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은 지역의 명소.. 일제는 지맥 끊는다며 길 내고, 개발업자는 석산 개발한다며 통째로 뭉개

지역 주민들의 낭만광장이었던 돌산(흘산). 석산 개발로 처참히 파괴됐다.

함열읍 흘산리는 황등면과 함께 석재의 고장이다.

중장비 차량이 오가며 도로는 항상 어지럽고, 마을 주변에서는 돌을 캐고 자르고 깎는 소리가 들려온다. 길 이름도 석재길이다.

흘산리에는 흘산屹山(돌산, 독산)과 용왕산, 흙산 등 해발 100미터 안팎의 나지막한 산이 나열돼 있는데, 높이는 낮지만 돌덩어리다.

흘산리에서 보면, 저 가까운 미륵산 자락이 서쪽으로 흘러 흙산을 만들고 흙산이 돌산(흘산)으로, 돌산이 용왕산으로 이어지는 기맥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흘산이란 지명은 참 이채롭다.

흘산屹山은 '우뚝 솟은 산'이란 뜻인데, 해발 105미터로 "우뚝" 솟았다.

산은 낮지만 전체가 굵은 돌덩어리이며, 평지에 솟아 높아 보였다. 이곳 주민들은 흘산을 돌산, 독산이라고 부른다.

한편으로는 돌산 남쪽방향에 있는 산을 주민들은 '흙산'이라고 부른다.

돌산과 비교해 흙이 많아 그런다고 한다.

흙산을 잘못 소리내면 흘산이 되기 때문에 돌산이 흘산인지, 흙산이 흘산인지 현대 들어서는 매우 모호하게 됐다. 

하지만 돌산이든 흙산이든, 지금은 석산개발로 옛 모습을 잃었으니 산의 모양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어느 것이 옳다 말할 수 있으련만, 그럴 수도 없게 됐다.

흘산리의 산들은 처참하게 뭉개졌다.

산의 대가리와 내장이 모두 파헤쳐졌다. 사람의 기억은 오래 가지만, 돌은 한 번 캐내면 복구되지 않는다.

지속 불가능한 소모성 개발이다.

산의 시작점을 따지자면 흙산이 흘산이 되는 게 맞고, 산의 장엄함과 아름다움, 마을 지명으로 따지자면 돌산이 흘산이 되는 게 맞다.

흘산리는 장동 멀메 과동 학선 상지원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이번 탐방에서는 흘산리 전체를 돌아보면서 돌산 바로 옆에 있는 멀메마을과 과동마을을 찾아 주민들의 '흘러간 얘기'를 들었다.

◇ 돌산은 광장이었다

돌산 아래 멀메마을.

돌산은 주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광장이었다.

젊은 처녀 총각들이 눈빛을 마주치는 공개 연애장이었다.

낭만 광장. 만남의 광장. 주민들은 야트막하고 펑퍼짐한 돌산 꼭대기에 올라 풍물을 치고 씨름을 하고, 앉고, 뒹굴고, 노래를 불렀다.

돌산은 언제나 넉넉해서 사람들을 품을 수 있었기에 함열 낭산 황등 용안 삼기면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다. 십리길 멀다하지 않고 걸어서 왔다.

걸어오는 길도 즐거웠다. 저 멀리 성당면에서도 왔다.

익산 사람들은 젊음의 추억과 그 때의 흥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주민들은 추석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돌산에 올랐다. 무작정 가야만 했다.

석매리 박성용씨(71).

“우리도 어렸을 때 추석 다음날 그 위로 올라가서 사람들이 다 모여서 놀았지. 산이 참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그것이 석산 개발로 다 없어져 버렸어요. 산이 다 없어졌어요. 거기에서 음력 보름날 낮에 올라가서 씨름대회도 하고 산도 타고 놀이도 하고 그랬는데. 멋진 바위가 많았어요. 돌산이라고 바로 저 앞에 있는데."

돌산에는 기괴하고 보기 좋은 바위가 많았다.

‘할배 바위’도 있었고, ‘장수 바위’도 있었다.

할배(할아버지) 같이 생겨서 할배바위, 장수가 오줌 싼 자리가 있고, 칼 모양의 바위가 있어 장수 바위였다.

“돌산이라 하면 나무가 별로 없고 순 독(돌)이었어요. 거기 있는 바위들에 이름을 붙인 것이지. 뭣처럼 생긴 것은 뭣바위, 또 뭣처럼 생긴 것은 뭔바위 그렇게 부른거지.”

주민들은 돌산이 원래 흙산이었다는 전설을 듣고 자랐다.

