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미륵사지와 함께 살아온 인생
도로와 수로 발견, 금동향로 등 발굴해

“이젠 미륵사지가 곧 나 자신이고, 내가 곧 미륵사지라고 느낄 정도에요. 천사백 살이나 되는 미륵사지이지만 구석구석에 내 손과 땀이 닿지 않은 곳이 없죠. 미륵사지와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고도르네상스를 내세우며 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익산시. 그런 익산을 상징하는 대표 격 유적 중 하나인 미륵사지에 인생을 걸고 있는 노기환(48) 학예사가 있다.

그는 지난 1991년 미륵사지와 인연을 맺고 올해로 22년째 미륵사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일이 미륵사지 동탑지의 기단부 발굴 작업이었다. 당시 미륵사지는 대부분이 논이나 밭으로 된 들판 한가운데 있었다고 그는 생생히 기억한다.

본디 역사 교사가 꿈이었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고고학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군대에 가기 위해 휴학하고 잠깐 아르바이트로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남원 세전리 고인돌 유적에서 처음 발굴과 고고학을 접한 그는 재미와 끌림을 느꼈다.

그는 “땅 속에서 뭔가 나오는데, 뭐가 뭔지도 모르는 때였지만 예측했던 것들이 잘 맞는 거예요. 야~ 이거 재밌구나. 기회가 되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라고 했다.

군에서 휴가를 나와서도 항상 발굴 현장으로 달려갈 정도였다.
1991년 졸업한 직후 그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일용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고고학이 태동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는 현장경험을 최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해 1월, 본격적인 발굴과 동탑의 복원 계획이 한참이던 미륵사지는 그의 손을 보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20여 년 동안 그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미륵사지로 들어오는 도로와 수로를 발굴해냈을 때다.

먼저 거쳐 간 선배들이 통일신라시기의 연못지라고 판단했던 곳이었는데, 그는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50cm를 더 파내려갔다. 그 결과 미륵사지 진입로와 수로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사건은 금동향로의 발견이다. 발굴 작업이 마무리 된 후여서 더 이상 출토될만한 유물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기였는데, 그가 파라고 지정해준 폭 50cm, 길이 3m의 구덩이에서 떡하니 출토된 것이다. 조금만 옆으로 구덩이를 지정해줬어도 영영 찾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행운이었다.

그때 당시에 대해 그는 “대단한 유물이 나왔는데 그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감탄이 아니라 ‘죽었구나!’였답니다. 왜냐면 규정에는 내가 지켜보며 파게 돼있는데 다른 곳에도 일이 많았거든요. 다행히 뭐라도 나오면 손대지 말고 연락하라고 단단히 일러놔서 불상사는 없었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유물의 작은 부스러기라도 찾기 위해 직접 5톤이 넘는 흙을 전부 씻어냈다고도 덧붙였다.

근처 미륵산 사자사지 발굴 때도 행운이 따랐다. 당시 모두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 속에서 발굴이 시작됐는데 그가 발굴지점을 선택하고 땅을 파기 시작한 첫 날 금동불상이 출토된 것이다.

이런 행운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건축학적 소양과 다양한 경험에서 나오기 마련임을 그는 강조했다.

미륵사지와 함께 시작한 그의 삶은 미륵사지를 떠나지 않기 위한 노력에도 엿보인다.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그를 불러들이자 그는 결혼을 서둘렀다.

1992년 그는 결혼하고 부모님 부양을 핑계로 미륵사지에 남았다. 또 미륵사지전시관을 짓는다는 것을 알고는 미리 전주박물관에서 근무를 자청해 전시관 운영 및 유물 관리를 배워 미륵사지 전시관에 들어갔다. 순회근무를 피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22년간 미륵사지와 동행했다. 동탑의 복원과 서탑의 해체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고 현재도 전시관 관리, 특별전시회,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 등 고도 익산의 최전선에 그의 삶이 녹아 있다.

인원만 보충된다면 당장이라도 발굴하고 싶은 곳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미륵사지에 대해 사랑과 관심을 가져달라. 익산사람이 익산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다른 사람도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한다”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정완창 기자