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마다 전해지는 고대의 전설.. 14개 성곽 유적은 고도 익산을 품고

익산토성은 오금산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익산은 청동기와 철기시대에 이르러 국가경영의 중심지로 급부상한다.

기록으로 살펴볼 수 있는 마한의 54개 소국(小國)들 중 감해국(웅포), 건마국(금마), 여래비리국(여산), 아림국(낭산) 등이 익산에서 국가를 경영했다고 추정되고 있는 것은 익산지역이 고대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 고조선 기준왕이 남하해 국가를 세운 곳이며 그 후 백제 무왕의 왕도 경영, 안승의 보덕국(報德國) 등 끊임없이 역사의 중심에 위치했다.

이러한 익산의 고대 문화는 발굴되는 문화재를 비롯해 익산의 각 지역에 남아있는 성곽유적을 통해 돌아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는 왕궁평성과 미륵산성을 비롯해 익산토성, 금마 도토성(都土城) 등 10여개가 넘는 성곽이 익산 곳곳에 산재해 있다.

남아있는 성곽의 숫자와 규모만 봐도 익산이라는 곳이 가지는 역사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성곽이 축조된 시기나 목적, 그 주체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저마다 고대 익산의 문화를 품고 있음은 틀림없으며 익산지역이 활발하게 전개된 역사의 현장임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전 손수 쌓아 올렸을 성곽 유적들을 따라 더듬어 보며 고도 익산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 위치적 여건 

왕궁리유적 전경. 평지에 있는 성곽이라 왕궁평성이라고도 불렸다.

고대의 익산지역은 서쪽으로는 바다와 닿아 있고 동쪽으로는 산지가, 내부에는 평야지대가 잘 형성돼 있어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여건을 모두 다 갖춘 곳이었다.

만경강과 금강의 물줄기가 현재와 같이 정비되기 전에는 서해의 바닷물이 금강과 만경강 유역으로 들어와 복잡한 해안선을 띠고 익산지역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대가 높은 미륵산을 주변 금마면 일대와 수변지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환경이었고 중요 거점으로 삼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위치적 이점 속에서 익산지역은 백제시대에 이르러 군사적 요충지로 거듭났다.

익산천과 왕궁천, 춘포천이 만경강과 합류해 서해로 이어지는 수로교통은 해상왕국 백제와 부합하는 최상의 조건이었고, 부여, 공주와 남쪽 지방을 연결하는 길목과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 역할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왕궁평성을 중심으로

현재 익산에는 왕궁평성(王宮坪城)을 중심으로 낮은 야산이나 큰 산줄기의 요소마다 산성이나 토성이 산재해 있는데, 이들 성곽유적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지만 출토되는 유물들로 보아 대부분 백제 후기에서 후백제까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 국내에서 유일하게 백제시대의 왕궁터로 확인된 왕궁평성은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遷都)를 뒷받침하고 있는 유적으로, 1980년대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발굴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야트막하고 평평한 구릉지에 장방형 모양으로 세워진 성곽은 남북 450m, 동서 230m의 거대한 규모이며, 성내를 구분하는 담장이 발견된 점과 성벽 벽면을 사구석(四口石:쌓기 좋게 깎아 반듯하게 만든 돌)으로 장식한 사실로 미뤄 군사적 시설보다는 궁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 익산을 지켜라

왕궁성을 중심으로 한 익산의 성곽유적을 살펴보면 크게 1차와 2차 방어체계로 구분해볼 수 있다.

1차 방어선은 왕궁성과 금마면소재지를 보호하고 있는 형태로, 미륵산과 용화산을 기점으로 지형을 이용해 축조한 금마도토성(금마면 동고도리)과 익산토성(금마면 서고도리), 미륵산성(금마면 신룡리), 용화산성(금마면 신룡리)을 들 수 있다. 이들 성곽은 북쪽으로의 침입에 대비해 왕궁성을 보호하고 있는 모양으로 볼 수 있다.