돌산에 있는 장수와 돌산 서남쪽에 있는 흙산의 장수가 서로 싸웠는데, 흙산 장수는 흙을 던지고, 돌산 장수는 돌을 던져 원래의 돌산은 흙산이 되고, 흙산은 돌산이 됐다는 것이다.

아마도 산에 돌이 많아서 생겨난 민담으로 보인다.

설악산에도 똑 같은 전설이 있다.

설악산은 거의 대부분 돌덩어리가 뼈다귀같이 드러나 있는데, 그 주변에 흙이 많은 산이 있을라치면 흙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장수바위 밑에는 항상 촛불이 켜져 있었다.

무당들이 신명을 받아 복을 빌었다.

함열읍 다송리 황순식씨(78).

“팔월 열여섯 날(한가위 다음날)이 되면 여기 ‘독산’이라고, 지금은 없어졌지만은 이 함열 전체가 그냥 남녀가 거기로 다 모여서 노래도 하고 연애하고 즐거움도 받고 그랬지.”

흘산리 과동마을 출신 황순생(75)씨는 “독산이 개발된 지 한 15년 됐겠구만.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풍습이 없어진 것이여. 처녀 총각 보려고, 그 때 이 지역 처녀 총각이 다 그리 오는 거여. 여기서 한 십리도 넘었지. 그래도 갔어.”

돌산에는 ‘연애바위’도 있었다.

“연애바위가 있었는가는 몰라도 거기서 연애가 이루어지고, 그런 대화가 이뤄지고, 말하자면 서로 건들고 수작이 오갔지. 낮에 갔어, 좋은 입고 낮에.”
주민들은 이곳에 올라 풍물을 쳤다.
"음력 팔월 열 여섯날 돌산에서 옛날에는 근방 사람들이 다 모이고, 사람들이 막 올라와서 풍물을 쳤지. 이 근방 잘 되라고.”

장수바위는 삼신할매 같은 효험이 있었다. 

“장수바위에 가위를 놓았던 자리가 있어. 아이를 못 낳을 때 거기서 정성을 들이면 아이도 낳고, 또 거기서 아이 탯줄도 끊고 그랬다고. 그 때는 이 근방 사람들 다 모여서 굉장했거든. 옛날에는 나 결혼 하고 한 십년 동안이나 그렇게 하더니, 그래서 저 먼 데서 구경을 오고 그랬는데, 시방은 없어.”

멀메(멀뫼)마을 이영희씨(62)와 전현철씨(56)도 같은 추억을 갖고 있다.

“장수바위가 이 집터만 했어요. 거기 가면 장수가 오줌 쌌다고 해서 움푹 파인 곳이 있어. 그리고 칼바위, 굴바위, 연애바위, 문턱바위 그런 것이 많이 있었어요.”

전 씨는 몸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굴 바위에서 놀았어. 바위가 (동굴 같이) 미로처럼 돼 있었어요. 지금 같으면 금강산 그 정도는 될 거여, 아마. 우리 어려서 기억인데, 칼 바위는 진짜 칼을 이렇게 딱 세워 놓은 것처럼 크게 한 15미터 될 겁니다. 진짜 칼자루처럼 딱 서 있었죠. 꼭대기서부터는 다섯 계단으로 된 문턱바위가 있었어요. 큰 바위가, 이렇게 집채만한 바위가 그렇게 놓여 있었는데, 그 사이로 들어갔죠.”

전씨는 지금도 돌산이 있었다면 광광명소가 됐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예, 그렇죠. 팔월 열 여섯날 되면요, 여그 낭산 함열 황등 성당 용안 사람들 다 독산으로 모였어요. 그 때 되면 여기가 인산인해를 이뤘어요.”

모여서 무엇을 했는냐는 말에“콩클대회(노래자랑)도 하고 그랬죠. 씨름대회 같은 것도 하고. 아버지 살았을 때 콩클대회, 씨름대회 한 데가 거기에요.”

석산개발하면서 액운을 받아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석산을 개발하면서 장수바위를 부셔야 기계가 들어간데요. 그래서 다이나마이트로 터뜨려가지고 그 때 사람이 죽었다고 허드라고. 한 30년도 넘었죠.”

세 명이 죽었다고 한다.

연애바위는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연애바위는 돌 하나는 이렇게 반듯이 있고, 하나는 이렇게 비스듬이 있는데, 깊이가 10미터 이상 됐어요. 속은 컴컴하고, 바닥은 평평하고, 연애하기 좋게. 옛날에는 여관 같은 게 없으니 처녀 총각들이 거기서 놀면 우리가 가서 고무총으로 막 쏘고 그랬지. 우리 초등학교 때였으니까. 그러고나서 막 도망가고.”

