천사백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백제 문화의 진수를 직접 만나는 기적 같은 행운이었다.

사리장엄구는 불교에서 부처의 뜻을 기리고자 탑과 같은 상징물 속에 넣는 일체의 공양(供養)물을 이르는데, 이번 사리장엄구의 발견은 백제사에 있어서 완전한 형태로는 부여 왕흥사에 이어 두 번째이며 동양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의 위상에 맞는 대 발견으로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부처(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眞身舍利)와 함께 사리함,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 및 장신구 등 각종 공양물 600여 점으로 이뤄졌는데, 특히 사리를 봉안(奉安)한 내력을 적어 남긴 봉영기는 미륵사 창건 및 석탑의 건립 시기와 발원자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백제사 연구에 군불을 지폈다.

◇ 흐트러짐 없이 빛을 내며

사리장엄이 발견된 위치는 서탑(西塔) 1층 중앙의 1단 심주석(心柱石 ) 상면에 뚫린 사리공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복원된 동탑에서 볼 수 있듯이 본디 9층이며 1층은 네 측면에 출입구가 있고 사람이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이는 목탑의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양식이기 때문이다.

미륵사지 서탑 해체 복원 중 1층 기단이 드러난 모습. 가운데 심주석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됐다.

심주석은 통행로의 중앙에 놓여있는 탑의 기둥 역할을 하는 석부재이며 그 중앙 면에 사각형으로 가로세로 25cm, 깊이 27cm의 구멍을 내어 사리장엄 일체를 넣었다. 정확한 위치를 잡기 위해 먹줄을 열십자(+) 모양으로 튕겨 위치를 잡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발견당시 1단 심주석 위에 놓여있는 2단 심주석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자 사리공이 드러났는데 놀랍게도 유물들의 보존상태가 완벽했다.

천사백년 전 누군지 모를 백제인의 손에서 놓아진 상태 그대로 전해진 것처럼 보였다.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 이규식 보존과학연구실장이 방송을 통해 “유물이 너무 생생해서 미륵사지 건립 당시에 봉안했던 유물인가 하는 것을 조금 의심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 수습 대작전

사리장엄이 발견되고 두 시간이 흐른 오후 6시경 30여명의 유물수습 전문가들이 미륵사지로 급하게 모여 수습이 시작됐다.

먼저 유물의 순서와 재료 성질 등을 파악하는 현장조사를 마친 후 3D스캔작업(입체 기록)으로 유물의 위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유물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사리공 내부를 입체로 기록하기로 결정한 후 수습을 시작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새벽 4시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로 금제 사리호가 수습됐다. 유물들의 보존처리를 하기 전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리장엄을 안치한 후 심주석의 상면을 회반죽으로 밀봉해 공기를 차단했기 때문에 천사백년이 지난 후 개봉된 상태에서 사리병이나 봉영기의 보존상태가 좋은 만큼 목재나 섬유류의 훼손이 염려됐다.

실제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섬유나 가죽 재질의 유물이 겨울철의 차가운 공기와 빛, 건조한 공기에 노출돼 변성되는 것이 발견돼 더 주의를 기울여 수습과 처리를 한 번에 진행했다.

◇ 보물을 만나다

사리공의 맨 아래층에는 두께 1cm정도의 특별히 제작한 유리판을 깔아 사리에 대한 특별한 격식을 갖췄고 그 위로는 청동합 6개를 두고 합 사이를 녹색 유리구슬과 호박, 옥구슬 460여점이 가득 채워져 있었으며, 그 위 남쪽에 은제관식, 반대편엔 직물로 짠 주머니와 금괴가 놓였다.

그리고 그 위에 남쪽 벽면에 사리봉안기가 비스듬하게 기대어 있고 정중앙에 사리호가 안치된 상태로 발견됐다. 이 밖에도 족집게, 금제소형판, 허리띠 장식 등의 유물이 총 6백 8십여개나 나왔다.

