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사람들 북적이던 백무약국 삼거리.. 27번 국도가 새로 뚫리며 쇠퇴하기 시작해
철물점·떡방앗간·문방구 등 수십 년째 자리를 지키는 골목 상점이 사람들 기다려

골목은 우리에게 잊고 있던 이웃을 생각나게 한다.

처마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가 대부분이었던 예전 기억 속엔 한 골목이라는 이유로 서로 사촌처럼 가까이 지냈음은 물론이고 묘한 유대감으로 뭉쳐져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골목대장의 지휘아래 모여 옆 동네 골목 패거리들과 전쟁놀이를 할 정도로 골목이 주는 유대감은 컸다.

그런 골목의 어귀에는 어김없이 구멍가게 혹은 슈퍼가 있었다.

저녁밥 때가 가까워질라치면 찬거리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받고 아이들이 달려와 콩나물이나 두부를 사갔다.

주인아주머니는 일일이 반갑게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며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고 알사탕 한 개를 입에 물려주기도 했다.

겨울이면 따뜻한 연탄난로 가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구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다.

슈퍼가 있는 거리에는 다른 상점들도 들어섰다. 전파사, 신발집, 문방구, 지업사, 잡화점, 채소가게 등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이웃들과 교환했다.

누구네 집에는 숟가락이 몇 개고 젓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허나 이런 골목 풍경은 현재 우리 기억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추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주택구조와 도시구조가 아파트 위주로 변화되고 새로운 상업 중심지가 들어섬에 따라 골목은 쇠퇴해갔다.

대형마트를 비롯한 대기업의 상권 침투에 골목상점을 운영하던 힘없는 자영업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새 가게가 들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기 일쑤였다.

더 이상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골목에서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본지는 전통시장 살리기에 치우친 관심을 돌려 골목 상권에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익산시의 골목골목에는 상점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나름의 경쟁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익산시의 골목 상점이 품고 있는 옛 이야기와 함께 골목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경쟁력에 관심을 갖고 골목상점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 봤다.

◇ 요골이라는 이름의 골목

요골이라는 마을 이름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7, 80년대 까지만 해도 예사로 쓰인던 송학동 안의 마을 이름이다.

송만, 망기부락, 학곤리, 교촌, 역굴재, 점촌, 요골 등 작은 동네마다 그 태생과 관련한 지명을 갖고 있는데 요골은 기와나 그릇을 굽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송학동은 익산시의 서부에 위치하고 위로는 모현동, 동쪽으로는 익산역과 중앙동이 있어 도심에서 서수 임피 대야를 오가는 길목으로 발전했다.

익산역의 뒤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금도 개발이 덜돼 비교적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고 있지만 국도 27번 도로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차례 버스가 오가던 7,80년대에는 활기찬 마을이었다.

그 시내버스가 시외로 빠지기 전에 만나는 마지막 관문이 바로 요골이었다.

당시 모현동과 송학동의 치안을 담당하던 파출소가 있었고 길가에 상점들이 즐비했다.

특히 백무약국 삼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한 정류장으로, 또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 주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도떼기시장’같았을 정도였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평생을 골목에서 살아온 경창떡방앗간 성기환(74) 사장은 “할머니고 애들이고 뭐고 신작로를 마당마냥 건너 댕겨 싸니까는 차들이 막 빵빵거리고 그랬다고”라고 당시 골목 분위기를 회상했다.

◇ 시루떡이 맛있는 ‘경창떡방앗간’

경창떡방앗간은 요골에서도 중심이었던 백무약국 삼거리에 있다. 현재는 백무약국도 없어졌고 길도 새로 나 삼거리도 아니나 아직까지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방앗간과 함께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성기환 사장은 익산 토박이로 이 동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골목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언제부터 방앗간을 운영해왔는지 묻자 40년도 더 됐다는 대답으로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는다. 골목길에서 자라고 성장하고 새마을지도자와 통장도 맡아 동네일도 도맡아 한 그로서는 언제부터라는 질문이 생소하기도 했을 터이다.