돌산에는 남녀바위도 있었다.

주민들은 '검응 바위'라고 불렀는데, 색이 검기 때문이었다.

“검응바위라고 있었어. 암놈 수놈이 있었는데, 하나는 조개 같이 생겼고, 하나는 고환 두 개처럼 딱 있단 말이야. 그래서 암놈숨놈이라고 불렀지.”

다송리와 흘산리 경계에 있는 용왕산은 ‘용성산’이라고했는데, 주민들은 이곳에 올라 휴식을 취했다.

이영희씨는 “거거 산이 번번한 것이 참 좋았어요. 볕도 잘 들고. 그 능선이 참 좋았어. 사람들이 다 돌 캐먹어서 그렇지, 나 막 시집온지 얼마 안 돼서 사람들이 거기 올라가서 다들 누워있고, 이불 갖고 가서 자고 그랬어.”라고 말했다.

전씨는 “여름에는 시원하게 찜질 같은 것도 하고 그럴라고 거기에 많이 올라갔어. 고추 같은 것 널려면 거기서 널고. 그런데 석산 개발해버리고 어쩌고 하는 바람에..”

추억의 장소는 이제 주민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지금도 산의 자취는 남아 있고, 이름도 남아 있지만 석산으로 개발돼 주민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갈 수 있어도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차라리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으면 좋을텐데, 지금도 돌을 캐고 있으니 안타깝다.

석산 개발은 일제보다 무서웠다.

일제 때는 지맥을 끊는다고 산허리에 길을 냈는데, 돈 욕심은 산 전체를 통째로 삼켰다.

돌산과 흙산의 전설이 내려오는 흙산 전경.

◇용 머리와 꼬리를 잘랐다

흘산리 산야의 신음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됐다.

이곳은 단단한 돌로 된 산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가 세고, 풍수적으로도 좋아 일제는 지맥을 끊기 위해 길을 냈다.

이곳은 옛날부터 좋은 터였다.

돌산과 용왕산과 흙산이 삼각구도로 펼쳐진 곳에 과동·멀메마을이 있었다.

“6.25때도 이 동네에서는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대요. 잡혀간 사람은 있어도. 삼각형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없어요. 그 때도.”

멀메마을의 멀은 말이라는 뜻이고, 말은 크다는 말이다.

메는 머리라는 뜻인데, 말머리가 말메, 멀메가 됐다. 따라서 멀메마을은 큰 머리, 즉 용머리라는 뜻이다.

익산향토지에는 '동국여지승람에 흘산은 말흘산末屹山으로 기록돼 있다'고 적혀 있다.

말흘산은 우뚝 솟아 있는 큰 산, 크게 우뚝 솟은 산이라는 뜻인데, 옛날부터 용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일제가 지맥을 끊기 위해 날개와 꼬리 부분에 길을 냈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옛날에 이 산의 모습이 용의 형태라고 했어요.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지금 저쪽으로 용머리가 있고, 머리는 미륵산쪽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는데, 저기에 날개가 있고, 학선마을에 꼬리가 있고, 그래서 왜놈들이 양쪽 날개 부분에 도로를 냈어요. 저기 사거리가 있고 거기가 머리인데, 머리를 끊었다는 거여.”

멀메마을 입구를 나와 학선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사거리인데, 이게 용머리 부분이라는 것이다.

돌산을 중심으로 보면, 돌산과 그 기슭이 머리와 몸통, 용왕산과 흙산이 양 날개다.

"산 정상에는 이 방만한 못(연못)이 하나 있어요." 연못은 용의 눈이었을까, 아니면 여의주였을까. 옛 모습도 사라지고, 석산개발 현장을 통제하고 있으니 꼭대기에 올라가 전망을 보기도 힘들다.

◇태풍 불고 해방돼 '해방바람'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본 사람들은 당시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해방은 1945년 8월이었는데, 그 때가 여름이라 태풍이 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바람을 사람들은 ‘해방바람’이라고 불렀다.

황순생씨는 “내가 열일곱 먹던 해에 해방 됐거든. 해방 되기 전에 바람이 무지하게 많이 불었어. 그냥 막 나무가 넘어가고 그랬지. 그리고 며칠 있다가 해방됐다, 일본 천황이 손 들어가지고 해방됐다고 소문났었지. 그걸 '해방바람'이라고 했거든."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