2차 방어선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익산을 지키는 역할이다. 북쪽의 낭산산성(낭산면 낭산리), 서쪽의 함라산성(웅포면 송천리), 동쪽의 당치산성(여산면 여산리)과 천호산성(여산면 호산리), 학현산성(왕궁면 동룡리)이 외곽을 지키는 주요 성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위치상 왕궁성이 가장 아래쪽에 있고 10여개의 성곽이 주로 북쪽에 분포하고 있는 이유는 지리적 여건상 금강 이남의 도읍지를 북방의 적으로부터 지켜야하는 필요성을 들 수 있다.

백제 무왕 때의 정치적 상황이 수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했었고 실제 고구려의 침략을 받기도 했던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 오금산 익산토성

오금산 익산토성. 보덕성이라고도 불렸다.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위치한 오금산(五金山)은 서동이 마를 캤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오금산의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에서 남향한 작은 계곡에 익산토성이 자리 잡고 있다.

무왕둘레길을 따라 서동생가에서 쌍릉으로 가는 작은 오솔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 익산토성은 오금산성 또는 보덕성으로도 불리고 있다.

현재도 일정 부분 석축 성벽이 존재하고 있으나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에 토성으로 축조되고 뒤에 석축으로 개축된 것으로 판단돼 명칭을 ‘익산토성’으로 지정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서 오금사(五金寺)가 보덕성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서동이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면서 마를 캐다가 다섯 개의 금덩이를 얻어 후일 왕이 되어 오금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돼있어 오금산 자락에 오금사가 있었음을 전하고 있으나 현재 오금사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익산토성은 그 둘레가 714m이며 성내에는 다양하고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글자가 새겨진 인장와(印章瓦)는 미륵사와 부여에서 나오는 것과 같고 연화문 기와를 비롯해 백제시기의 토기, 벼루, 시루, 솥모양토기 등이 출토됐다.

이와 같은 생활용기가 다량 출토되고 특히 제기(祭器)류의 유물이 많이 나와 군사적 목적보다는 서동과 토속신앙적 목적에서 중요시 여겼던 곳으로 추정된다.

또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유물도 나와 백제시대에 축조돼 통일신라와 고려시대까지 사용된 성곽임을 알 수 있다.

◇ 금마도토성

금마도토성의 모양과 규모가 그려져 있는 안내판.

금마 도토성(金馬都土城)은 금마면소재지에서 서북쪽 미륵사지 방향으로 500m쯤 가다 만나는 119 소방대 뒤편 쪽 야트막한 산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가 약 1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름 없는 작은 산이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건자산(乾子山)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도토성은 일명 굿대숲성, 또는 저(猪)토성, 성황(城隍)산성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고을 수호신인 성황신을 모신 성황사(城隍祠:사당)가 있었기 때문에 성황산성이라고 불렀던 것이며 저토성이라 함은 ‘돼지’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돝’이 한자로 옮겨지며 붙여지게 된 이름이다.

굿대숲성이라는 말은 성곽 주변에 굵은 대나무숲이 빼곡하게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굵은 대나무 숲’을 줄여 굿대숲이라고 불렀고, 특히 성곽유적에서 대나무 숲은 유사시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성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토성의 아래에는 열녀각과 함께 오래된 정자인 아석정(我石亭)이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문신 소세양이 활을 쏘던 과녁터 서편에 세웠다고 전해지며 그 앞 냇물은 도토성을 휘감고 돌아 천연 해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토성은 대나무 숲과 군용 참호 등으로 자세한 윤곽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폭 5m내외의 성벽으로 돌 위에 흙으로 성벽을 쌓은 것과 석축을 혼용했으며 길이는 약 330m다.

성내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백제시대 수막새 기와, 금마저(金馬渚)라는 명문기와, 인장와와 토기편 등이 있으며 뚜렷한 개축의 흔적은 이 성이 고려시대까지 사용된 것을 나타낸다.

굿대숲이 울창한 금마면의 야트막한 구릉에 금마도토성이 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