옛 골목의 분위기에 대해 기억을 끄집어낸 그는 “어릴 때는 여기 골목이 좋았지. 판잣집이나 허름한 집들이 많았어도 다들 이 골목으로 나와 역전으로도 가고, 임피 서수로 다녔다고. 파출소, 약국, 대폿집, 쌀집, 유치원이랑 없는 것이 없었지 그땐. 포장이나 됐으면 몰라, 자갈밭 길을 먼지 날리면서 버스가 온종일 댕기고 역전에 나갔다 올라믄 컴컴한 하수구 굴다리를 벽 짚어 가면서들 갔다 오고 그랬지 다들”이라고 금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랬던 골목에 그늘이 드리워진 건 새로 길이 뚫리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도시계획에 따라 굴다리 대신 중앙지하차도가 뚫리고 27번 국도가 새로 놓였다. 본디 요골마을 신작로가 27번 국도였지만 새로 놓은 길이 직선으로 뚫리면서 골목길을 비켜갔다. 그러면서 번화하던 골목길이 뒷길로 변하게 된 것이다.

성 사장은 “대로가 나면서 골목이 죽었어. 봐봐, 건물도 아직 옛날 그대로고 상권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어. 대형마트가 없을 때만해도 그나마 나았지. 이젠 사람들이 다니지도 않는다고, 이 골목으로는”이라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그래도 내가 한동네서 떡집만 40년이여. 계속해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니까 이렇게 먹고살지 안그럼 벌써 떴어야지. 요샌 떡집도 많지만 우린 주문을 받아서 만드니까 주로 시루떡이나 흰떡이 많이 나가. 동네에서 양심 속이면 장사 못하는 법 아녀. 성의껏 양심대로 만든다고 자신할 수 있어”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 스포츠머리는 ‘일신이용원’

일신이용원은 경창떡방앗간의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1966년 영업을 시작했으니까 햇수로 47년 째 삼거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실내는 옛 모습이 그대로 구석구석에 남아있으나 역시 이발소답게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다. 이 골목을 오가던 많은 신사들과 남자아이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흔적이 아련하게 담겨있는 풍경이었다.

이발사인 이준태(67) 사장 역시 이 동네에서 태어나 지금껏 골목을 지키고 있다. 그의 아내 역시 한동네 사람이라니 골목길에 대한 애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사장은 먼저 “길이 사방으로 난 뒤부터는 경기가 아주 바닥이다. 이 골목이 큰 길로 둘러싸인 무인도 같은 느낌이다. 주변에 아파트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이면 좀 낫겠지 했는데 오히려 통행 인구는 더 줄었다. 주변 가게들이 텅텅 빈 것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나”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뭐라도 좋으니 골목이 번창해 다시 예전처럼 솜씨를 맘껏 발휘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내 손을 거쳐 간 사람을 헤아릴 수도 없고 이 골목에서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내가 다 머리를 깎아줬다고 보는 거지. 내가 가위를 잡은 지 50년이 넘었지만 가장 자신 있는 머리 스타일은 스포츠머리야. 예술이지”라며 쑥쓰러운 듯 웃어보였다.

◇ 없는 것이 없는 ‘송학철물점’

송학철물점은 요골 골목길 초입에서 만날 수 있다. 삼거리가 가장 낮은 곳이기 때문에 송학철물점에서는 이 골목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송학동에서 영업을 시작한지 20년이 넘었기에 집집마다 이 철물점에서 못이라도 하나 안 쓴 곳이 없을 정도다.

합판 같은 건재를 비롯해 전기재료, 공구 등 온갖 잡화를 망라한 만물상이기도 한 철물점은 작은 공사도 직접 해주며 골목을 비롯해 주변에 없어서는 안 될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 씨는 “여기서 나고 자랐기에 이 골목의 옛 풍경이 눈에 선해요. 길나기 전만 해도 번창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너무 사람이 안다니는 뒷골목이 돼버렸지요. 이 동네 상인들 누구나 죽기 아니면 살기라니까요. 해만 넘어가면 사람이 없는데 장사가 되겠어요”라고 고개를 흔든다.

세를 내놔도 나가지 않아서 다 팔고 이사 가고 싶다는 푸념이 이어졌다. 다른 골목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어 그녀는 “철물점을 이십년 넘게 하면서 모르는 것 없이 이 많은 물건들을 다 꿰고 있다. 사람들이 못이라도 급하게 필요할 땐 우리만큼 도움 되는 곳이 또 없다. 철물점들이 다 문 닫아서 우리마저 없다면 어디로 가겠나. 그저 이곳에서 오래 있었던 만큼 믿고 찾아와주는 손님들이 고마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