이중 가장 중요한 유물인 사리병은 외호와 내호, 사리병의 3중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가장 바깥 쪽의 외호는 가로 7.7cm, 높이 13cm로 형태상으로 왕흥사의 은제 사리호와 닮아 백제 사리기의 전통성을 잇고 있다. 두껍게 도금된 청동제로 발견당시엔 금제로 착각할 정도로 화려했고 백제의 전통 문양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내호는 가로 2.6cm, 높이 5.9cm로 외호와 유사한 형태이지만 작은 크기로 인해 외호보다 문양이 간단하고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안에 사리병이 들어있지만 뚜껑 외에는 모양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된 상태이며 갈색을 띤 얇은 유리병으로 왕궁리5층석탑의 사리병 모양과 비슷할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 밖에 특별한 이야기를 지닌 유물로 금괴를 들 수 있는데 화폐의 일종으로 추정되며 표면에 ‘중부에 사는 덕솔 지율이 금정 한 냥을 보시한다’, ‘하부에 사는 비치부와 부모처자가 같이 보시한다’라고 적혀있어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안이 국가적 관심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무왕의 왕비는 선화공주가 아니다?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의 발견으로 가장 큰 논란이 인 부분이 바로 미륵사창건을 발원한 사람이 선화공주가 아니라는 사리봉영기의 내용이다.

금제 사리봉영기는 금판의 앞뒷면에 각각 11줄로 총 193자가 새겨져 있는데 앞면 글씨는 빨간색 안료로 칠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11.5cm, 세로 10.5cm, 두께 0.1cm다.

봉영기의 대략적 내용은 자비롭고 영험한 부처에 대한 칭송과 함께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 왕후와 무왕의 복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으며 특히 명문 중에 기해(己亥)라고 연호가 적혀 있어 미륵사의 건립연도를 최초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중 무왕의 왕후에 대한 얘기가 문제다. 그동안 서동선화설화를 통해 미륵사 창건을 발원한 사람을 선화공주로 여기는 부분이 많았지만 봉영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라고 나와 있다. 좌평은 지금의 총리 수준의 벼슬이며 사택가문은 백제의 귀족가문이다.

이를 두고 선화공주라는 사람의 존재 유무에서부터 시작해 왕후가 여러 명일 경우, 목탑이나 동탑과의 시간 차이 등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선화공주가 실존 인물이라는 증거가 없고 이번 봉영기 내용이 삼국유사의 내용을 부정함으로서 서동요를 비롯해 세기의 사랑이라고 불리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위험에 빠지게 됐다.  

12개의 진신사리가 들어있는 사리호 내호는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은제함과 구슬 등이 쏟아져 나왔다.

◇ 백제 역사의 열쇠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구는 또 다른 백제 역사를 규명하는 열쇠가 되고 있다.

사리장엄구의 핵심인 금제사리호는 정교한 문양이 한 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줌과 동시에 백제의 미(美)를 듬뿍 담고 있다. 전형적인 백제의 문양인 연화문, 인동당초무늬, 인동당초, 연화당초가 수놓아져 있는데 이들 무늬와 더불어 어란문(魚卵紋:동그란 모양으로 다른 무늬 들의 공간을 채운 땡땡이 무늬)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왕궁리5층석탑의 사리장엄구 연구에서 이를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함께 출토된 불상을 비롯해 사리함의 어란문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륵사지석탑의 사리장엄이 발견되자 사리호에 나타난 연꽃무늬와 어란문이 왕궁리5층석탑의 사리함에 새겨진 무늬와 같은 사람이 만든 것처럼 흡사해 어란문을 비롯한 세공방법이 백제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과 함께 왕궁리5층석탑의 사리함도 백제의 유물로 본 가치를 평가받게 됐다.

마치 미륵사가 상징하는 미륵불의 전설과도 같이, 천사백년의 시간 후에 오늘날의 익산이 품고 있는 백제의 유물들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영험한 기운을 전해줄지 기대해본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